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비 살림형 여성의 세상살이

40대 과학 교사, 불량 주부로 살아남기

by 살다

나는 스스로를 비 살림형 주부, 불량 주부, 불량 아내, 불량 엄마로 말한다. 그 배경은 다음과 같다.


2022년 현재 40대 중반 이상의 여성이라면 대부분 "여자애가 조신하지 못하게"라는 말을 들으며 성장했을 것이다. 적어도 부산에서는 그랬다. 주변에서 보는 성인 여성은 수녀와 비구니 빼곤 대부분 결혼을 해서 애를 낳았고 그러지 않은 여성은 누구의 이해도 받지 못한 채 하자 있는 사람으로 취급했다. 가정폭력을 피해 맨발로 뛰쳐나온 아내를 길거리에서 때리는 남편도 종종 보았고 집안일은 간섭하기 힘들다는 암묵적인 동의하에 아무도 도와주는 이 없었다. 간호원, 보험판매원, 횟집이나 옷 수선 가게 주인, 요구르트 아주머니, 식당 직원, 버스 안내양 등이 학생들이 마주칠 수 있는 직장 여성이었다. 어느 정도 인정받는 직장 여성으로 교사와 의사가 있었지만 누구도 여교사나 여의사가 남교사나 남자 의사에 비해 너무 적다고 교육이나 의료에 문제가 있다고 하지 않았다.


여학생들의 미래상은 대부분 현모양처였고 가정 교과를 필수로 배웠다. 남학생들이 회사원을 꿈꾸고 기술 교과를 필수로 배웠듯이. 그러면서도 서서히 여성의 독립과 전문성 향상에 대해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우리 또래들은 대학 진학을 하면서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직장을 갖기 위한 진학과 결혼을 하기 위한 간판으로서의 진학. 직업을 반드시 갖겠다는 부류와 결혼하면 직장은 그만둘 수 있다는 부류, 아예 직업은 갖고 싶지 않다는 부류로 나눌 수 있었다.

대학 졸업 즈음엔 맞벌이를 하면 남편도 아내를 "도울 수 있다"는 남편, 시어른과 "도와야 한다"는 친정 어른과 "같이 하는 것이다"는 아내가 늘기 시작했다. 각자 입장이 하늘과 땅만큼 다른 셈이지만 살림을 여자가 주도적으로 하며 남자보다는 잘하고 적성에 맞는 편임에 큰 이의가 없이 동의했다.


나는 이런 환경과 교육을 받고 자랐지만 조금 달랐다. 초등 아니 국민학교 시절부터 꿈은 과학자였고 미래 꿈 그리기에 결혼은 등장한 적이 없었으며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칠칠하지 못하여 늘 그릇을 깨고, 잔돈을 잃어버려 잔심부름과 부엌일에서 쫓겨난 지 오래였다. 여학생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남학생들과 혹성탈출(미끄럼틀 탈출 놀이), 다방구(술래잡기의 일종)를 하고 놀았으며 친구를 잘 못 사귀고 구석에서 혼자 책 읽기를 제일 좋아했다.


이러니 살림에는 관심이 없었고, 결혼에 대한 환상도 없었다. 누군가의 아내, 엄마가 된다는 생각을 못해보고 20대 중반을 넘겨 어느 날 갑자기 결혼을 하게 되었다. 아무 관심 없던 일들을 주도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사람-주부가 되었다. 그렇다고 갑자기 생각이 바뀌거나 살림 능력이 일취월장하는 놀라운 일은 없었다. 애를 낳으면 저절로 생긴다는 모성애, 십여 년을 키워 이제 겨우 남들 흉내는 낸다.


처음엔 제대로 살고 있지 않다는 죄책감, 우울감에 고생을 좀 했다. 나 같은 여성이 적진 않을 것이다. 날 보시고 힘 좀 내시라. 이런 여자도 있다. 소수일지언정 있긴 하다. 잘못된 게 아니라 조금 다른 것이다.


현재 나는 비 살림형 불량 주부, 불량 아내, 불량 엄마가 되었다. 여전히 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