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은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라는 책의 구절이 종일 내 마음에 맴돌았다.
"우리는 삶의 최후 순간까지 혼자 싸우는 게 아니었다.
고개만 돌려보아도 바로 옆에, 그리고 뒤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퇴직했지만 여전히 분주한 일상이다. 강의를 듣고, 내용을 요약하고, 강의안을 만들고, 강의하고, 글을 쓰고...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농담이 실감 나는 요즘이다.
"여보, 오늘 동래 온천장 간다. 좀 데려다줘!"
아내의 부탁에 집에서 40여 분 거리에 있는 온천장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 사무실에 가서 강의 준비를 하려다 오후 치과 예약이 생각나 치과 근처 문화센터로 운전대를 돌렸다.
노트북을 펼쳤다. 벌써 오전 11시. 강의안을 만들고 있는데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K 작가였다. 줌에 익숙하지 않아 지난 글쓰기 수업에 접속하지 못했다며, 시간 있으면 카페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물었다.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어느새 만덕터널 입구로 향하고 있었다.
점심을 함께 먹고 카페에서 줌 운용 방법을 알려주었다. 하다 보니 블로그 작성법, 대문 만들기, 휴대폰 블로그 앱 세팅까지 마쳤다. 치과 예약 시간이 다가와 서둘러 치과로 달려갔다.
치과에서는 치조골 이식 수술 실밥을 뽑았다. 의사가 손거울을 건네며 입안을 보라 했다. 곳곳에 음식물 찌꺼기가 보였다. 마치 어린아이에게 가르치듯 잇몸 사이 양치 법을 세세하게 알려주었다. 칫솔에는 피가 가득 고였다. 이어서 치간 칫솔 활용법도 배웠다.
의사는 옆에 서서 직접 해보라며 지켜봤다. 그래야 느낄 수 있다고. 칫솔질 하는 모습을 보며 약간의 수정 사항도 알려주었다. 엄마가 아이에게 양치질을 가르치듯 세심한 진료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다시 문화센터에 와서 노트북을 켰을 때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사무실로 데리러 와 달라고. 비가 조금씩 온다고. 갈까 말까 망설이다 버스나 택시를 타고 오면 안 되겠냐고 설득(?)했다. 이러다 종일 내 일을 하나도 못할 것 같았다. 전화를 끊고 나니 죄책감이 밀려왔다. 다른 사람이 오라고 할 때는 먼 길도 마다않고 달려가면서, 정작 아내에게는 그러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가 문화센터에 도착했다. 결국 또 노트북을 닫았다.
삶은 혼자가 아니다. 고개만 돌려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엄마처럼 양치질을 가르쳐 주는 의사가 있고, 부족하지만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고, 가족이 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간다. 짧은 삶, 불평하고 비난할 시간이 없다.
위지안 작가의 말처럼 고개만 돌려도 바로 옆에, 그리고 뒤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랑만 하고 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누군가 곁에 있다는 건 행복이고, 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