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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하이영v Oct 06. 2023

결혼 후 1년, 신나게 놀았다

노는 게 제일 좋아! 놀자! 놀자! 띵까띵까 놀자! 노는 게 제일 좋다는 현시점 데뷔 20년 이상 된 뽀통령 뽀로로의 최신 노래 중 하나다. 그래, 사람은 모름지기 놀아야지. 꼭 놀아야 하나? 나는 놀아야 한다. 어디까지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 제대로 놀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특별할 것도 거창할 것도 없이 그저 마음 편하게 친구들을 만나고, 늦게까지 좀 놀아보고, 여행도 좀 다녀보고, 그뿐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결혼 후 일단 놀기로 했다.


먼저 결혼을 한 친구는 신혼생활은 꼭 즐기고 아이를 가지기를 권했다. 아이가 있으면 신혼생활을 즐기지 못할 수 있다는 이유다. 말은 맞다. 그런데 친구여? 걱정하지 말게나! 우리는 어차피 조심했어도 아이가 생겼을 확률은 극히 낮았다네. 하하.


어른들의 사정으로 중학교를 갓 입학하고 막내 고모 댁에서 1학기를 보낸 후 여름방학 시작과 함께 오빠와 자취를 시작했다. 어린 나이의 자취란 흔히 자유를 떠올린다. 부모의 감시와 통제 없이 자유로운 생활을 상상하지만, 현실은 다르며 나는 더더욱 자유가 없었다. 섬세함이 둘째가라면 서러울 오빠와 함께 자취하는 것은 지금까지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힘든 일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극명하게 갈리는 서로의 성격 차이와 두 살 아래의 동생이었기에 더 쉽지 않았다. 너무 어려웠다. 철없는 시절이겠거니 할 수 있지만 성인이 된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그때의 내가 너무 가여울 정도다. 자유로운 영혼은 오빠 본인에 한할 뿐 나에게 자유를 주지 않았다. 부모님보다 더한 통제, 단순히 엄한 것과 확연히 다르다. 말을 마라.


그렇게 학창 시절을 우여곡절 보내고 대학을 마친 후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었다. 괜히 엄마에게 시집가기 전까지 엄마가 해주는 밥도 먹고 싶다는 둥 엄마 옆에 살다가 시집가고 싶다는 둥 애정이 어린 투정을 부리곤 했었는데, 이미 머리가 굵어질 대로 굵어진 상태에서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나는 뭐든지 쉽지 않았구나. 어쨌든 부모님 밑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는 한 부모님의 규칙들은 어느 정도 따라야 하니 그렇게 지냈다. 다행히 부모님은 내가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제한이 완화되었고 그래도 오빠와 생활하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그래서 노는 것은 나에게 중요했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워낙 다니는 걸 좋아하는 남편은 여행을 갈 때마다 주저하는 나로 인해 답답했는지, 결혼하면 신혼여행과는 별개로 여행부터 가자고 했다. 그리고 정말 신혼여행을 하고 오자마자 바로 여행을 계획했다. 부산과 여수로 3박 4일. 지역 선택의 이유는 간단했다. 부산은 시아버지와 남편의 큰 사촌 형님이 계시고 여수에는 나의 오빠가 있었다. 여행의 기억을 더듬어 보니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여행, 당장 기억나는 게 없다. 기억을 더듬어 놀기의 시작과 즐거움을 한번 꺼내어 보자.


남편에게 물어보니 여수부터 다녀왔다고 한다. 여수의 큰 공원 같은 곳을 다녀온 것 같은데, 아! 순천만정원! 굉장히 넓은 곳으로 기억한다. 그 넓은 곳을 다 걸어 다녔으면 지금도 계속 투덜댔을 것 같은데, 다행히 우리는 관람차를 선택하여 전체적으로 순회해서 나름 편하게 봤다. 귀여운 짱뚱어도 기억난다. 사진으로 보던 짱뚱어를 실물로 보니 그렇게 좋았다. 바다와 관련된 것을 좋아하고 특이하게 생긴 바다 생물을 보는 것도 좋아하는데, 짱뚱어가 딱 그랬다. 그 튀어나온 눈과 벌을 기어다니는 그 모습이라니! 참 취향이었다.


