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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제목을 지어주세요!

by 정글


림태주 작가의 《오늘 사랑한 것》 마지막 에필로그 다음 문장이 마음에 와닿았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 가진 일종의 직업병일 텐데, 나는 습관적으로 의미를 찾고 무엇이든 정의를 내려보려고 하는 질병을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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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깨달았다. 자연의 모든 사물과 현상은 원래 의미가 없고, 그래서 거슬림이 없다는 것을. 꽃이 피고 지는 것, 물이 흐르고 스미는 것, 새가 울고 바람이 부는 것,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 이 모든 게 이유가 없어서 자연스럽고 변함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왜 그림에 제목이 없어요? 제목이 있더라도 무제 I, 무제 II 하고 달려 있는데, 제목 붙이는 일에 화가들은 너무 성의가 없는 것 아니에요?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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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하나의 작품으로 있으면 되지 꼭 무엇이라고 정해서 있어야 한다는 법이 있나요? 이것이라고 명명하는 순간 그것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되잖아요. 사과라고 정해진 순간 사과가 사과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보는 사람에게 맡기는 거죠. 자유롭게 상상하고 해석할 수 있도록."


“글을 쓰는 사람들이 가진 일종의 직업병이 습관적으로 의미를 찾고 무엇이든 정의를 내려보려고 하는 질병을 앓고 있다."라는 말에 위로가 됐다.


오늘 아침도 어김없이 '누구에게 무엇을, 어떤 의미로 써야 하나' 고민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꽃이 피고, 물이 흐르고, 새가 울고, 바람이 불듯 자연스럽게 써도 되겠구나. 그림에 '무제'라는 제목을 다는 이유가 "보는 사람이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도록"이라는 구절에서 답을 찾았다. 그래, 오늘은 의미 부여 없이 독자의 상상에 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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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일찍 아내가 상주 교회 캠프에 간다고 서둘렀다. 7시 20분, 부산 좌천동 지하철역 5번 출구까지 배웅하며 나도 카페로 향했다. 투썸플레이스 초량점까지 한 정거장, 걸어가기로 했다. 거리는 아침 추위를 피해 모자와 목도리로 중무장한 사람들이 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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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앞 야채 트럭에서는 대파, 양파, 무, 양배추 자루가 내려지고 있었다. 빌딩 틈새로 비치는 아침 햇살에 발걸음을 멈췄다. 해님이 엄청 컸다. 오랜만에 보는 일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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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30분, 투썸플레이스 카페 2층 창가 자리. 따스한 햇볕을 마주하고 185회 부산큰솔나비 진행 PPT를 만들었다. 점심시간, 늘 가던 해물요리 집이 문을 닫았다. 친절하던 할머니 얼굴이 아른거렸다. 한참을 헤매다 결국 고등어찜으로 끼니를 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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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17번 버스를 타고 부산진구 문화센터로 향했다. 책과 책상, 편안한 소파가 있는 이곳은 무료 개방이라 마음이 놓인다. 커피를 따로 시킬 필요도, 오래 있는다고 눈치 볼 필요도 없어서 좋다. 강의안을 다듬고 무료특강 블로그 포스팅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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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 아침에 보았던 그 해는 이제 산에 걸려 피곤한 얼굴로 내려가고 있었다. 주변이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집에 돌아와 데운 된장국에 콩나물무침을 곁들여 비빔밥을 만들어 저녁을 먹고, 장기 대국을 보다가 화들짝 놀랐다. 전자책 특강 시작 5분 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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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8시부터 11시까지 3시간 자이언트북 컨설팅 이은대 대표가 주관하는 전자책 제작 특강을 들었다. “정인구 작가님, ‘챗 GPT, 미리캔버스, 유페이퍼’ 열어두세요. 혹 전자책 쓰고 싶은 것 있으세요.” 없다고 답했다. 미리 준비할 걸 후회됐다. 1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보고 있다. 나의 사례를 예시로 들어 수업을 진행했다. 3시간 내내 긴장됐다.


밤 11시 20분. 이번 주 토론도서를 《오늘 사랑한 것》 책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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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27 “햇살이 초록에게 말한다. 관절이 다 분질러질 지경이라고, 예전에는 지상의 초록이 푹신푹신했는데 지금은 딱딱한 시멘트 바닥 같다고. 지구로 간 모든 사랑이 비상이고 불시착이라고.” 이 문장이 마음에 들어왔다. 밑줄을 그었다.


자정이다. 나도 관절이 아프다. 나는 누구한테 말해야 하나.


오늘도 최고로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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