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서 탓을 멈추겠다는 마음

by 오늘의 바다 보다

나이를 이렇게나 먹었는데, 아직도 조건 없는 든든한 사랑이 퍼부어지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나에게 부족한 양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살아가며 끊임없이 마주하게 되는 나의 부족함에 대한 자괴감이 들 때, 나도 모르게 이런 유전자를 준, 이런 생활습관을 준 부모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스쳐 지나간다. 마흔이나 된 자식이 아직도 본인 탓을 한다는 것을 안다면, 황망한 마음이 들 그들을 염려하여 떠오른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 않고 서둘러 지워버리는 것이 그나마 한 뼘 자란 나의 성숙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역시나 창피하여 여기서 한 뼘 더 자라나 보기로 했다. 다 자란 아이도 부모의 탓이라면, 그 부모도 다 자란 아이이므로, 그것은 그들의 부모의 탓이 된다. 그냥 내일은 내가 알아서 잘하면 되는 것을 공연히 책임을 미룰 선조를 찾아다니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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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은 어딘가에 놓여있다. 그 장소가 어디든지 간에.

자유의지가 없는 사물이 아니기에, 우리 모두 얼마간은 놓였고, 얼마간은 스스로 놓았다. 어느 쪽의 비율이 더 높은지는 모르겠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타고난 제약에 대한 생각은 그만두고, 이제는 스스로 놓일 자리를 바꾸거나, 더 나아지게 하는 일에 힘을 쏟고 싶다.


생각해 보니 지금 내가 놓인 이곳은 오롯이 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졌다. 그동안은 태어난 곳, 학교가 위치한 곳, 회사가 위치한 곳에서만 살아왔다. 아직은 차가운 바람과 따뜻한 햇살이 엎치락뒤치락 섞이는 이른 봄날씨에, 넓고 아름다운 도서관의 지하층 창가자리에 앉은 나의 눈앞에 오후 4시의 햇살에 반짝이는 대나무가 하늘하늘 춤을 춘다. 늘어지게 평화로운 지금 이 시간에, 나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하나씩 헤아려 본다. 고질적인 어깨의 통증, 더부륵하고 팅팅한 몸, 그리고 산만하여 집중이 흐려지는 정신. 현재의 부족을 나열해 보니 이건 전적으로 나의 탓이다. 물론 부모님 탓으로 미루고 싶은 더 큰 문제도 많기는 하다. 예를 하나만 들어보자면, 결혼에 대한 생각과 외로움 같은 것.


내가 짝 없는 고독한 인간이라는 것에 대한 원인을 따져보자면 여러 논쟁이 있을 것 같다. 의미 없는 논쟁이 성가시니, 이것 또한 어느 정도 나의 선택이며, 나의 부족함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넘어가겠다. 넘어가는 이유는 세상에서 중요하다고 얘기하는 결혼 여부가 사실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지금 의자에 앉아있는 나를 돌아보니, 그냥 머리가 맑았으면 좋겠고 어깨가 개운했으면 좋겠다. 순간이 모여 인생이 된다더니 정말로 그렇다. 매일매일 나의 일상이 지금보다 더 가볍고 상쾌하면 다 괜찮을 것만 같다. 그런 상태로 나아가는 일에는 다른 이의 탓을 할만한 부분을 찾아볼 수 없구나.


이렇게 나는 엄마 모르게 조금씩 탓을 하다가 탓을 그만두기로 한다. 아 아빠는 조금 더 기다려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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