여행은 뭐다? 먹부림이지! 여수의 게장을 먹기 위해 일정을 마치고 저녁 시간에 맞춰 검색한 식당에 찾아갔다. 아뿔싸! 예상이 빗나갔다. 영업시간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지역에 살다 보니 지역마다 영업시간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 식당도 마감 직전이라 밥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은 고작 20분 남짓했다. 맛있는 음식을 20분 만에 즐길 자신은 없어 아쉬움을 뒤로하고 새조개를 판매하는 식당으로 갔다. 아! 새조개. 항상 영상으로만 보고 한번은 먹고 싶었던 터라 기대를 하고 있었지만 문제는 영업시간이다. 아니나 다를까 식당에 들어선 순간 사장님은 조금 난감해하셨다. 이미 식당 안에도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이내 친절하게 들어오라고 맞아주었다. 당연히 내 선택은 새! 조! 개! 새조개의 시즌도 마지막이라 있을지 없을지 모를 상황이었다. 다행히 있었다. 그것도 딱 우리가 주문할 만큼의 분량이 마지막이었다. 제대로 막차를 탄 것이다. 식당 사장님은 알맞게 끓는 육수에 방풍나물을 넣고 새조개도 육수에 살살 흔들어 3초? 5초 정도 뒤에 바로 꺼내어 방풍나물과 함께 먹어보라며 각 접시에 놓아주었다. 내 기대와 예상은 내 입맛에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정말 훌륭했다. 신나게 먹고 난 뒤 라면 사리까지 넣어 마무리하였다. 사실 음식이 맛있는 것은 둘째 치고 그 식당의 친절이 감사했다. 마감 직전에 나타난 관광객 손님이 번거로울 수도 있는데 친절과 웃음으로 대하며 편히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중간중간 필요한 것을 확인하고 채워주어 덕분에 마음 편히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서비스직이 당연히 그래야 한다지만 그 친절은 우리의 마음마저 채워주었다. 큰 추억이 되었다. 여수에 다시 가게 된다면 반드시 가고 말겠다.


다음날 부산으로 떠나기 전 오빠 내외와 만났다. 갓 결혼한 동생 부부에게 맛있는 것을 대접해 주고 싶었을 오빠네가 여수에서 유명한 B 식당을 이야기했다. 우리는 아무리 맛집이라도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이 맞지 않기에 썩 내키진 않았다. 역시나 그 식당 앞에는 긴 줄이 대기하고 있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우리 차례가 와 자리를 잡고 주문했다. 식탁에 차려진 음식은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은, 그냥 깔끔한 한식 정도. 젓가락을 들어 수육 한 점을 먹는 순간 정말 오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남편도 수육을 극찬했다. 냄새와 시각, 촉감까지도 본인이 이상하면 못 먹는 남편의 극찬은 진짜다. 반찬 가짓수가 많은 건 아니었지만 그 정갈한 한 상에 우리의 젓가락이 바삐 움직였다. 다 맛있었다. 나와 성격이 극도로 안 맞는 오빠는 일단 접어두자. 정말 맛있는 한 상이었다.


맛있게 배를 채우고 부산으로 출발했다. 바다가 있는 곳에서 또 바다가 있는 곳으로. 바다는 그저 좋다. 그 좋은 바다가 들려주는 파도 소리, 그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잘 구워진 조개구이를 먹는 그 분위기와 맛. 말해 뭐할까. 먹으며 소주 한 잔 들이켜면 딱 좋다. 술이 안 맞는 내가 아쉬울 뿐.


부산은 워낙 볼거리와 먹거리가 많아서 다 기억하기도 힘들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구경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여행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기 마지막 날 부산에서 일하시는 시아버님을 만났다. 아버님은 비싸고 몸에 좋은 귀한 바다장어구이를 사주셨다. 사실 이 장어가 나를 위한 것이었을까? 섭섭함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아버님은 내게 충분히 잘해주셨다. 다만 아들에 대해 다소 정보가 부족하셨나 보다. 잘 구워진 장어 앞에서 깨작거리는 아들에게 왜 안 먹냐고 물으니, 남편은 원래 장어를 잘 안 먹는다고 했다. 장어가 아니고 이런 거라고 했었지 아마. 잘 가리지 않고 잘 먹는 나도 장어는 사실 조금 어렵다. 하지만 음식을 대접받았을 때 감사한 마음에 잘 먹으려고 노력하는데, 남편은 참 솔직했다. 그때 아버님 표정이란. 어째 별난 것은 남편인데 괜히 내가 죄송했다. 이런 에피소드들은 그 뒤에도 발생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함께 여행도 했으니 이제 내 시간이다. 따로 또 같이. 아이?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일 년 뒤 가지기로 했지, 그동안 띵까띵까 놀면 되고 앞으로 닥칠 시련은 아예 생각도 없었으니. 차라리 1년 뒤에 알게 된 것도 괜찮다. 처음부터 확인했다면 난 그때부터 눈물 바람이었을 테니까.


