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참된 충고자 고독이 하는 말을 듣도록.
-스테판 말라르메
은유. 《쓰기의 말들》. 필사, @70.P161.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끼니처럼 술을 마셨다.
40년을.
좋아서 마신 것도 있고, 버티기 위해 마신 날도 있었다.
퇴근 후, 저녁 식사 후, 주말이면 산과 들에서,
바다와 강에서.
술은 나의 동반자였고, 의무였고,
위로였으며, 때로는 도피처였다.
하지만 그 동반자와의 관계는
결국 내 인생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아내는 집을 나갔고, 가정은 무너졌고,
내 삶은 만신창이가 됐다.
더는 이렇게 살 수 없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결단을 내렸다.
‘술 마신 인생 40년’을 봉인했다.
정확히는, 끊을 수밖에 없었다.
거지 같은 인생,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싶었다.
술잔을 내려놓고, 대신 책을 들었다.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반 페이지도 읽지 못하고 책을 덮었다.
낯설고 어색했다.
오랜 세월 알코올에 길들여진 뇌는
책을 미운 상사 대하듯 했다.
우연히 ‘독서경영리더 과정’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 수업은 책 읽는 방법과 독서모임 운영방법을
가르치는 과정이다.
그 계기로 독서모임을 만들었고,
조금씩, 아주 조금씩 책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술로 달래던 밤의 허기짐이
책과 글로 서서히 채워졌다.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술을 끊은 뒤 찾아온 금단 증상.
우울증, 손 떨림, 악몽.
그리고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친구들의 유혹.
“한 잔쯤이야.”
그 말 앞에서 수없이 흔들렸다.
내가 한없이 나약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 나는
‘진짜 나’를 찾아가고 있었다.
도피가 아닌 직면의 시간을 견뎌내며,
나는 조금씩 나를 회복해갔다.
3년 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세 줄짜리 감사일기였다.
지금은 하루도 빠짐없이
블로그에 한 편씩 글을 올린다.
아침이면 습관처럼 책상에 앉는다.
과거엔 잔을 들던 손이 지금은 펜을 쥐고 있다.
글 쓰는 게 여전히 힘들다. 내 글을 읽어보면
밋밋하고 싱겁다.
나는 글 읽는 것처럼 '생각하는' 일과 친하지 않다.
나는 아내에게 이 말을 자주 들었었다.
"머리를 액세서리로 달고 다니냐!"
그런 내가 생각을 정리하고, 메모하고,
글감을 찾고 메시지를 고민한다.
문제가 발생하면 어쩔 줄 몰라 하던 내가
해결사가 되어 조언한다.
자질구레한 갑갑증을 시원한 맥주를
마시듯 글로 씻어낸다.
나도 모르게 치밀어 오르는 화가
속닥속닥 글을 쓰면 미움이 얼음 녹듯 풀렸다.
글쓰기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내 삶을 이끄는 구명줄이자 중심이다.
술과 글.
둘 다 무언가를 씻어내는 도구다.
하지만 술은 흐리게 하고, 글은 선명하게 한다.
술은 잊게 만들고, 글은 기억하게 만든다.
술은 감각을 마미 시키지만, 글을 감각을 일깨운다.
술은 나를 감추게 하지만, 글은 나를 드러나게 한다.
술은 취하게 하지만 글은 나를 깨어나게 한다.
술은 후회를 남기지만, 글은 성장을 선물한다.
지금 돌이켜보면,
술로 허비한 40년!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그때부터 술 대신 글을 썼다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남길 수 있었을까.
하지만 후회보다는 감사함이 크다.
늦었지만 깨달을 수 있었고, 8년 전의
그 결단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었으니까.
오늘도 누군가는 술잔 앞에 앉아
속이 타는 하루를 시원한 맥주 한 잔으로
위로하고 있을 것이다.
그 마음을 나는 안다. 너무도 잘 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술이 주던 달콤한 망각 대신,
글쓰기가 주는 쓰디쓴 성찰을 택한다.
하나는 달고, 하나는 쓰다.
그 쓴맛 속에야말로, 진짜 인생의 맛이다.
오늘도 나는 쓴다. 술 없는 맑은 정신으로,
흔들림 없는 손으로.
40년 동안 미뤄두었던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어 글로 남긴다.
이것이 나의 새로운 일상이고,
내가 진짜 살고 싶었던 삶이다.
술을 놓고 펜을 들었을 때,
비로소 나는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당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희망이 됩니다.
오늘도 최고로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