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선생님: 이게 뼈에 탈이 났다면 이렇게 못하거든요. 괜찮아 보입니다. 가셔도 되겠습니다.
<남편의 빅 픽쳐와 양육 환경 변화의 연쇄 반응>
투자 가치도 없고, 출퇴근도 힘든 터널 너머 A시의 아파트는 좋은 자연환경 외에 내세울 것이 없었다. 세입자를 들인다 해도 전세금이 낮은 지역이라 우리는 대출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둘 다 빚지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성향이었다. 그럴 바에는 현재 사는 전세를 빼서 A시의 아파트로 들어가야 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마루에서 바다가 보이고, 뒤로 산이 보이는 공기 좋고 한적한 펜션 같은 집”은 남편의 로망이었음을. 그의 빅 픽쳐는 경알못(경제를 알지 못하는 사람)인 나로 인해 완성된 것이었다. 이 빅 픽쳐는 이후 많은 연쇄반응을 일으키게 되었다.
<반응 1 – 보모 아주머니 대신 어린이집>
이제 아이를 맡기려면 남편이 출근길에 보모 아주머니께 데려가고, 퇴근길에도 데려와야 한다. 남편의 퇴근이 늦거나 출장이 생기면 내가 출근길에 터널을 지나 데려다주고, 다시 터널을 지나 출근한 뒤, 퇴근길에 같은 일을 반복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 터널은 출퇴근 시간에 막히기로 소문난 곳이었다.
이에 대해 논의하는 동안 남편의 표정을 보아하니 그건 고려하지 않은 듯했다. 일에 대해 완벽주의자인 남편이 이렇게 허당일 리가 없는데. 남편은 자신을 육아와 살림을 아내와 같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노력했지만, 결국 자신이 속한 세대를 뛰어넘지 못했다.
아이를 돌보는 사람이 자주 바뀌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보모 아주머니 유지는 무리였다. 아파트 완공 후 입주하려 하니 1층에 어린이집이 생겨있었다. 어린이집이 한 군데니 선택권도 없었다. 설마 나쁜 마음으로 어린이 돌보는 어린이집이 있겠냐며 초등 입학까지 함께 했으면 싶었던 보모 아주머니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어린이집에 적응시키기로 했다. 그때가 만 3세를 3개월 앞둔 시기였다.
<반응 2 – 어린이집 적응>
아들이 말을 하기 시작하니 느리게 자라던 모성애가 조금 빨리 자라게 되었다. 그래도 다른 아기 엄마들에 비하면 현저히 낮다는 것을 주변 아기 엄마들을 보면서 느꼈다. 직장에서 쉬는 시간마다 보모에게 전화해서 아기 귀에 전화기를 대어 달라고 해 여러 가지 얘기를 해주는 엄마(당시 5개월), 점심시간에 애가 보고 싶다며 울먹이던 엄마(당시 아기 10개월), 퇴근만 기다리던 엄마(당시 2살) 등. 난 일하는 동안은 아들 생각이 안났다.
어린이집에서야 애들을 계속 돌보아야 하니 잘 지낸다고 말 해 주겠지만 나는 아들을 알고 있었다. 유난히 고집이 세고 까칠한 면이 있다는 것을. 적응하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퇴근이 둘 다 늦어지는 날이면 1시간 반 거리의 친정 부모님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보모 아주머니 구하기도 쉽지 않은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부부의 육아는 점점 양가 어른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내가 정말 싫어했던 생활 방식이었지만 선택권이 없었다.
<촉매 – 아들의 쇄골 골절>
1개월 간 어린이집에 적응하며 가을이 되었다.
늦은 저녁 남편의 품에 안겨있던 아들은 갑자기 몸을 뒤로 휙 젖혔다. 대처할 시간이 없는 재빠른 동작이었다. 유난히 작은 편인 아들은 남편의 팔에서 쏙 빠져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이는 엉엉 울었지만 곧 울음을 멈추고 잘 놀았다. 머리에 이상은 없는 것 같았다.
새벽 1시, 자다 깨서 팔이 아프다는 아들을 데리고 새벽 1시 응급실에 갔다. 갑자기 의사 앞에서는 멀쩡해졌다.
“이 동작은 다치면 못하는데 하네요. 괜찮습니다.”
새벽 3시, 온 식구가 누웠다가 다시 일어났다. 좀 전에는 병원이 무서워서 아프지 않다고 한 모양이었다. 아이가 스스로 병원에 다시 가자고 했다. 엑스레이 사진을 찍었다. 쇄골 골절이었다. 따로 캐스트를 하는 부위는 아니었으나 아파했다. 차라리 캐스트를 하면 티라도 날 텐데, 그게 아니니 아이들이 같이 노는 어린이집은 위험했다.
