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사랑한 것》
림태주 작가가 쓴 《오늘 사랑한 것》. 이 책은 부산큰솔나비 185회(2025. 2. 15.) 선정된 토론도서입니다.
우리는 종종 큰 행복을 찾아 멀리 바라보느라 가까이에 있는 작은 기쁨들을 놓치곤 합니다. 림태주 작가의 '오늘 사랑한 것'은 바로 이런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에 주목합니다. 작가는 마치 시를 쓰듯 자신의 하루하루를 들여다보며, 그 안에서 발견한 사랑스러운 순간들을 섬세하게 포착해냅니다.
책을 읽을 때 가급적이면 밑줄을 긋지 않으려고 안감힘을 씁니다. 한 챕터에 5개 이상 밑줄 치지 않으려고. 이 책을 페이지 곳곳에 눈에 밟혀 지나갈 수 없는 문장들이 진을 치고 있습니다.
문장을 읽고 내려가다 다시 돌아와 한참을 머물게 합니다. 때론 사랑을, 추억을, 그리움을, 아픔을, 삶을, 엄마를, 가족을......, 소환하게 됩니다.
이 책은 특별한 사건이나 극적인 전개 없이도 읽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구름, 바람, 눈, 봄, 밤, 꽃, 물, 별, 색, 책, 해님......, 평소 무심코 그냥 지나쳤던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생각하고 그리움을 더하게 합니다. 평범한 일상의 조각들이 작가의 시선을 통해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작가는 특유의 담백하고 따뜻하고 시적인 표현과 문체로 독자들에게 말을 건넵니다. 과장되지 않은 감정과 섬세한 관찰력으로 일상의 순간들을 포착하는 그의 글쓰기는, 카페에서 오래된 친구와 차 한 잔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편안한 느낌을 줍니다.
저자는 사랑한다는 것은 살아가는 것이고, 어제도 내일도 아닌 지금, 오늘을 살아간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오늘'의 소중함을 일깨워 줍니다. '지금, 오늘'을 살아간다는 것은 매 순간 의미를 두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관계한 모든 것에는 의미가 있다고 말이죠.
《오늘 사랑한 것》은 단순한 에세이집을 넘어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 됩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독자들도 자신의 하루 속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사랑스러운 순간들을 찾아보고 싶어 글을 짓고, 시를 짓고 싶어질 것입니다.
내 삶은 한 편의 시와 같습니다. 그냥 내 삶이면 되지 꼭 좋은 삶으로 평가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닮아가려는 순간 내 삶은 없어집니다. 그냥 오늘, 밥솥에 밥을 짓듯이 내 시를, 삶을 짓고 살아가면 됩니다. 훗날 누군가가 자유롭게 상상하고 해석할 수 있도록!
이 책은 행복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순간들 속에 숨어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따뜻한 위로의 글입니다. 바쁘고 지친 일상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특히, 글 쓰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나의 어록
지식은 나눌 수 있어도 인생은 각자의 몫이다.
내가 좋아하는 문장이 있을 뿐이지 모두가 좋아하는 “좋은 문장”이란 있을 수 없다.
그냥 내 글이면 되지 꼭 좋은 글로 평가받아야 하는 법이 있나요?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닮아가려는 순간 내 글은 없게 되잖아요.
새로 알게 된 지식
P37. 저어하다 : 염려 또는 두려워하다.
P71. 서붓 : 소리가 거의 나지 않을 정도로 발을 가볍게 내딛는 소리 또는 그 모양
P129. 기실 : 실제의 사정, 실제 있어서. 기실 알고 보니 인구는 멋진 놈이었다.
P182. 상사화 :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해 그리워한다.
P325. 퍼머컬처 permaculture : 자연과 사람의 영속적인 관계를 사유하고 디자인하는 기후 행동의 일환이자 자연 농법.
P326. 멀칭 : 농작물을 재배할 때 흙의 표면을 덮어주는 과정
책 속 문장
p7. 사랑한다는 말은 살아간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p40. 나는 행복하지 않은데 당신은 행복한가를 따져 묻는 것인가 싶어 바삐 머리를 굴리느라 연기가 난다.
p46. 어쩌면 마음이 외로워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몸이 춥지 않으려고 사랑하는 것이겠구나 하는 유물론적인 생각까지 하면서.
p54. 어떤 삶도 함부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는 존엄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아야 한다.
p55. 똑똑한 머리 열 개가 따뜻한 가슴 하나를 못 이긴다. 머 리를 사용해야 할 때가 있고 가슴을 사용해야 할 때가 있다.
