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글쓰기를 배우고 글을 쓸 필요가 있을까요?
AI 기술이 삶의 모든 영역에 깊숙이 자리 잡으면서, '글쓰기' 필요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AI에게 "용기에 관한 자기 계발서 한 편 써 줘"라고 명령하면 1분도 채 걸리지 않아 훌륭한 결과물이 완성되는 시대입니다.
이렇게 편한 도구가 있는 데, 굳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글쓰기를 배우고 직접 글을 쓸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AI가 보여주는 뛰어난 글쓰기 능력이 글의 영역 상당 부분 대체할 수 있고 있습니다. 정보 전달, 요약, 정형화된 보고서나 기사, 심지어 특정 주제에 대한 감성까지도 AI는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해 냅니다.
하여, 요즘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AI가 글쓰기의 역할을 대신해 줄 것이라고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글쓰기는 여전히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며 필요합니다. 작가는 단순한 기록자가 아닌 '창작자'입니다. 글쓰기의 진정한 가치는 테크닉이나 정보의 집합이 아닙니다.
글쓰기는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나의 경험 쓰기'입니다. 나의 절실함, 나의 고유한 생각, 나와 똑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전하는 유일무이한 메시지는 AI가 결코 대신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헤밍웨이가 자신이 경험한 것 외에는 쓰지 않았다고 한 것처럼, 글쓰기는 나의 삶을 반영하는 유일한 도구입니다.
물론 AI도 특정 주제에 관한 비슷한 경험을 '흉내' 내거나 데이터를 기반으로 감정을 모방할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는 모조품일 뿐, 본질이 될 수 없습니다.
이탈리아의 시인 체사레 파베세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렇게나 끄적거리고 시를 토하며 '이것이 나다'라고 외칠 수 있는 어떤 영역, 한 점을 찾아 헤맵니다. 제가 그 하찮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제 자신에게 증명하게 하기 위해서....."
아래 내용은 이오덕 작가의 《글쓰기 어떻게 가르칠까》 책에 기록된 초등학교 4학년 글입니다.
내 동생 지희는
거의 1년 동안
목이 아파왔다.
병원에 가도 안 되어서
엄마하고 같이
태백 기도원에 가 있다.
그래서 아버지하고 내하고
둘이 밥해 먹고 있다.
나는 밥을 먹다가도
동생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오늘도 반찬은 김치, 멸치,
이 두 가지로 먹는다.
아버지는 직장에 나가야 하기 때문에
아침에 밥을 지으면 하루 동안 먹어야 한다.
밥이 모자라면 저녁에는 굶든지 사 먹는다.
나는 엄마의 반찬 솜씨와
밥을 먹어 봤으면 좋겠다.
동생과 놀이터에 가서 그네도 같이 타며
즐겁게 놀고 싶다.
나는 엄마하고 동생하고 같이 살고 싶다.
어제 L 작가와 점심을 함께 먹었습니다. 올해 9월 소천하신 아버지 유품을 정리하다가 삶을 기록한 원고 뭉치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책으로 함께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어머니도 하루도 빠짐없이 꼼꼼히 일기를 쓰고 있다고. 그제야 L 작가가 글을 왜 잘 쓰는지, 글이 따뜻하고 공감 가는 글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AI는 절대 헤밍웨이 글을, 초등학교 4학년 글을, L 작가 아버지 원고와 어머니 일기를 쓸 수 없습니다. 내 글은 오직 나만 쓸 수 있습니다.
나의 삶을 숙고하고, 나의 경험을 나의 언어로 쓸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오직 나 혼자밖에 없습니다. 헤밍웨이가 소크라테스 글을 쓸 수 없고, 김훈 작가가 무라카미 하루키 글을 흉내 낼 수 없는 것처럼.
AI 시대에도 글쓰기를 배워야 하는 이유는 글을 '잘' 쓰기 위함이 아니라, '나만' 쓸 수 있는 글을 쓰기 위함입니다.
어제도 학인들과 책쓰기 글쓰기 공부를 했습니다.
나만이 삶의 순간들을 기록하기 위해.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의 이야기를 남기기 위해. 내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이것이 AI 시대에도 우리가 여전히 글을 써야 하는 이유입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희망이 됩니다.
오늘도 최고로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