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모든 지체는 나를 태우기 위한 환승이다

by 정글


일주일간 교육이 있었다. 아내와 함께 범내골에 있는 교육장에 가는 날, 주차비가 부담되어 버스를 타기로 했다. 출근길 버스는 빼곡했다. 움직임은 더뎠다. 평소 30여 분이면 도착할 거리가 1시간이나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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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지하철역 인근에 사는 아들에게 부탁했다. 관리실에 부탁해서 주차타워에 일주일만 차를 세울 수 있게 해달라고.


차를 몰고 아들 집 주차타워 앞에 도착했다. 팔레트에 차를 입고시켰지만 에러 메시지만 떴다. 당황스러웠다. 앞뒤로 차를 조금씩 옮겨봐도 마찬가지였다. 후진해서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주차타워 컨트롤 박스 앞에서 아내가 눈을 찡그리며 작동 방법 안내문을 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SUV 팔레트' 표기가 보였다. 승용차와 SUV 차 팔레트 크기가 달랐던 것이다. SUV 전용 팔레트가 아니면 차를 입고할 수 없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인생도, 주차도, 방법을 모르면 멈춰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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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를 마치고 지하철을 타러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다. 1인용이었다. 우리 바로 앞에 팔순쯤 되어 보이는 할머니 두 분이 타고 있었다.


지하철이 도착하는 소리가 들렸다. 빨리 가야 탈 수 있는데. 지하철 문이 열렸다. 할머니 두 분이 천천히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렸다. 승객들이 타고 내리는 게 보였다. 빨리 뛰어야 탈 수 있다. 하지만 앞에 할머니들이 있어 뛰어갈 수가 없었다. 두 분은 천천히 내렸다. 아니, 빨리 움직일 수가 없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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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타려는 순간, 문이 닫혀버렸다.


멀어지는 지하철 꽁무니를 한참 쳐다봤다. 할머니 두 분이 원망스러웠다. 아내와 의자에 앉아 5분쯤 기다리니 다음 지하철이 도착했다. 출근 시간이라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우리는 몸을 구겨 넣듯 지하철 안으로 들어갔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속도는 다르다.


퇴근길도 마찬가지였다. 가방을 풀어 앞으로 안았다. 아내가 가방을 메고 힘들어하는 것 같아 받아서 한 손에 들었다. 뒷사람에게 밀려 우리는 자동으로 차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몸이 부딪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우리 차는 민원 처리로 잠시 지체되고 있습니다."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30초쯤 지났을까.

"우리 차는 잠시 민원 처리로......"


일정한 간격으로 세 번을 방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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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에이, 바빠 죽겠는데..., 누가 성추행이라도 했나..."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체된 시간은 짧았지만 길게 느껴졌다. 한 코스만 가면 환승역인데, 조금만 빨랐으면 앞 차를 탈 수 있었는데. 마음이 복잡했다.


무슨 민원인지 알 수 없었다. 승강장과 지하철 사이에 발이 빠졌을 수도 있고, 누군가 성추행을 당했을 수도, 소매치기를 당했을 수도, 술 취한 취객 때문일 수도 있었다. 상황을 알 수는 없었지만, 퇴직 후 모처럼 출퇴근길을 경험하게 됐다.

멈춤의 시간은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다.


생각해 보면 그날 하루는 연속된 지체의 시간이었다.


주차타워 팔레트 작동법을 몰라 주차가 지연됐고, 할머니의 느린 걸음걸이 때문에 지하철을 놓쳤다. 지하철 민원 사고 발생으로 모두가 힘들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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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도 마찬가지다. 주차타워 입고 방법을 몰라 헤매는 것처럼, 때로는 알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할머니 걸음처럼 답답하고 더디게 갈 때도 있다. 그렇다고 할머니를 밀치고 지하철을 탈 수는 없다. 인생의 시계를 빨리 돌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때로는 쉬어갈 때도 필요하다. 그렇다고 큰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지하철 민원처럼 때때로 예기치 않은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 역시 시간이 지나면 열차가 출발하듯 해결된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도 몇 년 지나고 나면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게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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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퇴직 후 모처럼 출근길을 경험했다. 지옥철을. 출근길은 스펙터클 했다. 모처럼 활력 넘치는 시간이었다.


직장인에게는 재수 없게 들릴지 모르지만, 때로는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저 때가 좋았는데......

때로는 불편했던 시간이 가장 그리운 시간이다.


조금 지연돼도, 조금 늦게 도착해도 괜찮다. 어쩌면 인생의 모든 지체는 나를 다시 태우기 위한 환승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최고로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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