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거 좀 치워라. 바닥에 쓰레기가 떨어져 있으면 줍든지 치우든지 해야지. 치우는 사람 따로 있고 버리는 사람 따로 있나?"
나는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초등학생 모드로 아내 훈시를 들으며, 더 혼나기 전에 이곳저곳을 다니며 바닥에 흩어진 휴지, 과자 부스러기, 과일 껍질을 주웠다.
사무실은 주로 내가 사용한다. 일하고 집에 올 때 바닥에 흘린 쓰레기나 책상 위에 먹다 남은 컵을 정리하지 않고 그냥 오는 경우가 많다. 내가 먼저 왔으면 혼나기 전에 치웠을 텐데, 주차하고 오는 사이 그만 기회를 놓쳤다.
교육받고 자격시험 치느라 일주일 넘게 사무실에 오지 못했다. 창가 화분들의 잎은 축 늘어져 있었고, 화분 속흙은 사막처럼 갈라져 있었다. 손가락으로 툭 치면 먼지가 날릴 것 같았다. 급히 물을 떠 왔다. 화분에 물을 붓는 순간,
"쫘아아─읍…"
소리가 났다.
아사 직전이라는 말이 딱 맞았다. 조금만 늦었으면 생명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미안했다. 열 개가 넘는 화분에 물을 주고 나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축 처졌던 잎들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고맙다고 인사하는 듯했다.
"딩동─"
9년 전 독서모임 처음 시작할 때 창립 멤버였던 강 선배님이 밀감 한 박스와 과자류를 가득 담은 캐리어를 끌고 사무실에 들어왔다. 올 때마다 빈손이 없다. 지난번에는 스타벅스 커피를 한 박스 사 왔다. 언제나 나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책도 한 아름 안고 왔다. 요즘 주식 공부에 빠졌단다. 아내와 강 선배, 그리고 나, 모두 환갑이 넘었다. 노안이 와서 책 읽기가 쉽지 않다. 스캔해서 아이패드나 태블릿에 저장한 후 확대해서 읽으면 편하다. 이동 중이나 여행 중에도 쉽게 읽을 수 있다.
노안이 오기 전 젊을 때 책을 좀 읽을걸.
스캔 작업은 생각보다 빠르게 끝났다. 책 한 권이 순식간에 아이패드 안으로 들어왔다. 그 사이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강 선배 아들이 주식 공부를 시작했다는 이야기, 남편이 상가 건물을 사자고 했다는 이야기, 회사 다닐 때만큼의 수익이 난다는 이야기. 책만 스캔한 게 아니었다. 서로의 삶도 함께 스캔했다.
점심시간이 되어 코다리찜을 먹으러 갔다. 오피스텔 2층에 있던 식당은 1층 옆 건물로 옮겨와 있었다. 가게는 절반쯤 작아졌다. 월세가 부담돼서 옮겼다고 했다. 이전 과정이 쉽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푸짐한 코다리찜을 먹었다. 이전 기념이라며 음료수 두 병도 내어주었다.
스캐너는 빠르게 책을 읽어냈다. 사람은 때가 되면 밥을 먹는다. 하지만 머리는, 영혼은, 때가 되어도 자동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책을 읽지 않으면, 며칠 물을 주지 않은 화분처럼 내 영혼도 메마른다.
사무실로 돌아와 스캔된 책들을 훑어보며 다시 화분을 떠올렸다. 갈라진 흙, 물을 삼키던 소리. 올해 놓친 것들이 마음에 걸렸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건, 책을 제대로 읽지 못했던 것.
올해 마지막 일요일이다.
2026년에는 내 영혼에게 조금 더 자주 물을 주자고 다짐해 본다. 매년 12월이면 비슷한 각오를 하지만, 이번엔 왠지 느낌이 다르다. 잎이 고개를 들던 순간처럼, 나도 다시 책 쪽으로 몸을 기울일 수 있을 것 같다.
물은 늦게라도 주면 흙을, 수목을 살린다.
책도, 삶도, 아직은 늦지 않았다고 믿어본다.
내년에는 책과 더 친한 친구 사이가 되기로.
책은 한 번도 우리를 배신한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