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국수 가게
햇볕 좋은 가을날 한 골목길에서 옛날 국수 가게를 만났다 남아 있는 것들은 언제나 정겹다 왜 간판도 없느냐 했더니 빨래 널듯 국숫발 하얗게 널어놓은 게 그게 간판이라고 했다 백합꽃 꽃밭 같다고 했다 주인은 편하게 웃었다 꽃 피우고 있었다 꽃밭은 공짜라고 했다
정진규, (本色), 천년의 시작, 2004, 42쪽.
출처 : 《이토록 멋진 문장이라면》 장석주 지음.
오늘 아침 '옛날국수 가게' 글을 필사했다. 왜 이 글은 마침표가 없을까? 출판사의 잘못인가? 그럴 리 없다. 아님. 장석주 작가가 마침표를 찍지 않았는가? 거장 장석주 작가가 그럴 리는 더더욱 없다. 다른 쪽 페이지를 펼쳤다. 분명 마침표가 있다. 왜 이 페이지, 이 글만 마침표가 없을까?
글쓰기 스승은 마침표가 없는 글은 출판사에서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했는데...,
머리에 든 게 없이 하얀 내 뇌가 알 길이 없다. 작가나 출판사의 분명 의도가 있을 텐데. 설명글도 없다.
아마도 마침표를 하얀 국수 색깔로 찍어 내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얀 엄마
봄날이면 하얀 배꽃, 하얀 찔레꽃을 따다가 시냇물에 띄웠다. 배처럼 흘러가는 꽃잎이 사라질 때까지 봤다. 하동 섬진강물 따라 노량 앞바다로 흘러 하얀 파도와 만나는 걸 상상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여름이면 하얗게 내리쬐는 은빛 모래 위에 하얗게 혀를 내민 강조개를 잡으며 멱을 감고 놀았다. 엄마는 잡아 온 강조개를 솥에 넣고 파를 송송 썰어 하얀 재첩 국을 끓여주셨다.
가을이면 하얀 저고리를 입은 엄마는 하얀 다라니에 하얀 배를 가득 담아 하얀 신작로를 걸어 하동시장통으로 행상하러 가신다. 투덜 터덜 트럭 한 대가 하얀 먼지를 품으며 신작로를 달려갔다. 하얀 먼지 속 엄마를 한참 쳐다봤다. 희미하게 보이던 엄마가 사라질 때까지.
엄마는 하얀 눈이 내린 신작로를 따라 하동 시장통에 행상을 다녀오셨다. 하얀 고무신이 누렇게 변했다. 하얀 적삼 옷도.
하얀 다라니 안에는 썩은 배가 몇 개 담겨있었다.
배의 썩은 부위를 도려내자 하얀 속살이 보였다. 한입 베어 물었다. 하얀 엄마 젖맛이다. 연거푸 3개를,
엄마는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모습이 보인다. 아궁이 속 하얀 불빛을 보며 나는 하얗게 잠들었다.
하얗게 동이 터 온다.
엄마! 그곳에도 아침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