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20대 과학 교사, 불량 예비신부 되기

40대 과학 교사, 불량 주부로 살아남기

by 살다

인생 계획에 결혼이 없었는데 갑자기 결혼은 어떻게 했을까? 결혼에 대한 환상이 없는데 인연이 닿으면 이런 일이 생긴다.


대학 4년 내내 연애를 못해봤다. 1-2학년 땐 통통한 몸매에 두꺼운 잠자리 안경, 선머슴 같아 아무도 여자 취급을 안 해 주었다. 3학년이 되어 화장에 눈 뜨고 렌즈를 끼고 다니자 남학생들의 반응이 달라졌다. 남자가 시각에 약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맘에 든 남학생에겐 내가 사귀자고 했고, 사교성과 인내심과 이해심이 부족했던 나는 이틀 만에 그만두자고 했다. 4학년이 되자 한 동기 남학생이 사귀자 했지만 성격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사귀지 않았다. 나중에 들으니 그 애는 1학년 때부터 아는 여학생들에게 예쁜 순서대로 사귀자고 했다고 했다. 내가 마지막이었다. 8월 졸업을 하고 그해 겨울 임용에 통과하여 과학교사가 되었다.


대학 선배들과 우연히 연락되어 조금 사귀었지만 길게 가지 못했다. 너무 현실적인, 나쁜 여자였다. 결혼은 하기 싫었는데 연애는 처음 해보는 셈이니 너무 신기했고 좋았다. 하지만 결혼을 한다면 내가 생활이 가능할까 계산을 하게 되었다. 나는 집순이에 가깝고 청소, 요리, 설거지, 빨래, 정리 다 싫어하고 직장 업무와 야근에는 스트레스가 적었다. 어떤 사람은 나를 너무 여성스럽게 생각해서 독립적인 성인으로 대하지 않았고, 어떤 사람은 친구를 너무 좋아해서 집에서 술자리를 많이 가지는 삶을 살 것 같았다. 결국 마지막 연애 대상은 정말 좋아했지만 아주 나쁜 여자가 되어 헤어졌다.


아버지는 고집이 대단하셨고 당신의 인생 계획에서 성사시키지 못한 것은 나의 결혼 밖에 없었다. 나는 갈등이 생기면 피하는 편이라 결혼을 차일피일 미룰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보다 강하셨다. 연애하지 않았던 기간에 나는 선을 여러 차례 봐야 했다. 나에게 선이란 커피값을 내고 다양한 직장에 대해 알 수 있는 재밌는 시간이었다. 마음가짐 때문인지 딱 하루 만나고는 끝이었다.


인연은 마지막 연애가 끝난 지 1달 정도 되었을 때 나타났다. 아는 사람의 소개로 선을 보게 된 것이었다. 커피숍 문을 여는 순간 너무 잘 생긴 남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화도 잘 통하고 성격이 유순해 보였다. 내가 여성스러운 주부가 되지 않고 뻗대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금방 서로 좋아하게 되었다. 만난 지 2주 만에 프러포즈를 받고 그 자리에서 알겠다고 했다. 아버지의 고집을 평생 이기기도 힘들 것 같았지만 앞으로 이 남자보다 나의 성격에 더 잘 맞는 남자는 만날 확률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이 도박 해 볼만하다고 판단했다. 딱 하나의 관문만 거치면. 예비 시어른들과 예비 시댁의 분위기. 요즘은 시가라고 한다지만 입에 붙은 말이 잘 안 바뀐다. 늘 생각했다. 결혼은 서로 살아온 환경 혹은 분위기가 비슷해야 하는 거라고. 둘이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만나는 거라고. 인사드리러 가서 분위기가 다르면 결혼을 않겠다는 다짐을 하며 시댁에 갔다. 우리 부모님과 너무 유사하셨다. 결혼하기로 했다.


본 지 3개월 후 나는 5월의 신부가 될 예정이었다. 직장 4년 차, 학급경영과 수업 준비에 정신없었고 살림은 관심이 없었다. 남편은 본인이 살던 작은 아파트에 살림을 차리면 된다고 했고 나는 각자 자취하며 쓰던 짐 모아 살면 된다고 했다. 직장생활 시작하면서 시작된 아버지표 강제 적금으로 모은 돈은 결혼 준비에 들어갔다. 모자란 돈은 보태주셨다. 철이 없어 감사함도 몰랐다. 답답한 사람이 우물을 판다. 어머니는 부엌살림과 침대, 이불 등 살림을 장만하셨다. 아무것도 사고 싶어 하지 않는 나에게 맡길 수 없으셨던 것이다. 15년도 더 되었지만 그때 사 주신 코렐 그릇이 많고 편해서 그릇을 산 적이 없다. 하지만 안 사주셨다면 그건 그런대로 잘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을 하면 밥을 해 먹어야 한다는 생각조차 않았다. 자취 3년 차. 할 줄 아는 것은 전기밥솥 밥물 맞추는 것과 라면 끓이기, 계란 익히기(프라이를 제대로 못해 익히기만 가능한) 정도였다. 배워야겠다는 생각은 않았다. 빨래는 세탁기가 해주고, 건조대는 옷 보관대로 쓰였다. 청소는 해 본 기억이 없었다. 한두 달에 한 번씩 부모님께서 오시면 경악하시며 치우셨다. 어떻게 되겠지, 뭐.


야외 촬영은 귀찮아서 생략했다. 살면서 앨범을 언제 다시 보겠나. 드레스 입는 것은 재밌어서 실내 촬영은 할 만했다. 시댁과 친정 사이 오가는 것은 남편과 나는 불필요한 요식 행위라 생각해 다 생략하고 싶어 했다. 어른들께서 답답해하시더니 알아서 하신대서 우린 거의 신경을 안 썼다. 지금 생각하면 가장 후회되는 일이다. 강력히 아무것도 않겠다고 했어야 했다. 쓸데없는 돈만 쓰시게 둔 셈이었다. 신혼여행은 사스가 유행하여 제주도 펜션을 예약하였다. 결혼식장은 개혼이라 꼭 당신들 사시는 곳에서 하고 싶다는 시댁 의견을 들어 2시간 거리에 잡았다.


중간고사 평가 완료 후 특별휴가를 쓰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일을 마무리했다.

곧 결혼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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