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픽션은 우리가 세상 속에서 겪는
유동적이고 불안정하고 다형적이고 덧없는
경험을 탐구하는 글입니다.
-데이비즈 실즈.
은유 작가.《쓰기의 말들》. 필사. #73. p167.
올해는 유난히도 덥단다.
방안에는 오늘 기온이 38도라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태양이 시멘트 바닥을 뜨겁게 달군다.
나는 그 위에서 조용히 타들어간다.
목이 마르다.
누가 물 한 모금만 주면 좋으련만.....,
윙윙이도 안 보이고
팔랑팔랑 노랑 팔랑이도 오지 않는다.
하늘도 말라버린 듯 물 한 방울 없다.
어디선가 차소리가 들리고 발자국 소리가 들려온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저씨, 아주머니,
3살쯤 보이는 사내, 내 몸 크기보다
작은 아이가 아주머니에게 안겨 있다.
풀장으로 향한다. 시원한 물이 넘치는 그곳으로.
곧이어 들려오는 첨벙첨벙 물소리
아이의 웃음소리, 비명처럼 터지는 웃음.
죽어있는 주변이 갑자기 생기를 띠었다.
혹시나... 혹시 나에게도 물 한 방울 주려나
가슴이 콩닥댔지만, 아무도 오지 않는다.
드디어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귀를 쫑긋 세웠다.
"여기요, 여기요!" 나는 힘껏 소리쳤다.
물이라도 한 모금 적선해 달라고.
작은 키에 베이지색 반바지, 흰 셔츠를 입은
할아버지, 머리 밑뚱에 하얀 머리카락이 보인다.
얼굴에 주름도 몇 개 보인다.
안경을 끼고 얼굴은 둥글다.
손에는 물병 대신 네모난 물건이 들려 있었다.
반갑게 인사했지만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
나는 손에 물통이 있는지 유심히 살폈다.
손바닥 크기 네모난 물건이 들려있다.
저기서 물이 나오는 건가?
나는 네모난 물건을 향해
입을 크게 벌렸지만 물은 나오지 않고
찰칵, 찰칵 소리만 났다.
"물 좀 주세요. 목이 타들어가요"
그는 나를 힐끗 보더니
그냥 가버렸다.
나는 다시 뜨거운 열기 속에
버려졌다.
눈을 떴다, 주변이 컴컴했다.
무거운 돌덩이가 온몸을 짓누르고 있었다.
가끔씩 돌덩이 위로 토닥토닥 소리가
들리는 날에는 목을 축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내 온몸을 짓누르던 돌덩이.
그 딱딱한 시멘트가 '쩍'하고 갈라졌다.
그 틈 사이로 푸른빛이 스며들었다.
난 하마터면 환호성을 지를 뻔했다.
그게 바로 '하늘'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작은 틈새로 밝은 빛이 들어왔다.
나는 얼른 빛이 있는 곳으로 나가고 싶었다.
1초도 쉬지 않고 땅속으로 발을
뻗어 물기를 조금씩 빨아 당겼다.
한순간도 쉬지 않고 발을 뻗었다.
작은 물기도 허투루 삼키지 않았다.
흙 속으로 더 흙 속으로.
그럴수록 점점 물을 많이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알게 됐다.
세상에는 그냥 얻어지는 게 없다는 걸.
내 손이 점점 길어졌다.
딱딱하고 거친 것이 손에 잡혔다.
딱딱한 시멘트 바닥.
안감힘을 써서 위로 올라왔다.
"와~ 빛이다"
온통 푸르고 밝은 빛이 내 눈에 들어왔다.
푸르고 시원해 보이는 것들이
바람결에 흔들렸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곳이 있다니!'
노력하면 좋은 걸 얻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기뻤다. 환호성을 질렀다.
나는 여태 그래왔듯이
1초도 쉬지 않기로 했다.
잠은 아예 자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더 뿌리를 내리고 내렸다. 밤이고 낮이고.
그럴수록 내 손은 더 멀리멀리
뻗아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내 팔이 간지러웠다.
며칠간 그런 증상이 일어났다.
내 팔에 노란 무언가가 피어났다.
살랑거리는 그 꽃잎은 마치 내가
이 세상에 왔다는 작은 증표처럼 느껴졌다.
윙윙이는 종종 날아와
내 몸속을 후비고 떠났다.
어느 날,
팔랑팔랑 노란 팔랑이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내 입술을 더듬었다.
그러다가 훌쩍 떠났다.
기분이 묘했다. 그때부터
그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가 오는 소리가 팔랑팔랑 들린다.
가슴이 콩닥콩닥거리고 얼굴이 붉어진다.
노랑 팔랑이는 내게 와서 입맞춤을 했다.
아주 오랫동안. 내 입안에 있는
물기를 모두 빨고 떠나갔다.
그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오고 갔다.
내 가슴에 불만 지피고.
미웠지만 또 보고 싶다.
떠난 지 꽤 오래됐는데 그는
한동안 오지 않는다.
난 더 이상 마음을 주지 않기로
했지만 자꾸 생각난다.
잊으려 하면 할수록 팔랑이가 더 생각났다.
왠지 모르겠다.
나는 사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리고
아무리 마음을 다해도
상대 마음까지 내가 바꿀 수 없다는 것도.
오늘도 태양은 내리쬐고,
시멘트 바닥은 펄펄 끊는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쉬지 않고
뿌리를 내린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도,
상처 입은 마음을 부여잡고
다시, 더 깊숙이.
누군가 물을 주지 않아도,
팔랑이가 오지 않아도,
윙윙이가 내 온몸을 헤집고 가도.
나는 멈추지 않는다.
살아 있는 한,
단 1초도 쉬지 않고
내일을 향해 나아간다.
내일은
소낙비가 오면 좋겠다.
당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희망이 됩니다.
오늘도 최고로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