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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와 세번의 걸레질

by 정글


“회장님, 죄송합니다. 오늘 기도회에 참석할 수 없겠습니다.”

“아닙니다. 임원 100% 참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신경 쓰지 마시고 강의 잘 하세요.”

교회 금요 기도회 예배에 남선교회 임원 6명이 참석하여 앞자리에서 예배를 드리기로 2주 전부터 약속했었다. 예배당 앞자리가 비어 있는 모습이 좋지 않다고, 우리가 모범을 보이자는 것이 남선교회장의 생각이다. 임원들 모두 그렇게 하기로 굳게 약속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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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다. 회장님과 임원들에게 미안했다. 정작 마음에 걸리는 것은 시간 관리와 일정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었다. 또 내 신앙이 많이 식어 하나님이 나를 보며 차가운 눈물을 흘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가 싫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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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마친 후에도 개운하지 않았다. 시간 관리를 제대로 할걸, 기록이 중요하다고 글도 쓰고, 학인들에게 시간 관리 강의를 하면서 정작 자신이 지키지 못하는 게 무슨 강사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냐고 자괴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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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남선교회 회원 교회 식당 봉사가 있는 날이다. 참석하여 만회(?)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교회 식당 청소 봉사하는 날이다. 원래 오후 4시였는데, 회원 한 분이 톡방에 공지했다. 오전 10시에 모여 식당 청소한 후, 11시 30분에 교회 출발하여 밀양으로 차로 이동 '미나리 삼겹살'을 먹고 오자고 제안했다.


일정이 갑자기 바뀌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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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부터 있는 망고보드 특강으로 나는 또 참석할 수 없었다. 이미 공지한 강의 안 할 수도 없다. 더 이상 변명하고 핑계 댈 말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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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40분, ZOOM을 열었다. 열자마자 학인 한 분이 입장했다. 인사를 나누고 준비하다 보니 10시가 되었다.


원래 10시부터 11시 30분까지 강의하기로 했는데, 몰입해서 강의하다 보니 쉬는 시간도 없이 2시간 30분을 풀로 달렸다. 12시 30분에 강의가 끝났다. 원래 강의 계획보다 1시간 초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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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생 일정도 있을 텐데 또 미안했다. 몰입해서 하다 보니 한인들을 막 달달하고 핀잔을 주며 강의를 했던 것 같다. 스스로 강의에 도취되어 배우는 사람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했던 것 같아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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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 아니라 강의를 마치고 나서 단톡방을 열었더니 교육 ZOOM 링크를 보내 달라는 메시지가 2통이나 와 있었다. 강의 시작 시각 최소 5분 전까지는 구글폼에 신청자를 확인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참여하지 못한 분에게 전화해서 용서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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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들의 소중한 주말 시간을 망친 건 아닌지 마음이 쓸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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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에 기대 눈을 감았다. 몸과 마음이 바닥을 뚫고 지하로 처지는 기분이 들었다. 한참을 있었다.

“여보, 북엇국 진짜 맛있다. 먹어봐라.” 아내가 거실에서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

아내는 다른 것도 잘하지만 음식 솜씨는 일품이다. 북어국에 밥 두 공기를 게눈 감추듯 해치웠다.


빈 밥통을 들고 설거지 통앞으로 갔다. 수세미에 세제를 듬뿍 묻혀 그릇을 빡빡 씻었다.


수돗물을 최대한 열어 쏟아지는 수돗물과 하얀 거품에 내 마음속의 미안한 마음과 자책감의 찌꺼기도 함께 흘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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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레를 빨아 방을 닦았다. 책상 밑에 먼지가 잔뜩 묻어 있는 양말 한 짝을 세탁기에 넣었다.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책들을 책꽂이에 꽂았다. 책상 위의 휴지, 메모지, 종이 쪼가리를 휴지통에 넣고 책상을 닦았다. 세 번이나 걸레를 빨고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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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책꽂이에 꽃이 있던 바인더를 꺼내 먼지를 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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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주간 일정표를 펼치고 펜을 들었다.

바인더가 나를 째려봤다. 어디 갔다 왔느냐고!

아무 말 없이 빈칸에 무엇을 채울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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