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안 치워도 괜찮아.

40대 과학 교사, 불량 주부-20대, 청소

by 살다

대학 시절 어느 과외 집에선 물 한 잔도 먹기 힘들었다. 물컵에는 물때가 가득 끼어있었다. 친정어머니 말씀처럼 입에 들어가는 것만 유난 떠는 나에게 그 컵의 물을 먹는 것은 무리였다. 화장실에는 찌린내가 났고, 역시 때가 가득했다.

하지만 그 가족은 행복했고,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아침저녁으로 방을 쓸고 닦는 부모님을 보며 자랐다. 화장실에서 밥을 먹어도 아무렇지 않을 깨끗함. 나는 방청소를 하지 않았고 정리도 못했다. 어지러운 방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고 물건 버리는 것을 못하니 어머니는 늘 흩어진 종이를 한 곳에 모아만 두고 내 방을 청소하셨다. 우리도 행복했고, 건강했다.




<결혼은 살림 책임지기>


청소를 오래 않으면 회색 먼지가 동그랗게 굴러다닌다는 것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까. 문을 여닫거나 옷을 움직일 때 밑에서 먼지가 뱅글뱅글 돈다. 전에 읽은 과학책에서 그 회색 먼지는 대부분이 각질이라고 했다.


"우리는 방에 지나다니는 길이 있었어."

남편이 총각 때 지인과 자취하던 일을 말하며 웃었다. 둘 다 청소를 않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사람들이라 청소를 않고 살다 보니 나중에는 다니는 길이 생기고 주변에 먼지가 쌓여 있었다고 했다. "나보다 청소 않는 녀석은 처음 봤다." 지인이 그렇게 말했다는데 그 날 청소를 했는지 아닌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말은 그렇게 해도 남편은 잘 어지르지 않는 사람이었다. 정해진 것을 잘 기억하고 그대로 했다. 빨랫감을 제자리에 모으고, 뭔가를 먹으면 그릇은 싱크대에 넣었다. 청소만 않을 뿐이었다.


나라고 다르지 않았다. 나에겐 약간의 강박이 있는데 내가 먹는 것이 깨끗해야 하는 것과 침대에 겉옷을 올려놓지 않는 것이었다. 그 외의 것을 치울 의지는 없었다. 문제는 자란 환경이었다. 집은 깨끗하게 유지되는 것이 옳은 것이라 느꼈고 늘 죄책감에 시달렸다. 청소를 시작하는 것은 나였다. 그조차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청소기 돌리는 것이 다였다. 마지못해 한 번씩 남편도 청소기를 돌렸다.


결혼하고 보니 살림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나와 남편은 독립 전까지 부모님의 손을 빌려 산 것이었다. 이제 우리가 살림을 책임져야 했다. 매일 쓸고 닦지 않는, 그럴 의지가 없는 남편과 나 자신에게 좌절감을 느꼈다.



<어머니, 제 살림이에요.>


양가 부모님은 다른 도시에 사셨지만 친정 부모님은 상대적으로 젊으시고 운전을 하셔서 기동력이 있으셨다. 일만 하는 딸을 너무 잘 아셔서 수시로 집을 치워주려 하셨다. 부담스러울까 봐 출근한 틈에 오셔서 먼지 털기, 청소기 돌리기, 냉장고 정리, 설거지, 싱크대 씻고, 흰 빨래와 행주를 삶고 걸레로 바닥을 닦고 화장실과 현관, 베란다 청소 후 쓰레기를 버리고 걸레까지 빨아 건조대에 널면 하루가 다 가버렸다. 퇴근 무렵 우리가 놀라지 않게 전화를 주셨고 가보면 닭볶음탕과 저녁이 차려져 있었다.


그러지 마시라고 말려도 한 달에 한두 번은 오셨고, 남편도 서서히 이 패턴에 익숙해져 가는 것 같았다. 어차피 결혼 전 둘 다 테돌이, 테순이(텔레비젼만 보는 애들)였기에 청소하시는데도 멍하니 서서 TV를 보고 서있기까지 했다.


이건 아니지!


두 달이 될 때쯤 두 분께 말씀드렸다.

어머니, 아버지는 절 어른이 될 때까지 키워주셨고, 하실 일을 다 하셨다. 계속 이렇게 하시면 우리 부부가 여기 익숙해지게 된다. 남편도 자기 할 일을 해야 한다. 제 살림은 알아서 하겠다. 수시로 드나드시는 것은 옳지 못하다. 거꾸로 생각해 보시라. 시부모님이 우리 도와주신다고 무시로 들어오셔서 청소하시면 제가 편하겠는가. 남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서운해하셨다.

일하는 딸이 자랑스러우셨고 살림 못하는 딸 누구보다 잘 아셨기에 도우시려 했던 것 다 알고 있었다. 거의 울 것처럼 섭섭함을 비추셨고, "알아서 해라"는 말과 함께 우렁각시 일을 그만두셨다.


사실은 남편이 성격이 유달리 사교적인지 모르겠지만, 처가 식구들을 불편해하지 않는다. 나도 둔한 성격이라 그런지 시댁 식구들이 불편하지 않다. 그래서인지 장인, 장모가 본인 부모님처럼 청소하시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강하게 말씀드리게 되었다. 우리 부모님이 가정부 노릇을 할 필요는 없었다.



결국 살림은 "우리"가 하는 것이다. 더러운 상태를 "더 못 참는" 사람이 청소를 먼저 시작하게 마련이다.


이 시절엔 치우지 않는 자신에 대해 깊은 좌절을 느끼고 있었고, 본인도 안 치우는 주제에 남편도 원망했다.


나는 나름 답을 찾았다.

안 치워도 안 죽는다.


검은 옷은 바닥에 두지 않는다. 먼지 때문에 엉망이 되니 서서 입거나 침대에서 입는다.

잦은 빨래, 손빨래 사절이다. 속옷, 양말을 많이 샀다. 항상 정장 입는 남편은 와이셔츠도 가득 이었다. 일주일 만에 빨 수 있게 10세트 이상씩 되었다. 나중에 포장 이사할 때 다들 어리둥절 해 할 정도로 옷장이 꽉 찼다.


건조대에서 옷 빼입어도 된다. 꼭 빨리 개어 넣어야 할까? 소파는 두 자리만 빼고 빨래가 끝난 옷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주말이 되면 가끔 빨랫감들이 서랍으로 들어갔지만 드문 일이었다.


셀로판테이프는 방마다 하나 씩. 아무 곳에서나 먼지나 머리카락이 보이면 셀로판테이프를 뒤집어 붙여 찐득한 곳으로 닦아냈다. 청소기는 잘 안 돌리고 퇴근은 늘 늦으니 이게 편했다.


몇 년이 되지 않아 친정 부모님께 고맙다는 말씀을 들었다. 그땐 젊어서 더러운 집 꼴을 못 보고 딸도 못 내버려 둬서 그랬는데 계속 그렇게 살았다면 퇴직 후에도 그만두지 못하셨을 거라고. 나를 독립시키지 못했을 거라고. 이젠 몸이 고되다고 하셨다.

20년 넘게 자식을 돌봐주셨으면 해야 할 일을 거의 다 하신 거라고 생각한다.


주부로서 불량한 삶을 살고 있다 느꼈고 치우지 않음에 스트레스와 평화로움을 동시에 느끼고 지내던 시기였다.


그리고 곧 임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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