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남편은 말했지. '이제 우리도 병원을 한번 가보자' 응? 뭐라고? 내가 잘못 들었나? 갑자기 왜? 아직 생각 없다더니, 왜? 아직 아니라더니 왜 갑자기 생각을 바꿨지?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 사촌 형에게 아이가 생긴 것 같다며 SNS에 공개된 초음파 사진과 감격하는 형의 글을 보여주면서 다행이라는 말을 했다.
집안의 장손인 사촌 형님네는 결혼 후 10년쯤까지도 아이가 없었다. 의도도 아니다. 안타깝게도 그때 본 사진 속의 아이도 잃어버리고 이미 전에도 잃은 과거들이 있었다. 순서를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왕이면 형님네가 얼른 아이가 생기길 바라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시험관 시술을 위해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임신이 되었다고 한다. 아! 성공했구나! 알고 보니 첫 병원에서 시술을 시도하여 한두 번 실패하고, 다른 병원으로 이전 후 한 시술에서 임신이 되었다고 한다. 나까지 괜히 설렜다. 소식을 들은 뒤 명절이 되어 축하한다는 말을 해주려고 기다렸다. 와서 한약을 먹기에 무슨 약이냐 했더니, 유산해서 먹는 거라고 했다. 무슨 말을 할까. 속상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왜 쉬지도 않고 왔냐고 괜히 투덜거렸다. 시댁에 혹시나 다른 말 안 들으려고 그냥 왔다고 하며 덤덤히 약을 들이켠다. 집안 어른들이 먼저 편하게 언니라 부르라 하고 결혼 후 제법 잘 어울려 다닌 터라 마음이 쓰였다. 내 근심은 그저 욕심 같았다. 나는 기껏해야 몇 년인데, 언니네는 10년이다. 10년. 가장 마지막에 결혼한 막내 도련님이 결혼하자마자 곧 아이가 생겼다. 더 이상 기다리는 것도 힘들었겠지만 언니로서는 좀 초조했으려나. 물론 나도 부러웠지.
시술로 임신에 성공했지만, 아이를 잃은 것을 보니 첫 시도는 실패한다고 생각해야 할까. 그래도 시술 자체는 참 부럽더라. 시험관 시술은 아이를 가지기 위한 과정이 눈에 보이는 본격적인 시도니까 말이다.
시간이 좀 흘러 다시 좋은 소식이 들렸다. 이미 개월 수가 좀 지난 시점의 안정기에 소식을 알렸다. 그 맘, 충분히 안다. 아픔을 한차례라도 겪고 나면 주위에 알리기 힘들어진다. 더군다나 여러 번이고 임신이 중지되는 일이 발생할 것에 대한 불안 때문에 굉장히 조심스러울 것이다. 이번엔 달랐다. 아이가 잘 자라고 있어서 너무 다행이다. 내 맘도 다시 설렜다. 마음에 드는 쇼핑몰에서 내 아이가 태어나면 입히고 싶었던 옷이 있었다. 그 옷도 선물해 주려고 주문했다. 질투고 부러움이고 그때는 그렇게 하고 싶어서 했다. 어쩌면 이 기쁨이 나에게도 전달되기를 바라며.
사촌 형님네의 임신은 우리에게도 영향이 있었다. 나야 시도하는 것이 부러웠고, 성공하니 다행이고, 나도 얼른 생겼으면 좋겠다 싶었지만, 남편에게 현실적인 것을 일깨워 주었다. 상실도 있었지만, 시술이 연속으로 성공을 한 부분이 남편의 그 확률을 부추기기 시작했다. 사실 남편도 무작정 기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성격에 될 대로 되라며 마음을 놓는 일은 절대 못 했으리라. 시술이든 무엇이든 찾아보긴 했겠지. 그래, 지도 생각이 있었겠지, 말은 없고 불편한 티는 있는 대로 다 내니 그게 문제지. 흥!
우리가 아이가 안 생기는 이유? 우리는 어쩌면 알고 있다. 물론 공식적인 이유 말고. 우리 부부는 아이를 가지기 위해 노력을 했지만 노력하지 않은 부분도 분명히 있다. 서로 말을 꺼내기에 껄끄럽고 부담스럽고 그렇다. 그래서 자연임신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하는 것이다. 서로 아이에 대한 바람을 품은 채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는데, 사촌 형님네가 성공했다. 두 번이나. 그리고 아이를 만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남편은 나에게 슬슬 병원을 알아보자고 했다. 이런 부분들은 잘 모르는데, 큰일이다. 아니지, 큰일이고 뭐고 일단 검색부터 해봐야지, 어느 병원을 가야 하지? 주변에도 물어봐야지. 언니가 성공한 병원도 어딘지 물어봐야지. 병원 선택도 잘 해야 하는 거 아냐? 돈이 또 얼마나 들라나. 일단 하긴 해야 하잖아, 그렇지?
