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말인가 1월 초에 출국한단다. 같이 출국하게 자신의 출국에 맞추어 휴직하면 되겠다고 했다. 남편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자신의 아내는 모든 업무가 3월에 시작하고 2월에 마치는 교사라는 것을. 내가 맡은 학생들의 학년이 마치는 것을 책임져야 했다. 나는 2월 말에 아이와 함께 뒤따라가겠다고 했다.
시어머님은 내가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걱정을 하셨다. 남편이 혼자 한 달 있는 동안 밥을 어떻게 챙겨 먹겠냐는 것이었다. 총각 시절 혼자서 자취도 몇 년씩 했고, 결혼 후에도 나보다 음식을 더 잘하는 사람이라 도저히 공감할 수 없었다. 걱정 마시라고 했지만 떠나는 날까지 한 말씀 또 하고, 또 하셨다.
남편은 이민용 가방 2개에 당장 입을 옷과 간단한 비상식량, 냄비와 수저, 이불 등을 챙겨 출국했다. 미국에 도착하여 살 집을 구하고 인터넷, 가스, 전기 등을 연결해야 했다. 남편은 근무할 사무실마저 본인이 찾아서 계약하고 가구를 들여놓고, 면접을 통해 직원도 뽑아야 했다. 엄청나게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동안 학년을 마무리하고 휴직을 학교에 알리고 집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사는 내 살림을 돌아보게 한다>
가족이 해외에 살러 나갈 때, 누군가 뒤에 출국한다는 것은 이사를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었다. 2년 간 미국에 살아야 했으므로 해외 이사를 진행해야 했다. 모든 살림을 세 가지 기준으로 나눴다.
해외 이사용, 한국 보관용, 폐기용.
나는 쇼핑을 매우 싫어한다. 사춘기 때에는 어머니께서 옷 사러 가자고 하시면 아무 옷이나 사 오시면 입겠다는 등의 진상 짓을 했었다. 지금도 업무 중에 물건 사는 업무를 가장 싫어한다. 이런 내가 해외 이사 업체들을 알아보고 견적을 받고, 선택하고, 계약 일 전에 짐을 정리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무난히 잘 진행되었지만 당시에는 너무나 힘들었다.
짐을 정리하면서 깨달았다. 우리 부부는 살림에 무지했다. 대부분의 짐들은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아 지저분했다. 예를 들면 많은 옷들이 변색되어 있었고, 샴푸통 같은 것은 바닥을 씻어야 했으며, 깊어서 보이지 않던 수저통 바닥도 엉망이었다. 평소 수저의 입 닿는 부분을 위로 꽂아 보관한 것이 위안이 되긴 했지만. 모든 가구의 바닥 쪽은 말할 것이 없었다.
짐 정리를 하면서 가장 정리가 힘들었던 것은 냉장고였다. 이사 직전까지 사용해야 하며, 녹거나 썩을 것들을 먼저 정리해야 했다. 특히 전원을 끈 후 냉기를 빼야 했다. 나는 살면서 냉장고에 뭔가의 국물이 흐르지 않고서야 청소라고는 하지 않았다. 친정 부모님들께서 손이 빠르고 꼼꼼하셔서 나의 일하는 꼴을 못 견디시고 결국 다른 방으로 보내버리셨다.
다음 정리가 힘들었던 짐들은 책이었다. 언젠가는 다시 볼 것이라며 버리지 못한 책이 너무 많았다. 고르고 골라 몇 박스나 버렸지만 여전히 많았다. 옷은 말할 것도 없었다. 사는 것은 잘 못하지만 버리는 것은 더 못하는 부부였다. 파견근무 후 돌아와서 다시 써야 하는 많은 짐을 시댁의 안 쓰시는 빈 방에 몰아넣었다.
해외 이사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그분들의 전문성을 정말 높이 찬양한다. 박스에 맞지 않는 짐은 커터칼을 이용하여 박스를 창조적으로 재구성하여 사용했으며, 모든 짐은 전지 크기의 회색 종이를 충전물로 사용하여 깔끔하게 포장하였다. 어찌나 손들이 빠르신지, 각 박스에 대한 물품 분실 보상액 책정 등에 이용하기 위해 메모를 하는 내 손이 박스 포장 속도보다 더 느렸다. 박스와 충전용 종이는 나중에 미국에서 요긴하게 잘 사용하였다.
우리 집을 전세 놓는 것은 출국 직전까지 완결되지 않아 친정 부모님께 부탁을 드려야 했다. 그러려면 대리인을 지정하는 업무를 해야 했다. 그 외에도 나의 업무용 인증서, 남편과 나의 은행 인증서, 보안카드(당시에는 otp를 안 썼음), 환전 관련 인터넷 뱅킹 업무 처리 등 미리 신경 써야 할 일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출국일 직전까지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고, 전 주에는 시댁에 방문하여 인사를 했다. 아들과 아들의 짐도 우리 집으로 옮겨졌으며, 이민용 가방 4개와 캐리어를 챙겼다. 그동안 나는 내가 살림에 필요한 것과 아닌 것을 거의 구분하지 못하고 있음을 또 한 번 깨달았다. 친정 부모님께서는 몇 번이나 가방에 있던 짐에서 불필요한 짐을 찾아 빼셨다.
<공항에서 공항까지>
해외 이사 짐이 미국에 도착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그동안 미국에서 살림할 때 써야 할 짐이 필요했다. 비닐에 몇 번이나 감싼 된장, 고추장과 몇 가지 밑반찬, 냄비, 이불 등을 챙겨 친정 부모님의 배웅을 받으며 출국했다. 아들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헤어지게 되어 펑펑 울었지만 출국장으로 들어가는 순간 호기심에 가득 차 멀쩡해졌다.
만 3세 아이는 12시간 비행기를 타면 계속 잘 것이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평소에도 잠이 적은 편인데 왜 그런 낙관을 했을까. 나는 교통편만 이용하면 자는 평소의 습관대로 미친 듯이 잠이 쏟아지는데 애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놀거나 졸면서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나 역시 한 시간도 쉬지 못하고 졸다 깨다를 반복하며 옆 자리 애를 한 손으로 잡고 있어야 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비행기 안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알 수 있었다.
4년제 대학을 나온 사람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 영어 실력이 형편없는 이과생은 비자 기간 문제와 짐 통과 질문에 애를 먹었다. 한 손에 잠투정을 하는 만 3살 아들을 안고, 나머지 한 손으로 캐리어와 이민가방 4개를 카트 2개에 나누어 담고 번갈아 밀어야 했다. 웬 친절한 미국인이 카트 2개를 대신 밀어주었다. 너무나 고마운 마음에 땡큐만 반복하면서 열심히 걸어 마침내 공항을 나섰다. 날 기다리던 남편을 보자마자 갑자기 설움이 북받쳤다. 울음이 터졌다.
남편은 친절한 미국인에게 지갑에서 잽싸게 몇 달러 꺼내어 쥐어주고는 나를 안아주었다. 나중에 알았다. 그 미국인은 친절한 것이 아니라 짐 옮기는 것을 도와주고 팁을 받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었다. 남편도 비자 기간 문제로 애를 먹고 몇 시간이나 잡혀있었다고 했다. 나처럼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갈 집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얼마나 더 서러웠을까. 새삼 우리가 정말 가족이구나, 서로 챙겨야 하는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