자갈치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오던 중 사람들 비명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뛰어갔다. 80대로 보이는 노인이 승강장과 지하철 사이에 발이 빠진 것이다. 청년 한 명과 40대로 보이는 남자가 그 사람을 끌어올렸다. "아이고 차가 떠나면 안 되는 데..." 누군가 크게 소리쳤다. 모두가 그 상황을 지켜보며 마치 자신의 일처럼 몰려들었다.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뛰어가 거들고 싶었다.
다행히 두 사람이 그를 부축해 객실로 들어왔다. 퇴근시간이라 지하철은 번잡했지만 앉아 있던 여성이 기꺼이 자리를 양보했다.
사람은 공감 능력을 타고난다. 폐지 휴지를 싫은 리어카를 끌고 가는 할머니를 보면 밀어준다. 엄마가 울면 갓난아이도 따라 운다. 뼈만 남은 아프리카 아이 영상을 보면 돕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맹자는 이를 '측은지심'이라며 인간의 본성이라고 했다.
이런 능력이 나이가 들면서 떨어진다. 직장에서 나이가 많은 사람이 상사일 경우가 많다. 힘 있는 자리에 갈수록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 이 안 로버트슨(Ian Robertson)이 쓴 《승자의 뇌》에서도 확인된다.
권력을 차지한 사람은 남녀 불문하고 테스토스테론이라는 남성호르몬 수치가 현저하게 올라갈 뿐만 아니라, 권력의 맛을 본 뇌는 도파민이 증가해 마약 중독과 같은 현상을 보이면서 점점 더 큰 권력을 탐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공감 능력을 키울 수 있을까?
독서는 공감 능력을 키우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저자와 작중 인물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바라보는 훈련이다. 꽃에 관한 시를 읽으면 시인이 되어 꽃을 바라보게 된다. 소설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작중 인물이 되어 그의 삶을 경험한다.
직장에서 승진이 안된다고 맨날 상사와 회사에 불평불만에 빠져 '투덜이'가 됐다. 나만큼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나를 승진에서 누락하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럴수록 술에 빠져 원망으로 세월을 보냈다.
술을 끊고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내가 쪼잔이 같은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정약용이 쓴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읽으면서 유배지의 힘든 상황 속에서 나라를 걱정하고 아들과 가족을 걱정하며 오히려 용기와 세상을 살아가는 지침을 주는 걸 보면서 정약용처럼 닮으려고 책을 사서 읽었다.
책을 읽으면 타인에 대한 배려가 생기고, 편견과 고정관념이 줄어든다. 책 속 누군가가 되어 생각하고 바라보는 연습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타인의 처지를 헤아리는 능력이 생긴다.
공감 능력을 키우려면 나를 중심에 두고 세상을 보지 말고, 주변과 타인의 시선으로 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특별승진 대상자가 되었는데도 승진을 시켜주지 않는다고 매 날 술만 퍼마시며 회사를 원망했었다. 당시 나보다 경력이 1년~4년이 많은 선임이 4명이나 있었다. 만약 내가 특별승진했다면 그들은 얼마나 허탈감이 들었을까라는 생각이 4년을 내리 승진에서 탈락을 하고서야 깨닫게 되었다.
어제 사무실에서 퇴근하는 데 텅 비어 있는 100여 평이되는 돼지갈비 집에서 주인 듯 한 여인이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식당 주인이 참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금의 투자금과 월세가 나갈 텐데, 경제가 빨리 살아나야 될 텐데, 나라도 팔아줄까......,
나는 눈가리개를 하고 앞만 보고 질주하는 경주마 같았다. 환갑이 가까이 되어 책을 읽으면서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앞만 보고 달리는 삶에서 잠시 벗어나야 한다. 잠시 멈춰 서서 주변을 돌아보며 옆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을 관찰해야 한다.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가까이 보면 그동안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공감의 최고 단계는 대상 자체가 되어 보는 것이다. 아내가 가끔 드라마를 보면서 눈물을 흘릴 때가 있다. 그 대상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예전에 TV에서 아들이 유괴당한 부부가 실제 그 부부에 빙의되어 연기를 하다가 감독이 컷 사인이 떨어졌는데도 한동안 빠져나오지 못하는 걸 봤다. 대상에 푹 빠져 관심을 넘어 극 중 인물 자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제가 참여하는 '부산큰솔나비독서포럼'에는 10분 세바시 코너가 있다. 15분 세상을 바꾸는 시간에서 카피해 왔다. 처음 온 사람들이 모임에 빨리 적응하고 서로를 알기 위해 10분 동안 자신을 소개하는 자리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울컥해서 말을 잇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회원들도 따라 운다. 앞으로 나가 휴지를 전해주는 회원도 있다.
무언가를 사랑하면 그것만 생각하게 된다. 대상에 빠져들면 그것의 원리, 패턴, 배경, 맥락, 본질을 꿰뚫는다. 맨날 토닥거리는 키보드가 되어보고, 연탄재가 되어보고, 꽃이 되어보고, 새가 되어보고 물이 되어보는 것이다.
국정감사시즌이다. 국감장 여야 의원들 서로를 향해 고성을 지려면 난장판이 되는 모습을 자주 본다. 내가 부수라면 진보 관점을, 내가 찬성이면 반대의 입장을 생각해 볼 때 공감능력을 키울 수 있다.
공감 능력을 키우려면
첫째, 매일 하루 10분이라도 시간을 정해 독서를 해야 한다.
둘째, 나만 볼 것이 아니라 주변을 관찰한다.
셋째, 대상이 되어 세상을 바라본다.
우리 안에는 이미 공감 능력이 장착되어 있다. 다만 오랜 시간 사용하지 않아 녹슬었을 뿐이다. 독서하고, 관찰하고, 대상이 되어보는 연습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 걸 체험하게 된다.
"나이는 먹었지만, 사람 보는 눈은 녹슬었다. 이제 다시 닦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