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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하이영v Nov 10. 2023

아니, 애가 이렇게 안 생길 줄 몰랐네

어라? 실컷 놀아야 하는데 아이가 생겼네? 에이 별수 있나, 감사히 생각하고 낳아야지. 이것은 여유가 있을 때의 허세일 뿐, 노는 동안 아이 없음의 계획은 너무 잘 지켜졌다. 계획은 한 번씩 틀어지기도 하던데, 없음의 계획은 틀어지지 않고, 있음의 계획은 제대로 틀어졌다. 처음 한 달은 괜찮았다. 첫술에 배부르랴. 욕심부리지 말고 마음을 편하게 가져야지. 안 편하다. 편할 리가 있나.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즐겁게 지내다 보면 아기천사가 온다고 하지만, 그 평정심, 유지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나는 기다림도 긍정적이다. 그런 줄 알았다. 갖고 싶은 것들이 당장 내 손에 들어오지 않을지언정, 내 손에 들어오는 그 순간이 나에게 딱 맞을 때라며 나름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한다. 갖고 싶던 피아노도 그렇던데. 하지만 이 기다림은 피아노 같은 물건과는 다르다. 물건은 사실 돈만 있으면 된다. 없으면 어떻게든 벌면 된다. 한 인간을 어디 감히 물건에 비할까? 아이는 돈만 있으면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결국 언제 오는 거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지로 돌아온다. 온다는 보장만 확실하면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는데. 아이는 가장 보장하기 힘든 존재가 아닌가. 그래서 아이는 하늘이 주는 게 맞는 것 같다고 친구가 말했다. 그럼 또 이렇게 투정이 시작된다. 내 삶일 때 묻지 않는 청순한 삶을 산 건 아니지만 그냥 무난하게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왜 하늘은 내게 아이를 주지 않을까? 얼마나 더 깨끗해야 할까? 답은 결국 아기천사가 찾아오는 것이니 질문은 계속된다. 왜 안 생길까? 남편과 나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을까? 나는 생리 날짜도 칼 같아서 날만 잘 맞추면 될 듯도 싶은데.


우리는 그렇게 기다리며 검사를 통해 이유도 알게 되었다. 남편의 정자 수 부족. 일단 가장 중요한 이유를 알았으니 남편 위주의 노력이 시작되었다. 물론 나도 함께다.


남편은 비염으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꽤 오랫동안 도라지 배즙을 먹어왔다. 늘 시어머니가 챙겨 주셨고 결혼 후에도 챙겨 주셨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도라지가 여러모로 참 좋은 음식이지만 당시 검색으로 찾은 정보에서 도라지가 정자 수를 감소시킨단다. 일단 불안 요소는 없애야 하니 당장 배 도라지즙을 끊었다. 엽산도 먹었다. 엽산은 임신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성분이 아닐까 싶은데, 우리는 더부룩한 부작용을 겪으며 한동안 먹었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으니 중단되었다.


임신을 준비할 때 사람들의 식생활 개선에서 술과 담배가 많이 나온다. 큰 에피소드 없이 무난하게 임신을 한 부부라면 모를까 우리처럼 난임의 경우 꽤 신경 써야 하는 요소다. 네! 너무나 당연하게 우린 둘 다 하고 있었네요! 남편은 오랫동안 담배를 피웠으며 결혼하면 끊는다더니 신혼여행까지만 피우고 그만두었다. 하지만 이미 몸에 쌓인 것들은 무시를 못 할 테지, 아는 지인은 7년 동안 금연한 후 검사를 해보니 니코틴이 아직도 몸에 남아있어서 좀 걱정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린 이제 일 년 좀 넘었나 싶은데 더하면 더하겠지.


술. 아! 술! 지금까지도 문제다. 남편 본인도 조절이 필요함에도 불안함인지 할 생각이 없었던 것인지 조절이 되지 않았다. 현 시점까지도.


컴퓨터도 문제였다. 일에 있어서 참 성실한 남편에게 직업이 문제라니. 직업상 컴퓨터를 다뤄야 하고 항상 앉아있으며 집에서도 게임과 취미는 대부분 컴퓨터로 통한다. 남자들이 앉아 있는 게 좋지 않다고 하지 않나.

