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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이라는 무게

by 정글


"집사님이 이제 교구장을 좀 해 주셔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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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한마디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뺀질거리며 피해 다니던 교회 봉사, 봉사하기기 싫어 안수집사 임직을 안 받으려 했는데 어쩌다 안수집사가 되었다. 근데, 교구장이라니. 전임자의 간곡한 부탁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긴 했지만, 마음 한편이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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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는 월 1회, 주일예배를 마치고 오후 1시 교구(사는 곳 구역을 편성) 별로 모여 교구장 진행으로 예배와 교제를 나누는 시간이 있다. 약 2시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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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님께 전달받은 진행 방법이 적힌 수첩을 펼쳤다. 모임 장소에 와이파이가 안된다. 찬양 영상은 미리 다운로드했다.


오프닝에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유튜브 영상을 보며 '가라사대' 게임도 준비했다. 거울 앞에서 오프닝 멘트를 연습하는데 손발이 오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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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제가 가라사대라는 말을 하면 따라 하시고, 안 하면..."


독서모임 J 선배의 능숙한 사회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좀 배워둘걸. 주기도문까지 시트에 적어두고 리허설도 수차례. 그런데도 왜 이리 어색한지.


주일 오전 9시 예배를 드리고 처음으로 찾은 지하 기도실. 두 평 남짓한 공간에 놓인 독서대 위 성경이 내 부족함을 보는 듯했다. 기도를 시작했지만 마음은 딴 데 가 있었다. 결국 또다시 진행 시트를 꺼내들었다. 하나님께 드려야 할 시간에 나는 여전히 내 것에 매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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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모임실에 도착하니 여성 집사들과 권사님이 김밥과 어묵 국물을 준비하고 있었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손바닥에선 땀이 배어났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이번부터 교구장을 맡게 된 정인구입니다..."



좌충우돌 두 시간이 지났다. 누군가 "잘 하는 구먼, 그렇게 하면 돼 분위기가 다르구먼......,"


K 집사 격려 말에 마음이 군고구마처럼 따뜻해졌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 힘으로만 하려 했던 교만함을, 기도로 시작하지 않은 불순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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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할 때는 쉬워 보였다. 왜 진행을 저렇게 하지 이러면 될 텐데......, 혼자 중얼거렸었다. 실제 내가 해보니 그동안 진행했던 교구장이 한없이 높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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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강의할 때면 늘 외치던 말, '잘'이라는 단어만 빼면 세상살이가 단순해진다고 수강생들에게 핏대를 올렸었다. 그런데 정작 나는, 잘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 하나님을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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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모임 진행 결과 보고서를 작성하며 생각했다. 앞으로의 교구장 예배, 이제는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의 시간으로 만들어야겠다고. 부족한 그릇에 부어주실 은혜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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