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라는 기적!
"원발암은 명함도 못 내민다. 나는 9년째 암 환자다!"
회사 직원들과 어린이 대공원 산책을 하던 중 9년째 암을 치료하고 있는 정 팀장의 말입니다. 최근 암 환자 모임에 가입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는 원발암(처음 암 진단받은 사람) 환자는 명함도 못 내민다고..., 재발과 전이를 반복하며 사선을 넘나드는 이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여, 암을 ‘감기’처럼 여기며 산다고. 독서가 큰 힘이 된다고도 했습니다.
암을 감기처럼 여긴다는 말. 더 큰 고통 앞에 서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겸허함이자, 고난을 일상으로 받아들인 ‘초월’의 상태입니다. 나에게 닥친 불행이 가장 크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주변을 보지 못합니다. 더 깊은 아픔을 겪는 사람들을 마주하면, 나의 고통은 작아지고 비로소 평온한 일상이 얼마나 큰 기적인지 깨닫게 됩니다.
비가 온 뒤 어린이 대공원 호수는 푸른 하늘과 소나무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 위에는 오리가 우리를 향해 물 위에 긴 사선을 그으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저와 나란히 걷던 지점장이 '담배' 끊었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30년 넘게 하루 두 갑씩 담배를 피웠는데, 수십 번 끊으려 시도했지만 실패했었다고.
어느 날, 골프 연습을 무리하게 하다 갈비뼈 두 대에 금이 갔고, 설상가상으로 독감까지 걸렸다고 했습니다. 기침할 때마다 금이 간 갈비뼈 통증 때문에 죽는 줄 알았다고.
신기한 일은 감기가 낫고 난 후.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맡은 담배 연기 냄새가 ‘역겨워’ 견딜 수 없었다고. 의지가 아니라, 지독한 통증을 겪은 몸이 생존을 위해 스스로 ‘거부 반응’을 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종종 큰 고통을 겪고 나서야 나를 망치던 습관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하지만 꼭 뼈가 깎이는 고통을 겪어야만 변화할 수 있는 것일까요?
오늘 아침 이솝우화 전집을 읽었습니다.
'말과 전사'.
전쟁터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한 말을 평화가 오자마자 노예처럼 부린 전사가 나옵니다. 전쟁 때는 보리를 먹였지만, 전쟁이 끝나자 보리 대신 짚만 주며 무거운 짐을 나르게 했습니다. 말은 당나귀처럼 야위어갔지요.
다시 전쟁이 터졌을 때, 주인은 멋지게 갑옷을 입고 말에 올랐지만 말은 힘없이 주저앉고 맙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도 이와 같습니다. 아무 걱정 없는 평온한 시기에 나 자신을 ‘당나귀’처럼 함부로 대합니다. 불규칙한 생활, 감사 없는 투덜거림,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소홀함…. 그러다 인생의 전쟁(위기)이 터지면 그제야 허둥지둥 ‘말’을 찾지만, 이미 기력을 잃은 일상은 우리를 태우고 달릴 힘이 없습니다.
평온한 일상을 감사해야 위기를 건널 수 있습니다.
암 환자의 '담담함'과 지점장의 ‘역겨움’, 그리고 이솝우화 전사의 ‘후회’.
평온한 일상의 감사를 잊지 말아야, 훗날 닥칠 고난의 순간에도 당나귀가 아닌 ‘전투마’ 기세로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 지루하게 느껴지는 오늘이라는 시간이 사실은 누군가에게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간절한 기적일지도 모릅니다. 갈비뼈가 부러지기 전에, 전쟁의 나팔 소리가 들리기 전에, 지금 곁에 있는 평범한 것들에 ‘감사’라는 보리를 듬뿍 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만 다시 올 인생의 전장을 늠름하게 극복할 수 있을테니까요.
전쟁터에서 말을 잘 먹이는 건 전략이지만, 평화로울 때 잘 먹이는 건 '철학'입니다. 내 몸과 마음이라는 말에게 지금 무엇을 먹이고 있나요? 지푸라기 같은 불평입니까, 아니면 감사의 보리입니까? 평온할 때 잘 먹여둔 일상이 결국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합니다.
매월 초일. 회사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차를 마시며 으싸!으싸!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어제는 부산 어린이 대공원 인근 '초함'이라는 곳에서 점심을 먹고 대공원 호수 주변을 산책하고 왔습니다. 또다시 시작되는 지루한 일상일 수 있겠지만 순간순간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과 감사'라는 단어가 더 많이 떠오를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지금, 감사하고, 지금, 행복하세요!!
오늘, 누군가에겐 간절히 바라던 내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