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럴 때는 내려놓는 마음이 필요하다."
"여보, 오늘 날씨 정말 좋다!"
지난달 토요일 오후, 부산 수영만 요트 선착장. 교회 집사 부부들과 함께 떠나는 요트 투어 날이었다.
바람 한 점 없이 맑은 하늘, 잔잔한 물살을 가르며 요트는 바다 가운데로 달렸다. 탁 트인 푸른 바다, 난 크게 심호흡을 했다. 아내와 여 집사들은 요트 2층 난간에 두 다리를 뻗고 석양과 바닷바람을 맞으며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모습이 정겨워 보였다.
나는 1층, 뱃머리 앞쪽에서 휴대폰을 꺼내 연신 셔터를 눌렀다.
"와, 광안대교가 이렇게 멋있나?"
해운대 빌딩 숲이 한눈에 들어왔다. 언제 이렇게 높은 건물들이 생겼는지, 마치 외국에 온 기분이었다.
해가 지기 시작했다. 광안대교 너머로 붉은 노을이 번지면서 하늘 전체가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태양 주위가 점점 붉게 타오르고 주변은 검게 변해갔다. 나는 요트 난간 이곳저곳을 다니며 연신 휴대폰 셔터를 눌렀다. 잊지 않지 위해 영상을 더 많이 찍었다.
"여보, 내려와! 사진 찍게!"
2층에 있던 아내가 1층으로 내려왔다. 요트 맨 앞에서 팔을 벌리고 우리는 타이타닉 주인공 포즈를 취했다. 위험해 보였지만 멋진 사진을 위해서라면!
"여보, 휴대폰 바다에 빠뜨릴라 조심해!"
아내의 경고에 손목에 건 휴대폰 링을 꽉 잡았다.
요트는 반환점을 지나 다시 육지 쪽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해운대 야경 보며 영상을 찍었다. 요트 관계자가 가로 1미터 직경 15센티미터쯤 되는 폭죽 봉 5개를 뱃머리에 설치했다.
요트들이 하나둘 우리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요트 10여 대가 적진을 향해 함포를 쏘려는 듯이 벼르고 있었다.
폭죽에 불을 붙였다.
"슛~ 펑! 버퍼벅 빵!"
폭죽 다섯 발이 일제히 하늘로 올라 불꽃은 터뜨렸다. 함께 모여있던 요트마다 쏜 폭죽이 하늘을 불꽃으로 수놓았다. 해운대와 광안리 야경을 배경으로 터지는 불꽃을 보고 나는 휴대폰으로 영상을 쉴 새 없이 촬영했다.
불꽃축제가 끝나고 요트는 선착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집사님, 뱃머리에서 사진 찍어드릴게요!"
남현우 집사가 카메라를 들고 말했다.
"네, 집사님!"
나는 뱃머리로 가서 두 손을 들어 만세 자세를 취했다.
"아니, 집사님. 휴대폰 넣고 뒤돌아서 보세요. 뒤 포즈가 더 멋있게 나올 거예요."
그 순간이었다. 뒤돌아서면서 급하게 휴대폰을 바지 주머니에 넣으려던 순간...
철벅!
"어?"
휴대폰이 주머니가 아닌 바닷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순간 어찌할 바를 몰랐다. 모든 소리가 멈췄다. 바람 소리도, 파도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내 심장 뛰는 소리만 쿵쿵거렸다.
"아이구, 어짜노?"
나는 바다를 뚫어져라 바라보다 돌아섰다. 주변에 사람들 시선이 온통 나에게 집중되었다. 황당하고 쪽팔리고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지 민망했다. 아이폰 찾는다고 바다로 뛰어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덤벙대다가 내 그럴 줄 알았다."
아내의 차가운 목소리다 더 아팠다.
"남편이 안 빠진 게 천만다행이다!"
주변에서 위로했지만 아내는 '차라리 같이 들어가지'라고 말하는 표정이었다.
집으로 가는 버스 맨 뒷자리. 창밖만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오늘 찍은 사진들은 다 날아갔구나...'
'전화번호는? 중요한 자료들은?'
'할부금은 아직 2년이나 남았는데...'
머리가 복잡했다.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자꾸 생각났다. 아내가 휴대폰 조심하라고 할 때 말을 들을걸, 새로 구입하려면 150만 원 거금이 들 텐데.., 즐거웠던 여흥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집에 오는 내내 아내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집에 와서 저녁도 거르고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즐거워야 할 토요일 밤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마치 내 수족이 잘려나간 것처럼 허전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거실에서 아내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내에게 미안함과 분노가 동시에 밀려왔다. 책을 읽고 강의를 하면서 수없이 외쳤던 긍정의 언어와 생각들은 메아리에 불과했다.
그러다 마음을 가다듬었다. 곰곰 생각해 보니 이건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사진 찍을 때는 충분히 조심했다. 다른 사람이 찍어준다기에 급한 마음에 휴대폰을 내 호주머니에 넣다가 빠져버렸다. 나이가 들다 보니 물건을 자주 놓치는 경우가 잦다. 이건 내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아, 그냥 냅둬라."
월요일 아침 서면 롯데백화점 아이폰 매장으로 갔다. 어차피 바꾸는 거 화면도 크고 메모리 용량도 큰 걸로 사고 싶었지만 염치가 있어야지, 같은 모델로 골랐다.
"어? 손님, 다행이네요!"
직원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아이클라우드에 모든 데이터가 백업되어 있어요! 이렇게 백업해 둔 분은 정말 드문데요. 모든 사진, 연락처, 앱이 그대로 살아났다. 그날 찍은 사진은 제외하고.
인생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내가 겪어보니 생각대로 마음이 추슬러지지 않았다. 그래서 노트에 기록해 봤다.
할 수 있는 일 : 새 아이폰 사기, 더 조심하기, 그냥 냅 두기.
할 수 없는 일 : 시간 되돌리기, 바다에서 폰 건지기, 이미 일어난 일 바꾸기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게 생기기 마련이다. 친구가 뒤에서 내 험담을 했다고 내가 어떻게 그걸 막을 수 있나? 회사 팀장이 자꾸 괴롭힌다고, 시어머니가 전화 와서 나를 나무란다고, 내가 어찌할 방법이 없지 않은가? 어쩔 수 없는 일은 그냥 내버려 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하자.
그러니까 "그냥 냅둬라!"
할 수 없는 일에 매달리면 내 기분만 망친다. 내 기분이 망치면 내 인생도 망친다. 때로는 내려놓는 마음이 필요하다. 이것이 인생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지금 부산 바다 어딘가에서
물고기들과 놀고 있을
내 아이폰에게 말하고 싶다.
"고마웠어! 덕분에 새 폰도 얻고,
인생 지혜도 하나 배웠다!"라고.
그리고
"네 후임이야, 인사해!
입사한 지 30일 됐어!"
오늘도 최고로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