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모성애가 안 생겨서 제가 키워야겠어요.

40대 과학 교사, 불량 주부-20대, 불량 엄마 2

by 살다

"키워 주겠다는데 왜 아주머니를 구한단 말이니? 우리가 못 미더운 거니?"

"그게 아녜요. 전 저녁에 데리고 자야겠습니다. 지금도 제 애 같지 않은데 떨어져 지내면 제 성향 상 주 중에 애는 완전히 잊고 살 것 같다고요!"



<모성애가 부족해서 데리고 자야겠습니다!>


육아가 너무나 맞지 않은 내가 탈출하는 길은 직장 복귀였다. 3개월 출산휴가를 꽉 채우면 3월 개학 후 일주일 뒤가 복직예정일이었다. 업무 폭발 시기를 지나 복직하는 기회였지만 나는 빨리 탈출하고 싶기도 했고, 학기 초 겨우 일주일을 가지고 직장에 누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일주일 일찍 복직하기로 했다.

(나의 생각을 아무리 말하고 다녀도 이해하는 사람이 직장에 하나도 없었다. 덕분에 당시 교장선생님께서 일찍 나오라고 압박을 줬다는 누명을 쓰셨다는 것을 일 년도 더 지나 알게 되었다. 죄송합니다.)


나는 애를 부모가 키워야 하며 친정이나 시댁에 맡기는 것은 정말 어쩔 수 없을 때만 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내가 육아를 너무 힘들어했기 때문에 그분들에게 그런 짐을 안겨 노화를 촉진시키고 싶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면 시댁이 우선순위였다. 애는 아무리 잘 돌보아도 크고 작게 다치기 마련이다. 친정에서 돌보다 그런 일이 생기면 우리 부부는 그러려니 해도 보수적인 성향의 시댁은 분명 서운해하실 것 같았다. 또 다른 이유는 친정 부모님은 잔소리를 좀 하시는 성향인데 시부모님은 오로지 사랑으로 대하시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릴 땐 그게 더 좋겠다 싶었다.


하여간 이 이유로 나는 복직 전 딸과 엄마가 싸우듯 시어머님과 의견 대립을 해야 했다.

말 그대로 "싸웠다". 너무나 서운해하셨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애는 두 시간마다 젖을 먹었고, 젖을 물릴 때만 아, 나 진짜 엄마구나 싶었다. 하루 24시간 육아는 미치게 싫었고 사회가 날 버린 것 같았다. 제정신으로 살려면 복직해야 했고, 모성애를 위해서는 저녁에 데리고 자는 거라도 해야 했다.

절박했다.


결국 같은 아파트 단지에 광고지를 붙였다. 복직 전 반드시 구해야 했다. 아니면 다른 도시의 시댁이나 친정에 맡기고 딩크족처럼 살게 생겼다. 좋아해야 하나? 만감이 교차하는 날들을 보내다 아주머니를 구했다. 복직 일주일 전이었다.


시아버님은 애 본다며 끊으셨던 담배를 다시 피우셨다.



<여전한 살림 회피와 보모 아주머니 운>


아들이 아주 어린 동안은 침실에서만 지냈으니 침실만 적절히 먼지를 치웠다. 뒤집고 기면서는 마루가 거점 공간이었고, 역시 거기만 치웠다.

애가 먼지를 들이마시지 않게 주의하고 이것저것 입에 넣는 시기엔 더러운 것 안 빨게 하는 것이 목표였다.


보모 아주머니 운이 좋았다. 부지런하며 깔끔하셨고 반찬도 잘하셔서 애가 밥을 먹기 시작하면서 나물 반찬도 곧잘 먹게 되었다.


출근만 하면 애 생각이 안 났다. 일에 정신이 팔렸고 과학교사 특성상 복직하자마자 5월까지 정신없이 바빴다(3월 신학기, 4~5월 과학의 달 관련 각종 대회).


