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여자인데요."
그 한마디에 강의장의 공기가 멈췄다.
강사의 얼굴이 붉어졌다.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수습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바로 뒤에 앉아 있던 나와 아내는
눈을 마주쳤고,
수강생들은 웅성거렸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강의장에 모였다.
제일 앞쪽에는 단정한 감색 정장 차림에
검은색 구두를 신고 타이를 맨,
얼굴이 곱게 생긴 청년이 앉아 있었다.
성실한 자세 반짝이는 눈빛
어떤 꿈을 갖고 있는지 궁급했다.
멋있어 보였다.
강의 이틀째 날 첫 시간.
강사가 강의를 진행하다 맨 앞쪽에 앉아 있는
그를 지명하며 물었다.
"몇 살이세요?"
"26살입니다."
"혹시 애인 있으세요? 없다면
어떤 스타일의 여성을 좋아하나요?"
강사는 환한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대답 여부에 따라 강의를
이어가려는 듯했다.
수강생은 당당하게 얘기했다.
"저 여자인데요."
순간, 시간이 멈췄다.
강사는 얼굴이 붉어지며 말을 더듬었다.
바로 뒤에 앉아있던 나와 아내도 서로 쳐다봤다.
아내는 그녀가 미안하지
않게 하려고 서둘러 말했다.
"얼굴 피부가 너무 좋다고 생각했는데..."
수업 내내 강사는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려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언제부터 똑같아졌을까
수업이 끝나고 강의장을 나서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모두 독특하고 유일한
개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어떤 아이는 분홍색을 좋아하고,
어떤 아이는 파란색을 좋아한다.
어떤 아이는 춤을 추고,
어떤 아이는 그림을 그린다.
어떤 아이는 조용하고, 어떤 아이는 시끄럽다.
그런데 유치원을 다니고,
초등학교를 거쳐, 중고등학교를 지나,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어떻게 될까?
남자는 검은색 정장에 흰 셔츠, 검은 구두.
여자는 치마에 블라우스, 단정한 머리.
물론 요즘은 개성 있는 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행정안전부에서 주관하는
9급 공무원 면접관으로
발탁되어 일한 적이 있다.
면접장에 앉은 청년들은 마치
같은 공장에서 찍어낸
찐빵처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여성분은 모두가 스튜어디스 복장을 하고 왔다.
머리는 단정하게 말아 핀으로 고정시켰다.
남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검은색 정장, 흰 셔츠, 넥타이, 검은 구두.
종일 면접관으로 일하다 보면
누가 누구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똑같았다.
면접은 1시간가량 진행된다.
평가 항목에
'다름'은 감점 요인이 되고,
'개성'은 불성실의 증거가 되며,
'자기다움'은 조직 부적응의 신호로 읽힌다는
조항이 어느 곳에도 없다.
개성은 오히려 창의력과
장래 희망성에 점수를 더 줄 수도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똑같아졌을까?
그녀가 깨뜨린 것
강의장에서 만난 그녀는 달랐다.
정장을 입었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았다.
사회가 정해놓은 틀에 자신을
끼워 맞추지 않았다.
타인의 시선이 두렵지 않다는 듯, 당당했다.
그녀는 이미 자신의 세계를 깨고
나온 사람이었다.
반면 우리는?
우리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알 속에 갇혀,
서로를 재단하고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의 실험이며,
심연에 던져진 우리는
각자 자기만의 목표를 향해 노력한다.
인간은 서로가 이해할 수는 있지만,
각자가 지니는 고유의 뜻을
해석할 수 있는 이는 자기 자신뿐이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찐빵 공장에서 탈출하기
우리 사회가 언젠가부터 개성 없는
거대한 찐빵 공장 같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우리는 같은 크기의
틀에 찐 반죽처럼 눌려진다.
튀어나온 부분은 잘려나가고,
움푹 들어간 부분은 채워진다.
그렇게 만들어진 찐빵들은
깨끗하고, 단정하고, 똑같다.
하지만 맛이 없다.
향이 없다.
특별함이 없다.
그나마 요즘은 개성 있게 사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어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조직이나 직장 사회에서 튀는 것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어제 내가 배운 것은 그녀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내 안에 있는 보이지 않는 편견,
깨뜨려야 할 틀,
벗어나야 할 찐빵 공장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나라는 하나의 세계다.
누구도 나를 대체할 수 없다.
모두 자기만의 알 속에서 살아간다.
그 알은 때로는 사회가 만들어준 것이고,
때로는 우리 스스로 만든 것이다.
그 안에서는 편안하다.
익숙하다. 안전하다.
하지만 그 알을 깨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진짜 나를 만날 수 없다.
나는 남과 다를 수 있다.
아니, 남과 다른 것이 당연하다.
검은 정장이 아니어도 괜찮다.
조신한 여성이 아니어도 괜찮다.
누군가가 정해놓은 '정상'의 틀에 맞지 않아도 괜찮다.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서로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된다.
강의장에서 만난 그녀는
우리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당신은 아직도 찐빵 틀 속에 있나요?"
나는 남과 다를 수 있고,
남도 나와 다를 수 있다.
내 삶은 또 하나의 세계다.
오늘도 최고로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