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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건 모두 돌아앚았네

by 정글

사람을 웃기고 울려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을 기다리게 해라. -찰스 디킨스

은유.《쓰기의 말들》. 필사. @74.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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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팀장, 서운하재? 내년이 있다 아니가, 마치고 술이나 한잔하러 가자."

승진 대상자 명단이 발표되던 날, 과장이 나를 불러 위로했습니다.


회사에서 승진 발표가 있던 날, 모두가 저의 승진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저 역시 대통령 상을 받아 특별 승진 대상에 올랐기에, 승진 발표 날 아침에는 저녁 축하 자리에서 부를 노래를 흥얼거릴 만큼 기분이 좋았죠. 하지만 결과는 달랐습니다.


승진 명단에 제 이름이 없다는 사실에 깊은 상실감을 느꼈습니다. 수시로 옥상에 올라가 심호흡을 하며 하늘만 멍하니 바라봤습니다. 동료들의 위로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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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직원들이 위로하는 말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술도 쓰고 속도 쓰리기만 했죠. 중간에 빠져나와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상부에 있는 후배 직원에게 전화했습니다.


"선배님, 많이 서운하시죠... 일반 승진과 갭이 4년이나 차이 나서 이번에는 배제한 것 같습니다." 그 말이 조금은 위안이 되었지만, 한동안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내년에는 되겠지' 스스로를 위로하며 마음을 추슬렀지만, 그다음 해, 또 그다음 해, 연이어 4년간 승진에서 고배를 마셨습니다. 해가 거듭될수록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에 빠졌고, 술독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서 송창식의 '고래사냥'을 부르며 신세 한탄을 하던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앉았네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삼등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



가사처럼, 보이는 건 모두 돌아앉아 저를 외면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상사, 회사, 심지어 세상까지 원망했습니다. 게다가 늘 술에 취해 들어오는 저를 보다 못한 아내마저 집을 나갔습니다.



늘 승진에 떨어지고 가정은 내팽개치고 허구한 날 술만 처마시고 오는 남편과 같이 살 여자는 별로 없겠지요. 저를 버린 것은 세상이 아니라 제 자신이었는데도 말입니다.


동료들이 "정 팀장, 자넨 일도 잘하고 모두 널 좋아해. 내년엔 될 거야"라고 위로해도, 그들의 말이 "아부나 하고 승진에만 목매는 기회주의자"라는 비웃음으로 들렸습니다. 마음이 비뚤어지니 따뜻한 조언조차 가시처럼 박혔습니다. 저는 혼자만의 동굴 속으로 더 깊이 숨어들었습니다. 사람들을 피했고, 혼술을 즐겼으며, 집에 돌아와서도 술로 밤을 지새운 날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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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겨우 일반 승진을 하고 나서야, 저는 오랜 방황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축하한다는 말조차 비웃음으로 들릴 만큼, 저는 불평불만이 가득한 부정적인 사람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술을 끊고 독서 모임을 시작하기 전까지 말입니다.


어느 날 깨달았습니다. '보이는 건 모두 돌아앉은 게' 아니었습니다. 보이는 건 모두 제자리에 있었는데, 저만 혼자 등을 돌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이 날 버렸다'라고 생각했지만, 세상은 한 번도 저를 가진 적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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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생각보다 타인의 삶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저의 승진 실패를 기억하는 사람도 드물었죠. 그저 자기 삶을 살기 바빴을 뿐입니다.


세상사 마음먹기 나름입니다. 내 상처를 돌보듯 남을 보듬는다는 마음으로 내가 돌아앉아 먼저 마음을 주면 됩니다. 그것이 나와 상대방을 낫게 하는 방법이고 세상 원망을 내려놓고 세상과 다시 연결하는 길이라는 걸 저는 너무나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보이는 건 모두 돌아앉았네.' 지금 혹시 그런 마음이 들고 있지는 않나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 마음 잘 아니까요. 그런 당신을 위로합니다.


오늘도 최고로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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