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조심해서 잘 다녀와~”
부산지역에 한파주의보 내린 자정 무렵, 인천행 버스에 혼자 들기 힘든 18인치 캐리어와 보조 가방을 짐칸에 실어주며 아내를 배웅했다. 14일간 우즈베키스탄 선교여행을 떠났었다. 오늘 오는 날이다.
배웅할 때 아쉬움 보다 ‘아아. 만세, 살았다’를 외쳤던 것도 사실이다.
“여보, 잠깐 와봐, 당신은 몇 번 얘기해야 알아듣노?”
가끔씩 거실에 나가 두 손을 앞에 모으고 교육 안 받아도 된다. ‘사용한 수건을 의자에 걸쳐둔다든지, 휴지를 식탁 위에 둔다든지, 옷을 아무 곳에 걸쳐둔다든지......,’ 교육 과목도 많다.
어제는 어린이대공원 앞에 있는 투썸플레이스에 갔다. 지인이 보내온 쿠폰으로 치즈케이크, 커피를 주문했다. 원고 교정작업을 하려고 마음을 먹고 갔지만, 유튜브를 시청하고, 드라마를 보고, 잠깐 졸다가 보니 하루가 훌쩍 지나갔다. 결국 하기로 했던 원고 교정작업은 손도 못 대고 집으로 왔다.
저녁은 볼락 생선구이를 구워서 밥 두 그릇이나 먹었다. 커피를 타서 책상에 앉았다. 고개를 의자에 묻어 유튜브 뉴스 시청하다 졸기를 반복했다.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흘렀다. ‘이놈의 유튜브 앱을 지우던가 해야지......,’
오늘 아내 오는 날이다. 곳곳에 흩어져 있는 수건, 옷, 양말 등 빨랫감을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 박스 포장지, 음식물쓰레기, 약봉지, 편지지 등 정리하고 거실과 큰방 작은방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로 닦았다. 여행으로 피곤한 아내가 교육하지 않아도 되도록.
아내가 없는 14일 동안 그동안 밀린 일을 집중해서 마무리하기로 마음먹었었다.
첫째, 쓰고 있는 초고 마무리
둘째, 목사님 원고 교정작업 마무리
셋째, 잠재 고객을 위한 SNS 활동, 미팅 10명
위 세 가지는 생각만 했지 글을 쓰면서 기록해 봤다. 퇴직 후 할 일을 기록하기는 처음이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수시로 잊어버리지만 기록해 둔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기록해야 시간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
세 가지 중 한 가지도 제대로 못했다. 소중한 14일이 손가락 사이로 빠지는 모래알처럼 지나가버렸다.
어릴 적 소풍 가면 자주 하던 수건 돌리기 게임이 생각났다. 술래가 되었을 때, 누군가의 등 뒤에 몰래 수건을 떨어뜨리고 얼른 내 자리로 돌아왔었다. 누군가의 등 뒤에 두고 온 수건처럼 14일 동안 못다 한 일들이 자꾸만 생각난다.
우리 뇌는 생각하는 것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기록하고 눈으로 봐야 그때부터 뇌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시간관리 강사이면서도 제대로 실천하지 않았다.
퇴직 후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바인더를 펼쳤다. 그동안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간 시간들에 대한 후회와 다짐이 담긴 작은 몸부림이다.
시관관리의 비밀은 기록이다. 우리의 뇌는 생각만으로는 움직이지 않는다. 반드시 기록해야 한다.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할 때, 비로소 우리의 뇌는 작동하기 시작한다.
"오늘도 최고로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