이 와중에 사촌 형님네도 임신 유지가 잘 되어 드디어 아이를 낳았다! 온 식구가 염원하던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조리원에도 오래 있지 않고 집으로 바로 왔다고 하네. 아이를 보고 싶다고 하니 집으로 바로 초대를 해줬다. 보통 갓 태어난 아이가 있으면 방문하지 않는다고 하던데, 언니는 그런 거 신경을 안 쓴다며 초대를 해줬다. 아이를 보았다. 이야, 유전의 신비란 이런 것일까? 아이가 아빠를 많이 닮았다. 그래서 내 남편의 얼굴도 보인다. 언니와 내가 봐도 사촌지간인 남편과 사촌 형님은 뭔가 형태가 닮았고, 몸의 뒤태도 그랬다. 어쨌든 같은 유전자를 일부 보유하고 있으니 그런 거겠지.
아이는 역시 예쁘다. 너무 예쁘다. 어찌 이리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정말 작디작고 그저 소중한 존재. 손을 씻었어도 이제 막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이를 만지기에 조심스러워 쳐다보기만 했다. 언니도 기다림 끝에 이렇게 예쁜 아이가 생겼는데, 우리 집에도 언젠가 이런 아이가 존재할까? 아이를 보고 있자니 긍정적인 기운이 막 올라오는 것 같았다. 아 너무 귀엽다. 아기 자체로 이렇게 귀엽고 소중하고 미칠 것 같은데, 내 아이는 얼마나 예쁠까. 누군가 그러더라. 남편이 미우면 남편 닮은 아이도 밉다고. 하지만 내 배에서 나온 아기는 얼마나 더 귀하고 예쁠까. 내 피도 있으니 말이다.
언니는 친정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에 민폐가 될까 싶어 아이만 살짝 보고 얼른 나오려 했다. 그런데 너무 자연스럽게 산후 도우미 분과 언니가 내 식사까지 차리더라. 어느새 난 자리에 앉아 함께 식사하고 있었다. 뭐랄까,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아이를 낳고 도우미분이 오면 이럴까. 식사하며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도중 자연스레 나의 이야기가 나오고 우리 부부도 이제 시험관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말하자마자 도우미분은 말했다. '쌍둥이 하세요, 쌍둥이'. 네? 쌍둥이 좋죠. 얼마나 좋아요. 저도 그게 된다면 정말 그러고 싶어요. 이제 막 결심한 시점이고 시작도 안 했지만 벌써 기대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그래도 요즘은 시술로 인해 쌍둥이가 높은 확률로 태어나고 있으니 괜히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에이, 욕심은 금물이다. 언니는 집안에 쌍둥이 유전자가 있어서 그리될까 봐 굉장히 걱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언니의 바람과 맞게 소중한 하나를 안게 되었다. 딱 좋네. 아, 얼마나 좋을까. 생각만 해도 좋다, 쌍둥이. 그래 내가 그랬지. 이왕 늦게 주시는 거 고마 쌍둥이 주세요 라고. 자연임신은 몰라도 시험관이니까 가능성이 좀 있지 않을까?
성공한 걸 보니 우리처럼 생물학적 이유가 있었는지 궁금했다. 아주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언니는 아무렇지도 않게 별거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이어서 우리 부부의 이야기를 하니 언니도 본인의 남편이 상태가 좋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 이유가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니 내가 너무 징징거렸나. 그래, 나도 뭐 남편의 이유보다 남편의 태도 때문에 힘들었으니까. 나중에 울지라도 또 이런 두근거림을 안고 있는 것도 좋네.
식사하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대문을 나서려는데, 도우미 이모가 정말 정다운 목소리로 크게 인사를 한다. ‘꼭 쌍둥이 낳아요! 아들딸 낳아요!’ 잘 가라는 말 대신 쌍둥이를 낳으란다. 쑥스럽기도 하고 마치 쌍둥이를 얻을 것 같고, 기분 좋게 입이 귀에 걸리며 대문을 나섰다. 마음이 간지럽고 막, 쫄깃쫄깃하고 막.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어느 순간 현타가 온다. 뭐 가장 큰 것은 내 나이가 적지 않은 나이라서 더하다. 친정엄마도 내 나이가 늦은 나이라고 하는데 더 늦은 그때까지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어떡하지? 정말 이대로 가다가 아이를 가지기 더욱더 힘든 나이까지 된다면 정말 어떡해야 할까.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그때는 정말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지금은 당연히 포기가 안 된다. 하지만 언젠가 생각하기 싫은 그 훗날까지 가면 나는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내가 나이가 이만큼 됐을 때 그때도 아이가 없으면 어떡하지? 그때가 되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거야?' '언니, 언니가 나한테 전화 올 거야. 아이 키우느라 힘들다고'. 받아주니 또 투정을 부린다. '난 둘 이상은 낳고 싶은데'. 그럴 때마다 내 감성 메이트는 다정한 말로 다독거려줬다. '곧 애들 때문에 힘들어 죽겠다고 전화할걸?' 1살 차이라도 내가 언니인데, 이렇게 철없는 말들이 얼마나 황당할까. 하지만 그녀는 다정하게 받아주었다. 그런 그녀에게 소식을 전하니, 기다렸다는 듯이 기뻐해 줬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결심한 순간 막연했던 것들이 현실적인 기대감으로 채워진다. 정말 그녀가 해준 말처럼 되지 않을까 하면서 마음이 설레기 시작한다. 정말 나 이제 드디어 시작할 수 있는 거지? 아, 나는 정말 하고 싶었구나. 누구냐? 시술은 아직 아니라고, 나요, 나.
가슴이 마구 뛴다.
두근두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