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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되려면 딴짓부터 시작해야.

by 정글


글을 쓴다는 것은 나를 나 아닌 것의

실험장으로 만드는 일이다.

-잉게보르그 바하만

은유.《쓰기의 말들. 필사, #66.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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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필사하면서 이 구절이 마음으로 들어왔다.

"인생은 미친 짓으로 위대해지고,

글쓰기는 꾸준한 딴짓으로 가능해진다고 말해도 좋을까"



문학이나 여행 에세이에서는 미친 짓이 단골 소재인데

은유 작가는 소심해서 미친 짓은 못하고 비틀어 딴짓을 한다고.

그래서 미친 짓과 딴짓을 구분해 봤다.


미친 짓

집을 팔아서 세계여행을 가거나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요리를 배워 레스토랑을 차리거나

길에서 만나 운명처럼 사랑에 빠지고

가족을 떠나거나


딴짓

평소 일반버스를 탔으면 마을버스를 타고 환승을 한다든가

버스 도착시간을 보지 않고 버스정류장에 가서 멍하니 시간을 보낸다든가

신호등을 한 번 거르고 다음 신호등에 건넌다든가

한 번도 안 먹어본 음료를 시킨다든가


글쓰기 스승 이은대 작가는

글 쓰는 작가는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해 보라고 했다.

늘 출근하던 길이 아닌 길로 돌아서 가 보고,

지하철만 타지 말고 버스를 타보고

지하철에서 휴대폰만 보지 말고,

관찰하고 메모하라고 했다.

오늘은 앞에 있는 사람들 신발, 표정, 옷차림만.....,


아무 생각 없이 재래시장에도 가보고,

혼자서 산책도 해 보고, 영화나 드라마도 보고, 여행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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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지시(?)들이 은유 작가가

말하는 딴짓이라는 걸 알았다.


남들과 똑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보면

재미가 없고, 비틀고 쥐어짜고 다르게 봐야

독자가 흥미를 갖게 된다고.


어제 딴짓한 게 뭐가 있는지 생각해 봤다.

유튜브로 봤다. 우연히 눈에 띈 드라마,

시간 아깝다 하면서 결말이 궁금해

끝까지 보게 되었다.


주인공 심우주는 학교에서 집에 도착했을 때,

아빠가 바람이 나서 바람난 여자와 함께

집을 나가는 것을 보고 충격에 빠진다.

그때부터 아빠와 바람난 여자에게

복수의 칼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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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된 그녀는 아빠와 바람난 여자

아들 회사를 망하게 할 목적으로 위장취업하게 된다.

하지만 복수는커녕, 회사 대표인 그녀 아들

동진과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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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대사를 보고 '이렇게 쓰는 게

비틀고 다르게 보는 거구나'라며 대사를 훔쳐 왔다.


복수 당위성에 관한 대사

"매일, 매 순간 매초마다 생각했어. '내 주제에 무슨 복수냐, 관두자, 참는 게 남는 거다' 근데 이거 내 생각이 아니라 우리 엄마가 입에 달고 산 말이거든? 나는 여전히 그때 우리 엄마가 그 아줌마 머리채라도 잡았어야 된다고 생각해. 그럼 적어도 암은 안 걸렸을 거 같아. 그래서 난 뭐라도 해야겠다고. 안 그럼 내가 미쳐 버릴 거 같거든."


사랑에 관한 표현

"나는 그냥 시험 때려치고 집 나간 심지구보다, 나 때문에 이렇게 미쳐서 팔짝 뛰는 너보다, 몇 살인지도 모르는 애랑 사귀는 심혜성보다, 아픈 엄마보다, 그냥 그 사람이 조금 더 걱정됐을 뿐이야. 그냥 그 사람이 좀 덜 외로웠으면 좋겠는데 이게 뭐, 이게 뭔데?"


용서에 관한여

"나 한동진 씨 어머니 만났어요. 가끔 남들은 다 앞으로 걷고 있는 거 같은데 왜 나만 늘 뒤로 걷는 기분일까 궁금했는데 미워하는 마음이 무거워서 그랬구나, 내려놓고 나니까 결론이 났어요. 한동진 씨 안 만났으면 난 평생 뒤로 걸었을 거예요. 내가 누군지 밝히고 나면 미움받을까 봐 그게 너무 무서워서."




어쩌면 이런 대사를 쓸 수 있을까?

드라마 작가가 존경스러웠다.


작가는 미친 짓과 딴짓을 잘하는 사람이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책 읽고, 필사하고, 흉내 내고,

세상을 다르게 보는 눈을 키워야...,

매일 아침 이런 고민을 한다.



아침, 최은영 작가 장편 소설《밝은 밤》을

손에 들고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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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는 도시의 서쪽인 고지대에 자리했다. 아파트 정문 근처에는 농협 마트가, 후문 쪽에는 등산로 초입이 있었다. 마트 옆에는 마 당을 밭으로 사용하는 주택이 몇 채 있었는데, 가까운 거리에 개천이 흘렀다. 아파트 북쪽으로 단독주택과 공동주택이 밀집한 주택가와 시장이 있고, 동쪽으로 걸어가면 해변이 나왔다. 거북이 등딱지처럼 생긴 둥글고 검은 바위가 있어 거북이 해변으로 불리는 곳이라고 했다. 해변 앞에는 관광객들을 위한 횟집과 조개구이 식당이 많았지만 겨울이라 주변이 한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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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을 읽고 무릎을 탁 쳤다.

그래, '설명하는 글이 아니라

보여주는 글이 이런 거구나.'

독자가 생생하게 이미지를 그릴 수 있게

글을 쓰라는 말이!


내 글을 싱겁고 밍밍하다.

1000일이 넘게 써도.

오늘도 남의 글을 필사하고,

명문장, 명대사를 훔쳐 와 읽어보고,

글공부에서 배운 내용과 비교도 해보고,

딴짓과 오지랖 사이를 오가며 한걸음 내디뎌 본다.


오늘도 최고로 행복하세요!!

"당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희망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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