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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벙대는 나, 정말 문제일까?

by 정글

"또야?"


지난달 부부동반으로 요트투어를 갔다가 바다에 아이폰을 빠뜨려버렸다. 아내 잔소리 세례를 받으며 150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새 아이폰을 샀다.


한 달 후인 5월 23일, 아내가 우체국에 보험청구하러 가자고 했다. 날씨가 애매해 겉옷을 챙겨 나섰다가, 더워지자 벗어서 손에 들고 걸었다. 우체국에 도착해서야 휴대폰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차에 두고 왔겠거니 했는데, 차에도 없었다.

집으로 가는 길, 지난달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집을 뒤져봐도 휴대폰은 보이지 않았다.


"또야, 산 지 얼마 됐다고..."


매서운 아내의 시선을 피해 지하 주차장으로 향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또 내가 그랬네."

차 의자 밑을 샅샅이 뒤져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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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에 분실신고를 하고 우체국까지의 동선을 되짚어보기로 했다. 아내는 계속 내 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어, 받는다! 혹시 휴대폰 주우신 건가요?"

"네, 편의점 앞 화단에서 주웠어요."


휴대폰 너머로 들리는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자애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연둣빛 가로수 잎이 유난히 빛났다. 액셀리이터를 힘주어 밟았다. 겉옷을 들고 가다 떨어뜨린 모양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에게서 휴대폰을 돌려받았다. 얼마나 이뻐 보이던지! 고맙다며 만 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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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아내가 정리수납자격시험 합격자 명단을 톡으로 보내왔다. 자격증을 발급해서 S 구청으로 보내달라고. '우 C~ 자기가 하면 될 텐데..., ' 자격증 발급은 이름, 생년월일, 자격 발급번호 등을 여러 번을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운 일이다. 나는 이런 확인 절차가 싫다. 지난번에도 생년월일을 잘 못 입력해 재 발급해 준 적이 있었다.


우체국에 가서 기표지에 주소를 적고 우편물을 보내고 왔다. 다음날, 우체국에 만년필을 두고 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결국 또 잃어버린 것이다. 아내가 '또야~"라고 말할 것 같아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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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나는 스스로를 '덤벙대는 사람'으로 규정하며 살아왔다. 연필을 자주 잃어버리고, 숙제를 놓고 오고, 계단에서 헛디디고, 문에 어깨를 부딪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고 체념했다.


그런데 바다에 빠진 휴대폰을 새로 사고, 한 달 만에 그 마저 잃어버렸다가 다행히 찾았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나만 이런 일을 겪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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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전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카드를 빼지 않고 온 적이 있었다. 카드를 찾으러 갔을 때, 그곳에는 찾아가지 않은 카드들이 15센티미터 높이의 종이상자에 빼곡히 쌓여 있었다. 대충 봐도 100여 장은 되어 보였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친구 K는 작년에 지갑을 잃어버렸고, 아내도 비싸게 산 선글라스를 분실했다. 얼마 전 회사 동기 모임에서 M은 차 열쇠를 찾느라 한 시간을 헤맸다. 교회 J 집사는 안경을 머리에 올려놓고 안경을 찾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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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물건을 잃어버리고, 실수하고, 가끔 엉뚱한 일을 한다. 다만 나는 내 실수에만 유독 예민하게 반응하고, 오래 기억하고, 그것을 내 정체성으로 만들어버렸을 뿐이었다.


내가 덤벙댄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평범하고 인간다운 모습이었구나.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가끔 실수해도 그게 나를 정의하지는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어제 점심시간, 돼지국밥을 먹고 계산하고 사무실로 오는 데 뒤에서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니 종업원이 책을 손에 들고 흔들고 있었다. "또 내가 그랬네" 대신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지"라며 자책 대신 나를 이해하는 여유가 생겼다. 그렇지만 중요한 일에는 덤벙대지 않으려 애쓴다.


은유 작가는 '자소서'가 아니라 '자소설'라고 했다. "글쓰기가 자기를 겉꾸미고 남의 삶을 끌어다가 왜곡하고 자기 편의대로 가공하는 수단이 되는 게 어쩐지 가슴 아프다. 약한 것, 모자란 것, 초라한 것을 가리고 누르는 수단이 되는 게 너무도 쓸쓸하다."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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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글쓰기는 나라는 결점의 창문을 통해 타인의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것이다. 결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결점이 아닐 수도 있다. 단지 내가 나에게 붙인 라벨일 뿐.




오늘도 최고로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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