지금에 와서 아쉬운 것은 혼자 여행을 못 해본 것이다. 항상 남편 또는 친구와 함께였다. 여행이 머 별거 있나? 거리 상관없이 기차를 타며 지나가는 풍경도 보고 책도 보고 잠도 자고. 기차에서 내리면 역 근처 카페에서 커피 마시며 앉아 있다가 주변 산책도 하고 다시 기차 타고 돌아오는 그런 것도 여행이지 않은가. 꼭 관광지에 가서 관광해야만 여행은 아니니까. 언젠가 꼭 해보리.


나는 혼자 영화 보는 것도 참 좋아한다. 좋아하는 시간대는 단연 조조. 우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씻고 곱게 화장한다. 뭐가 이쁠까, 하며 옷을 고르고 선택한 옷을 입고 버스를 타고 시내로 간다. 카페에 들러 좋아하는 커피 한 잔을 산 뒤 시간에 맞춰 영화관에 가서 예약한 자리에 앉은 후 커피 한 모금 쪼록 들이켜는 그 순간, 아! 너무 좋다! 온전히 영화에 집중하는 그 시간이 참 좋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짓는 몸짓, 표정과 눈물, 그들의 표현하는 감정이 내게 고스란히 전달되면 그 감정에 걸맞은 이야기 들이나 소재가 떠오른다. 얼마나 행복한가! 이 행복한 시간은 당연히 애 걱정이 없으니 가능한 일이다.


결혼 전에도 프리랜서로 일을 하며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범위가 넓었지만, 마냥 자유롭지는 않았다. 영화 보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 대학 시절 친구와 영화를 보러 간 이야기를 했을 때 아버지는 팔자 좋게 영화를 본다며 타박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에 기죽지 않았지만, 그런 반응을 한 번 본 이상 눈치가 보였다. 물론 부모님에게 영화를 잘 보여드리고 잘해드리지 못한 그 죄책감도 한몫했다. 아직 결혼하지 않으신 분들! 물론 각 집안의 개인 사정은 있다. 하지만 부모님과 식사하거나 영화를 무난하게 볼 수 있는 분들이라면 옆에 계실 때 이왕 함께 많이 합시다. 내가 그러지 못해서 좀 아쉽다. 아무튼 이것도 이때는 좋았지. 후에 나의 매일은 아이 생각이 항상 동반되어 있다 보니 아이가 나오거나 아이가 나오는 코믹한 애니메이션을 봐도 훌쩍거리며 궁상을 떨게 되더라.


또 좋아하는 것은 단연 만남과 수다! 여자들 세 명만 모여도 접시가 깨진다고 하지. 좋아하는 사람들끼리의 수다는 최고다. 나는 나와 관련된 나의 이야기를 마음속에 담아두기가 힘든 사람이다. 꺼낼 수 없는 이야기를 제외하고 참 많이도 꺼낸다. 고맙게도 내 지인들은 대부분 나의 두서없고 끊임없는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늘 고맙다.


카페에 앉으면 끝없는 대화가 이어진다. 대화의 끝이 있긴 있을까? 함께한 친구에게 집에 일찍 들어갈 생각도 못 하게 붙잡고 서로 이야기하고 그러다 시간이 많이 늦어지면 아쉬운 마음에 택시를 탔다. 늦은 시간에 택시를 타면 많은 손님들이 술을 마시고 타는 경우가 있다 보니 내가 타면 기사님들이 반 이상은 신기해했다. 술 냄새도 안 나고 이 시간까지 뭐 했냐고 묻는다. 커피 마시면서 이야기하고 놀았다고 한다. 이때는 코로나 걱정도 없었으니 24시간 카페도 제법 있어서 가능한 일들이었다. 그리고 아이가 없어서도 가능한 일들이었다. 좀 그립고 아쉬운 날들. 지금은 거의 불가능한 그날들. 앞서 말한 것처럼 마음 편하게 친구들을 만나고, 늦게까지 좀 놀아보고, 여행도 좀 다녔다. 이렇게 나는 결혼 후 일 년 동안 실컷 놀았다. 그 뒤로도 쭉 놀았지만. 그래도 모자란 이 기분. 다시 돌아간다면? 또 놀아야지 뭘 고민할까. 일단, 신나게 노는 게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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