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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건넌 인생의 횡단보도

by 정글


“엄마, 선생님이 초록 불일 때 건너면 절대 안 된다고 했는데”


“지금 안 건너면 유치원 지각이야, 어쩔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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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사이에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었다. 몸이 날릴 것 같고, 귀가 떨어져 가는 것 같았다. 햇볕이 드는 양지쪽만 걸어 2차선 도로 횡단보도 앞에 섰다.


맞은편에서는 한 여자아이와 엄마가 이쪽으로 건너오려고 뛰어오고 있었다. 네 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는 엄마 손에 매달려 작은 다리로 필사적으로 따라가고 있었지만, 표정이 힘겨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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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횡단보도를 건너 아파트 빌딩 사이에 있는 유치원 건물를 향하여 엄마 손에 매달려 힘겹게 올라가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오전 9시까지 3분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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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육아로 힘들었던 때가 생각났다.


맞벌이 부부로 아이를 키우는 일은 매일이 전쟁과도 같았다. 아침이면 잠이 덜 깬 아이를 억지로 깨워 옷을 입히고, 탁아방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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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떨어지지 않으려고 울어댔고, 탁아방 선생님에게 아이를 맡기는 순간 죄책감이 몰려왔다. 아이의 울부짖는 소리를 뒤로한 채 탁아방 문을 나서면서, 아내는 닭똥 같은 눈물을 훔치며 버스정류장으로 뛰어갔다.


그 아이는 어느새 아버지가 되었다.


다음 달이면 손자에 이어 손녀까지 태어난다. 며느리는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맞벌이는 절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아이도 힘닿는 데까지 낳을 거예요."


라고 말하는 그 모습이 참 행복해 보인다. 비록 아들의 월급 삼백오십만 원으로 며느리와 손자, 강아지 봉봉이, 그리고 곧 태어날 손녀까지 다섯 식구가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들은 전혀 걱정하는 기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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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게도 쥐꼬리만한 월급으로도 며느리는 살림을 알뜰하게 꾸려가고 있다. 아이를 키우며 행복해하는 아들 가정을 볼 때마다,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오직 하루하루 아이 키우는 재미로 살아가는 그들이 놀랍기만 하다. 설마 손자, 손녀 열두 명을 낳으려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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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 전, 아내와 신혼여행을 다녀와 주례 선생님께 인사드렸을 때 생각이 난다. 주례 선생님의 첫 말씀이 "가능하면 아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하면 좋겠다"였다. 당시에는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이 한 푼도 없는데, 아이 키우고 집도 장만하려면 두 사람이 열심히 벌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결국 아들에게 소홀할 수밖에 없었고, 아이 키우는 일이 짐처럼 느껴졌다. 진정한 행복을 만끽하지 못했던 시간들이었다. 아내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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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출산을 앞두고 손자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사진 속 아들과 손자, 며느리, 그리고 뱃속에 있는 손녀 이레까지... 그들의 얼굴에는 근심이나 걱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고, 오직 행복만이 가득해 보였다.


'그래, 이 행복 그대로 지켜가렴. 맞벌이하지 말고.'


아빠와 엄마가 살아있는 동안 힘닿는 데까지 도울게. 아이도 힘닿는 데까지 낳아라(설마 열두 명은 아니겠재?). 엄마, 아빠가 탁아방에서 울던 너의 울음소리, 눈물. 이제라도 닦아주고 보듬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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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서두르면 놓치는 것이 너무 많다. 가끔은 빨간불 앞에서 멈추어 서는 것이, 우리 삶의 속도를 늦추고 진짜 소중한 것들을 보게 해주는 신호인지 모른다. 지금 돌아보니, 그때 우리가 잠시 멈춰 서서 소중한 것이 뭔지 생각했더라면 놓치지 않았을 순간들이 참 많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최고로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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