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생활할 때는 ‘회사가 바쁘다’는 핑계로 아내 생일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다. 생일 전 날 급히 귀걸이를 주문해 생일날 건네거나, 때로는 아내가 언급하기 전까지 생일을 완전히 잊기도 했다.
퇴직 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책 읽고, 강의 듣고, 강의하며 여전히 분주하게 지냈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정작 소중한 사람을 위한 시간은 만들지 못했다.
아내의 60번째 생일이 다가왔다. 이번만큼은 특별하게 해주고 싶었다. 두 아들과 단체 톡 방을 만들어 계획을 세웠다. 마침 생일이 연휴와 겹쳐, 충남 서산에 사는 큰아들 집에서 보내기로 했다. 영상과 사진으로만 봤던 손주를 직접 만나는 것만으로도 아내가 행복해할 것이라 생각했다.
작은 아들은 회사 일로 서산에 함께 가지 못한다고 했다. 대신 출발 하루 전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하기로. 아내에게 연락해 저녁을 먹자고 제안하라고 했다. 깜짝 축하파티를 해 주자고.
작은 아들과 선물을 고민했다. 내가 평소처럼 귀걸이를 제안했지만, 아들은 화장품이 좋겠다고 했다. 결국 아들이 고른 화장품과 내가 거금(?)을 주고 특별 주문한 꽃다발로 준비했다. 함께 동네 파리바게뜨에서 케이크도 샀다. 아들은 화장품을 그냥 건네도 되는데도 편의점에서 분홍색 쇼핑백을 따로 사서 정성껏 포장했다. 현금을 예쁜 봉투에 넣는 세심함도 잊지 않았다. 아무래도 아들은 딸로 태어날 찰나 신이 실수를 한 것 같다.
"웬 케이크?" 우리가 들어서자 아내가 물었다.
"엄마, 내일 생일이잖아!"
“어머, 내 생일이가?”
우리 둘을 보고 아내 얼굴이 금세 환해졌다.
아내는 아들이 온다고 수육 김치찜을 정성껏 준비했다. 몇 시간을 끓였는지 돼지고기와 묵은 김치가 부드럽게 익어있었다. 케이크, 와인, 선물, 용돈을 건네며 축하파티를 열었다. 아내의 입꼬리가 길게 올라가고, 촉촉한 눈망울 속에 촛불이 춤을 추고 있었다.
다음 날, 부산에서 천 리 길을 달려 서산에 도착했다. 큰아들이 예약한 한정식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손자의 재잘거림과 아들 부부의 축하 속에서 아내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
만삭인 며느리와 함께 출산용품을 구입하고, 재롱떠는 손주와 2박 3일을 보내는 동안, 아내의 얼굴은 신혼 때처럼 빛났다.
지금까지 행복이 무엇인지,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뭔가를 이루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다.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곁에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고 살았다.
아내의 60번째 생일, 앞으로는 이런 소중한 시간을 자주 만들어야겠다. 때로는 멀리 보이는 큰 목표보다, 가까이에 있는 소중한 사람과의 작은 행복이 더 값진 선물임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오늘도 최고로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