운동도 필수구나. 운동은 사실 임신 준비와 상관없이 요즘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요소다. 임신을 준비한다면 운동은 더 중요하다. 남편과 나는 참 의지가 빈약한지라 쉽지 않았다. 첫 시도는 동네 한 바퀴 운동이었는데, 남편이 무리하게 범위를 확장하는 탓에 한두 번으로 끝났다. 그 뒤 내 제안으로 집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향했다. 이 또한 초반에 남편이 범위를 무리하게 잡는 탓에 지쳤고 그 뒤 바퀴를 정해서 시작하게 되었다. 무리하든 안 하든 이것도 한두 번이었네. 그리고 나는 울면서 운동장을 혼자 돌았던 나날이여. 상황이 안 좋은 사람은 따로 있는데 내가 이러고 있다니 참 서글펐다. 그나마 가끔 친정엄마가 영문도 모른 채 동행해 주어서 좀 나았다. 남편의 운동 시도는 그 뒤로 더 있긴 했다. 그 문에 끼워서 운동하는 철봉 같은 것? 그 운동기구는 이미 우리 집에 없다. 그렇다.


어느 글에서 그랬다. 씨가 안 좋아도 밭이 좋아지면 임신 가능성이 있다고. 나라도 좋으면 좋은 거겠지 싶어서 혼자라도 조금씩 운동은 했다. 이런 노력은 사실 일상이 될 수도 있는 일들이다. 큰 의식 없이 자연스럽게 있다가 임신이 되는 사람들에게 그냥 일상이 될 수 있지만 난임이 시작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하나가 다 중요하고 노력해야 하는 요소가 된다.


지인찬스도 써봤구나. 다른 지방에 사는 언니가 계셨는데, 직접 산으로 들로 약초를 캐러 다니고 그와 관련해 공부를 많이 하신 박학다식한 분이었다. 부탁하는게 죄송스럽고 자존심도 상했지만 뭐라도 해보고 싶었다. 이야기를 들은 언니는 우리 내외를 초대해 주셨는데, 이때 내가 아닌 남편을 위해 언니 내외는 귀한 바다장어를 먹으러 가자셨다. 아! 바다장어. 내 남편은 먹지 않은 바다장어. 남편은 내게 거절해 달라며 졸랐다. 어쩌겠나. 안먹는 모습을 보이느니 다른게 나았다. 결국 죄송한 말씀을 전하며 장어는 거절했고 한우를 대접받았다. 아 정말 이 인간을 어쩔까? 자신의 상태를 위해 조금이라도 먹어볼 순 없었을까? 우리가 대접해도 모자랄 판에. 언니는 남편과 함께 먹으라며 귀한 약까지 건네주셨다. 진짜 눈물이 났다. 그래서 당장 아이가 생기지 않아도 분명 이 약은 우리를 이롭게 할 것이라 생각하며 감사히 열심히 먹었다. 또 기대를 해본다. 약먹고 아이가 생기지 않을까. 약은 좋았다. 우리가 문제지.


중간중간 병원도 계속 다녔다. 가서 초음파로 내 상황을 파악하고 날을 잡고 계획을 실행하고 아이가 안 생기는 내내 다닌 건 아니지만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드문드문 다녔다. 또다시 기대한다. 가능성이 높은 날이니 이러다 어느 순간 아이가 생기지 않을까. 안 생겼다.


오랫동안 살던 동네 목욕탕의 한 이모님은 비법을 이야기했다. 비법이라. 저 멀리 아프리카인들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 다산하는 이유가 다 있다며 비법을 알려 주었다. 하하. 이건 그냥 에피소드로 넘기자. 목욕탕의 다른 이모님들은 내가 시샘이 부족하다고 했다. 나처럼 무덤덤한 사람은 삼신할머니가 도로 질투해서 아이를 주지 않는다고. 아이고, 내 속이 뭐 얼마나 무덤덤할까요. 아니, 그리고 삼신 할매님! 오히려 시샘도 안 하고 친구들 임신했을 때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나름 착하게 살고 있는데, 기특하게 여겨 아이를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안 그러냐고요, 삼신 할매님!


물론 나도 사람인지라 그런 소식들이 부럽지만 내 일이 아니라서 그런지  밉거나 딱히 시샘과 질투는 생기지 않았다. 그들의 소식이나 이야기가 전혀 부담스럽지도 않았고 오히려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참고할 만한 사항으로 기억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괜찮아도 지인들은 나를 배려하느라 임신 소식과 육아 이야기도 조심스러워해서 고맙기도 하고 참 미안했다. 새삼 그들에게 고맙고 애틋하네.


우리 부부가 한 노력은 사실 별거 없다. 아이가 생기지 않고 당장 시술을 결정하지 않았으니 현실 가능한 선에서 노력해 본다. 임신에는 어떤 음식이 좋은지, 계획의 날에 어떻게 하면 좋다든지 등등. 우리와 같은 상황에서 임신한 사례를 보면 괜히 그 사람들이 행한 방법들이 우리한테도 맞을 것 같고 다시 기대해 본다. 그리고 매번 아닌 결과를 확인하고 실망하고. 또다시 노력의 시작이다. 기대보단 바람이 맞겠다.


그래도 한 일 년 정도 생각했지, 안 생겨도 이렇게 안 생길 줄 몰랐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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