"죄송해요. 퇴근이 예상보다 두 시간 정도 늦겠어요."

"이번 주 화, 금은 야자 감독이라 6시 좀 지나 남편이 데리러 올 거예요."

"둘 다 회식이라 죄송해요. 9시가 넘어야겠어요."


당시만 해도 회식이 좀 있었고, 하면 새벽 1~2시까지 했다. 남편과 늘 일정 조율을 해야 했다. 내가 데리러 가는 날은 자주 늦게 도착했다. 업무 습관을 잘못 잡아 그렇기도 했고 담임은 학급에 일이 생기면 일찍 나올 수가 없었다.


십여 년 뒤 보모 아주머니를 다시 만났을 때 허심탄회하게 말씀하셨다.

"애가 그렇게 안 자더라고. 밤에 잘 자나보다, 효자네, 그랬지. 예민한 애고 엄마(나)는 자주 늦어서 몇 번이나 그만둘까 했었어. 엄마, 아빠가 하도 사람들이 좋고 애도 정이 붙어서 계속했지만."

우리도 말했다.

"어머, 저흰 밤에 잘 안 자고 잠이 적어서 낮에 많이 자나보다 생각했어요. 얜 언제 잤던 거야?"


주말에는 환경이 바뀌어 하루 종일 잘 안자나 했더니 원래 예민하고 잠이 적은 애였다. 그 당시에 그만두신다고 했으면 어떻게 할 뻔했나 등골이 오싹했다. 자주 간식 챙겨드리고 명절 챙기기를 정말 잘했지. 정말 감사해서 마음에서 우러나서 해드린 거지만 어쨌거나 과거의 자신에게 대견했다.



<생리 않는 천국, 모유 수유>


젖 물리는 기간에는 생리를 않는다고 했다. 생리통 없는 천국을 위해 복직 직전 유축기를 구입했다.


운 좋게도 직장에 여교사 휴게실이 생겼고 나는 유축기를 갖다 놓았다. 틈나는 대로 유축해서 냉동 후 아주머니께 분유와 함께 드렸다. 기왕 나오는 거 애한테 좋은 거 나오겠지. 젖이 충분하지 않았지만 나올 때까지는 최선을 다 했다. 남들은 내가 모성애가 뛰어나서 그러는 줄 알았다.


그 해 5월 학년 체험학습 인솔을 갔고, 젖 마를까 시간 날 때마다 화장실에서 손으로 열심히 짜 봤지만 시간 간격이 너무 길었다. 학생 인솔을 하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은 힘들기 때문이었다. 3일 만에 젖은 급격히 줄더니 그 달 말 모유수유를 끝냈다. 생리통의 지옥이 돌아왔다. 누가 애 낳고 나면 생리통 없어진댔어!



<계획대로 되는 것은 없다>


공립학교는 한 학교에 근무할 수 있는 최대 기간이 5년이다. 나는 근무하던 학교 만기가 되어 터널을 지나가야 하는 A시의 학교로 이동했다. 내 출근이 빨라져서 아침에 애는 남편이 맡기러 가게 되었다. 애는 막 두 돌을 넘긴 때였다.


귀 얇기로 둘째 가면 서러운 남편이 퇴근을 하더니 갑자기 집을 샀다고 했다.

"네? 어디에요?"

"A시에 출장 갔다가 어떤 부동산에 가게 되었거든요? 새로 짓는 아파트에 좋은 물건이 있다면서 지금 계약 않으면 꼭대기 전망 진짜 좋은 곳이 곧 없어질 거래잖아요. 급해서 당신에게 전화하니 안 받기에 당신과 의논 못하고 계약했어요. 미안해요."


억이 넘는 계약을 반나절 만에 하고 와서는 저녁에 먹기로 한 떡볶이 대신 순대를 사 와서 미안하다는 어투로 말하는 남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하아~. 이사하면 출근길에 애는 어떻게 맡겨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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