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재빠르게 나를 스쳐 지나가는 어느 날, 소속 없는 잉여자는 오늘도 스타벅스에 와있다. 창가 자리에 앉아 멍하니 밖을 바라보다가 길게 늘어진 생각의 꼬리가 카페 발코니 공간에 닿았다. 발코니에 깔려있는 까만 현무암이 예쁘다. 바람에 떨어진 나뭇잎이 내려앉듯이 내 두서없는 생각도 거기에 층층이 쌓인다.
[저기 돌 위에 먼지나 낙엽 쌓일 텐데 어떻게 청소하지?
저기로 나가는 문이 있겠구나. 난간도 없는데 위험하다.
비가 오면 물도 고일 텐데?
배수공간이 있겠구나. 거기도 안 막히게 잘 관리해야겠네.
물이 잘 빠지게 약간 경사가 있게 만들어졌을까?]
저 예쁜 발코니 하나에 그동안 쏟아졌을 많은 수고와 앞으로 예정된 더 많은 수고가 그려졌다. 그러다 나의 삶의 권태가 생각났다. 그래, 사는 건 참 수고로운 일이구나. 인생은 번거롭기 그지없게 손이 너무 많이 간다. 아뿔싸 이건 무기력증의 증상일까.
지금 카페에 앉아있는 동안에도 한 무더기의 신경의 대상이 있었다. 자꾸만 미끄러져 내려가는 자세를 이따금씩 바로잡아 줘야 하고, 책과 모니터로부터 눈을 쉬게 하기 위해 먼 창밖을 주기적으로 봐줘야 한다. 자세를 바꿀 때 탁자나 텀블러를 쳐서 커피가 쏟아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마르는 입술과 손에 적절한 유분기도 제공해줘야만 했다. 그렇게 신경을 써서 겨우 현상유지다. 내 빈약한 신경을 끌어내 행한 이 몇 가지의 행위가 이 인생을 더 나아지게 하지 못한 것은 당연하고, 지금 여기 앉아있는 나를 조금이라도 예뻐지게 하지도 못했다.
천성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무신경한 편이다. 조심성도 없어 물건을 떨어뜨리는 것은 매사에 있는 일이다. 핸드폰의 액정은 늘 깨져있지만 수리하지 않고 그냥 쓴다. 어차피 다시 깨질 것이므로. 나이를 먹어가니 가용할 에너지도 줄어서, 그것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신경을 쏟는 일을 피하고만 싶다. 그래서 번거로운 일을 줄이는 방향으로 기본적인 의사결정 구조가 짜여있다. 의사선택의 첫 번째 기준은 당연히 효율성이었다. 하지만 인생이란 게 효율적이기만 하던가. 매사에 신경을 세심하게 쏟을 때 우리 삶은 윤택해진다. 애써 바라보고 기운을 내 신경을 쓰고 보살펴야 나아지는 우리의 관계, 우리의 건강, 우리의 삶.
특히 신경을 쓸 사람도 써줄 사람도 없는 1인분짜리 싱글의 삶에서 스스로 애쓰기는 더 중요하다. 자기 자신을 챙기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사람의 시선은 언제나 자신의 반대편을 향한다. 나를 보려면 애써 거울 앞에 가야 한다. 그렇다. 나를 보살피는 일은 바라보기부터가 시작이다. 나의 하루 일상을 되도록 자주 정성껏 바라본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도 헤아려본다. 지금 카페에서 내 눈은 탁자 위의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지만, 마음의 거울로 나를 반사해 바라보자. 공중에서 나를 타인처럼 바라보는 눈. 혼자 앉아 있는 저 여자. 지금 나는 아주 조금 헛헛하구나. 마음이 허전할 때 입에 무언가를 욱여넣는구나. 그렇게 자주 바라보아 주다 보면 신경이 쓰이는 구석이 하나 둘 발견된다.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는 것은 신호. 그 신호를 놓치지 않고 뭉개지 않고 행동으로 연결한다. 그렇게 소중한 나에게 애써 신경을 써 준다.
하지만 나날이 무뎌져만 가는 신경줄. 그렇게 애써보다가도 한순간에 다 귀찮아지고 만다. 나에게 신경의 샘물이 하나 있어 길어 올리고 퍼다 써도 다시금 차올랐으면 좋겠다. 아직도 계속되는 나의 신경연습. 그래, 빠른 은퇴를 위해 자산의 그릇을 늘리고, 소비를 줄인 것처럼 신경그릇을 키우고 신경소모를 줄여나간다. 신경줄도 체력에 달려 있어, 생활 근육을 키우고 컨디션을 관리해야 한다. 그리고 새어나가는 신경을 줄이기 위해, 반복되는 자기 돌보기는 루틴화한다. 대충 사는 독거인 티가 나지 않게. 나를 닦고 칠하는 일을 무의식에 입력하자.
40이 다 되어서야 이토록 당연한 일을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다. 살아가 날들이 많으니, 재정비를 하는 중이라 생각하기로 한다. 오늘도 나에게 신경써주기 위해 신경을 쓴다. 오늘의 나를 몇 번이나 봐주었더라? 집에 가는 길에 싱싱한 생강 하나를 사가야겠다. 뜨끈하게 끓인 물로 목을 적시고 잠에 들어야지. 가을이 지나가는 바람이 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