<반응 3 – 시부모님 육아 당첨>
아들은 어린이집에 겨우 적응해가는 중이었는데 골절까지 생기니 더 안 가려했다. 출근은 해야 했다. 당시 친정은 다른 집안일로 몹시 바빴다. 시댁은 늘 댁에 누군가는 계시는 편이었다. 2시간 거리의 시댁에 아이를 맡기고 주말에 보러 가기로 했다. 다른 옵션은 없었다.
아버님과 어머님은 너무나 좋아하셨다.
<반응 4 – 유리조각과 정형외과>
주중에 딩크족 생활을 즐기고 업무도 시간 신경 쓰지 않고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었다. 주말마다 시댁으로 갔다. 아이는 사랑을 듬뿍 받고 지냈다.
죄책감에 시달렸다. 나는 왜 저런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 수 없나. 주중의 생활에 대한 만족감이 이렇게 커도 되는가. 주말 부모가 된 다른 엄마들은 안 그렇던데, 남편도 나보다는 더 애를 보고 싶어 하는데 내가 이상한 것인가.
그 와중에 아이의 발에 길이 7mm, 폭 2mm 정도의 유리 조각이 들어간 일이 생겼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생긴 일이었다. 애가 발을 살짝 절어서 알게 되었다. 워낙 작은 조각이라 엑스레이 사진에도 나오지 않았다. 나이 많은 정형외과 의사 선생님이 마취도 않고 애를 나와 간호사에게 잡게 하더니 유리 조각이 있는 부위를 후벼 파셨다.
나는 처음으로 아이를 위해 진심으로 의사에게 화가 치밀고 속상해서 울었다. 그전까지는 내가 육아에 힘들어 울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아무리 환자들의 고통에 익숙하다지만 생살을 뒤적일 수 있는가. 마취약이 조직을 부풀게 하거나 해서 치료에 문제가 있나? 억지로 이해해보려 했지만 이 일은 아이가 병원과 주사를 극도로 싫어하게 된 큰 사건이었다.
유리 조각은 발바닥 쪽에 있다 보니 작게 쪼개어졌는지 이후 정형외과를 더 가고서야 깨끗이 제거가 되었다. 젊은 정형외과 의사 선생님은 아이를 달래고 마취를 하여 작업하셨다. 첫 번째 의사 선생님이 한 번 더 원망스러웠다. 마취를 하고 했다면 애가 몸부림을 덜 쳤을 테니 제거도 더 쉬웠을 텐데.
아버님과 어머님은 당신 집에서 일어난 일이라며 우리 부부와 아이에게 매우 미안해하셨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도 그 두 분께 원망의 마음이 들지 않는다. 전에도 말했듯이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이런 일은 생길 수 있는 일이며, 의도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정형외과 의사의 대처는 지금까지도 서운하다.
<반응 5 – 또 한 번의 양육 환경 변화>
아이는 태어나서 2년 9개월 간 우리 부부와 보모 아주머니와 지냈고, 1개월 어린이집을 다니고, 2개월 시댁에서 지냈다. 환경이 너무 많이 바뀌었다.
더 큰 변화는 3년 1개월째 되던 때 생겼다.
우리는 미국에 가야 했다.
<주말 부모는 선택할 수 없어서 한다.>
주말 부모는 선택인가? 아니다. 필요한가? 아니다. 선택이 불가능해서 한다. 생계형 맞벌이 부부는 휴직이 선택에 없다. 회식이나 야근을 매번 빠질 수도 없다. 애가 너무 어리거나 다치거나 하면 기관에 맡길 수 없어 보모 아주머니를 구해야 한다. 지역 특성상 보모 아주머니를 구하기도 힘들면 결국 친인척께 부탁을 드려야 한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우리 부부는 좀 멀기는 해도 양가 부모님이 다 계셔서 비빌 언덕이 있는 셈이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친인척이 없는 아기 보호자는 이런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돌보미 서비스가 생기긴 했지만 신청했을 때 바로 서비스를 이용한다는 보장이 없다. 갑작스러운 상황에는 정말 막막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안쓰러웠다.
여담. 화학 전공자로서 “chain reaction”이란 말을 멋지게 생각하지만 영어 남발의 시대를 늘 비판하고 있었기 때문에 “연쇄 반응”으로 썼다. 아, 신념대로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