P70. 겉으론 말짱해 보이는 것들도 속을 열어보면 우기의 밀림입니다. 그렇지만, 생은 또 흘러갑니다.
P71. 당신이 없는데도 날이 저뭅니다. 당신이 없는데도 버젓이 저녁이 옵니다.
P84. 사랑은 그냥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느끼고 견디고 욕망하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옳고 그것만 이 옹호됩니다. 이것이 요즘 내가 알고 있는 사랑의 정체입니다.
P88. 그러니 당신은 누군가에게 슬프고 아리고 아름다운 영감의 원천이라는 것, 어쨌든 당신은 누군가가 살아갈 이유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무슨 일로 당신이 그리하는지 까닭 정도는 말해줘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람이 꽃이 피고 잎이 지고 눈발이 날리는 때까지 개여울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시들어가지 않을 것 아닌가.
P112. 물들이고 물든다는 것만큼 매력적인 일이 없다. 생각해 보면 세상 모든 것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가 맡은 구역을 염색한다. 구름은 하늘을 염색하고 봄 은 숲을 염색하고 빛은 바람을 염색한다. 나는 너에게 물들어 사랑이 되고, 너는 나에게 물들어 시가 된다. 내가 쓰는 이 글 이 누군가에게 스며든다면 이 글도 염색 재료다. 나는 다만 내 문장의 명도와 채도를 염려할 뿐이다.
P124. 당신이 별이고 햇살이고 초록이고 가을이니 일없이 오시라 고 당부한다. 당신이 있으면 다 있는 것이라고 넌지시 말해준다. 그러면 그이는 메밀꽃처럼 소곤소곤한 웃음을 터트린다.
높다랗게 키를 올린 해바라기가 손님 차가 안 보일 때까지 노 랗게 손을 흔들며 서 있다.
P132. 겨울 해는 고양이 꼬리만큼 짧아서 붙들어도 금방 빠져나간다. 아껴가며 햇볕을 쬔다. 뜨끈한 국물을 마시듯이 글자들을 후루룩 삼킨다.
P150.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초속 5센티미터〉는 이루지 못한 운명적 첫사랑을 가슴에 품고 사는 남자의 애잔 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벚꽃이 지는 속도를 초속 5cm로 표현했는데 시속으로 환산하면 0.18km이다. 그리움의 속도다. 이 벚꽃 지는 속도로 내 입술이 너의 뺨에 가서 닿는다. 이것은 별 하나가 별 하나와 충돌한 것과 같은 우주적 사건이다. 편 지지의 활자들이 꽃잎처럼 하늘거리고 엷은 분홍이 가슴에 번지고 심박수가 빨라지고 적혈구들이 현란한 힙합 리듬을 탄다.
P157. 인류학자 헬렌 피셔는 이성에게 끌리는 이유 중에 하나도 더 브 맵 Love Map 이란 개념을 들었다. 러브 맵이란 어린 시절부터 무의식중에 쌓아온 취향과 성격에 관한 방대한 리스트다. 뇌에 새겨진 이상형 지도라고 할 수 있다. 자기만의 기준이 내 재해 있다가 사랑을 할 때 대상에 적용된다. 내가 저런 스타 일, 저런 포인트에 끌리는구나 하고 새롭게 나를 알게 된다.
P168. 오전과 오후 두 차례 우편함을 열어 본다. 우편배달부는 다녀가지 않았고 구름 두어 점만 우편함에 들어 있다.
P169. 구름은 무심하고 수국은 방심하고 나는 심심하고 사랑은 유 심하고. 여름은 마음 주기가 쉽지 않다.
P182. 〈상사화>란 노래가 떠올랐다. 나는 내 앞에 놓인 냉 면 그릇을 묵묵히 비웠다.
"상사화 알지?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하고 사무치게 그리워한다고 상사화라는 이름이 붙었잖아.
P184. 사랑은 모든 걸 멈추게 하지. 온통 일념 하게 만들지. 그 어떤 생도 그것에 수렴되고 말지
P195. 글을 쓰지 않고 살 수 있을 거라면, 글을 쓰지 마라.
P196. 쓰지 않았다면 나는 아무것도 사랑하지 못했을 것이다.
P197. 산다는 건 눈물겨운 일이지만 아름답다고 쓰면 비가 그치고 햇살이 쏟아지고 무지개가 떴다.
P199. 인간이 시를 쓴다는 것은 소리 없이 운다는 뜻이다.
p202. 가을이 깊다. 깊어서 가을의 속을 모르겠다. 나는 내가 있는 곳을 모르고도 살아가는구나. 마음들이 어디 가서 죽었는지 살아있는지도 모르고 살아가는구나. 왜 사랑했는지 왜 돌려보내졌는지 모르고도 살아가는구나. 살아갈수록 눈가가 흐려지는 일이 잦다. 기실 추억이 남는 게 아니라 남겨진 삶이 더듬는 회한이 자꾸만 살아오는 것이다.
P204. 글쓰기와 작가에 대한 명쾌한 정의들이 많다. "작가란 오늘 아침에 글을 쓴 사람이다. 미국 작가 로버타 진 브라이언트가 자신의 글쓰기 책 《누구나 글을 잘 쓸 수 있다》에 적어둔 이 말이 나는 마음에 든다.
P205. "작가란 쓰지 않는 때에도 쓰고 있는 사람이다. 내가 내린 작가의 정의는 이것이다. 작가와 작가가 아닌 사람의 차이는 글을 쓰지 않는 시간에 있다. 작가가 아닌 사람 은 글을 쓸 때만 작가가 된다. 그의 쓰기에는 시작과 끝이 확실히 있다. 그런데 작가는 글을 쓰고 있거나 글을 쓰고 있지 않거나 언제나 쓰기의 도중에 있다. 시작과 끝이 따로 없다. 그런 걸 일컬어 '쓰기를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서 살아가는과 사랑하는'은 확실히 동의어가 맞다.
P218. 버림은 잃음이 아니라 쓸모의 얻음이다. 버림은 잊음이 아니 라 사랑의 집중이다. 얻으려면 놓아야 하고, 살려면 지나온 불행과 다가올 근심을 망각해야 한다. 버리고 피하고 잊어도 늘 남는다. 인생은 모자라지 않는다. 넘쳐서 오히려 부족한 것들과 덜어내면 모자랄 거라는 기우까지 함께 내다 버려야. 오롯이 내가 남는다.
P227. 시가 구질구질한 삶의 현실에 소속돼 있다면 내 삶이 시와 아주 무관하지는 않으리라 희망했다.
P229. 단어는 개념이라는 의기가 세 들어 사는 집이다.
P231. 단어란 그 단당가 품고 있는 ‘의미의 학정’이 아니라 ‘의미의 그림자’혹은 ‘의미의 윤곽’이다.
P237. 심장을 갖고 싶다고 하면 서스펜스가 되지만 마음을 갖고 싶다고 하면 로맨스가 된다. 같은 언어의 다른 번역을 통해 장르의 교차를 보여 준다.
P251. 그가 보내온 시간을 맞으러 나는 나의 시간을 마중 보낸다. 서로의 시간이 모바일 화면에서 포옹한다.
P254. 살아간다는 것이다. 지나간다는 것은 지금 지나간다는 것이다. 쓴다는 것은 지금 쓴다는 것이다.
P258. 그리움은 수증기 같아서 마음을 촉촉하게 만들지만, 외로움 은 갈증 같아서 삶의 수분을 빼앗아 말라죽게 만든다. 그러 니 메모지 말고 그리운 생각을 곁에 두어야 한다. 그리워하고 있다고 안부를 전해야 한다. 마음을 실어 편지라도 보내야 한다.
P274. 구덩이를 파자 의미가 생겨났듯이 살아가자 이유가 생겨났다.
P289.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지 모두 가 좋아하는 좋은 사람'이란 있을 수가 없다.
P296. 첫눈에는 미량의 물과 다량의 기러기 울 음소리와 순도 백 퍼센트의 그리움이 함유돼 있다. 까닭에 첫눈은 먹어도 아무런 탈이 없다.
P313. 태양은 햇빛 가루를 레미콘 같은 데에다 싣고 다니다가 색과 향을 주문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쏟아붓는다.
P332. 인간은 구름만큼도 눈만큼, 봄만큼도, 밤만큼도 그들을 생각하지 않고 미안해하지 않는다. 인간은 인간을 벗 어나서는 정말이지 어떠한 생각도 하지 못하는 존재다. 구름의 입장에서 완전 쓸모없는 종이 지구에 딱 하나 있는 것이다. 밤은 생각해 보는 것이다, 언제까지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을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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