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일중독 엄마의 과학교사 재 적응기

40대 과학 교사, 불량 주부 – 30대, 불량 주부

by 살다

남편: 당신 어디예요?

나: 학교죠. 아직 애들 대회 준비 봐주고 있어요.

남편: 밤 12시가 넘었는데 애들 집에 안 가요?

나: 그러게요. 제가 제발 그만하고 내일 보자고 했어요.



<복직자 동료와의 의기투합>


복직한 해, 같은 학년부에 육아휴직 후 복직한 동료 여교사 L이 있었다. 동갑에 자리도 나란했다. 교과는 달라도 몇 마디 나누자마자 서로에게 큰 힘이 되었다.


교과별 시수 배정(수업을 얼마나 해야 하는지 정하는 것)을 하면서 나의 체력을 과대평가했다. 당시 그 학년에는 10개 반이 있었는데 다른 교사와 나누어 수업을 해야 했다. 수업 시간을 평균해서 나눠가지면 같은 단원을 교사 둘이서 나누어 들어가야 했다. 수업 준비와 평가가 불편할 것 같아 혼자서 20 시수를 받았다. 학년실에 돌아와 보니 L도 같은 결정을 하고 20 시수를 받아서 온 것이었다. 둘이서 마주 보고 깔깔 웃었다.


“우리 이번 1년 잘 버텨보자.”


초등 교사들이 들으면 웃으실 시수지만, 고등학교에서 수업 20 시수는 흔하지 않다. 담임이라 조종례를 해야 하고, 보충수업까지 생각하면 일주일에 25 시수는 되는 셈이었다. 야자 감독은 뺀 시간이다. 우리는 그 해 내내 목이 쉬어 있었다.


L은 지금도 그렇지만 열정이 넘치는 교사였다. 당시 유행한 종례 신문을 만들어 학급에 나눠주자고 했다. 좋은 생각 같았다. 매일 만드는 것은 도저히 무리였다. 일주일에 한 번 발행했는데 업무가 하나 늘어난 셈이었다. 종종 마감 일자에 쫓기는 기자처럼 종례 신문을 편집, 출력해서 종례 때 들고뛰었다. 이 파일은 지금도 소중한 자료가 되어 담임을 하게 되면 가끔 훈화나 학부모 대상의 편지 등에 활용한다.



<배움의 기회와 체력>


L과 나는 자주 아팠다. 감기와 몸살을 달고 살았으며, 보약을 먹어야겠다고 처음 느꼈다. 체력이 열정을 따라가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도 30대라 버텨냈다.


복직한 학교에 창의력과 발명 관련 대회 지도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수학 선배 교사가 계셨다. 나에게 학생 지도를 같이 해보자고 하셨다. 과학 교사는 학생들의 다양한 대회 지도를 할 일이 종종 생긴다. 늘 학생 대회 지도에 자신 없어하던 나에게 빛과 같은 말씀이었다. 그때까지는 운이 없었던 것인지 같이 근무한 과학 교사 중 다양한 대회 지도하시는 분을 만나보지 못했었다.


밤늦도록 아이디어를 짜고 다양한 소품을 만드는 창의력 대회, 화학 실험을 하고 결과를 포스터로 만들어 발표하는 화학 대회, 발명품 아이디어를 내고 실제 물품을 만들어 제출하는 발명 대회, 토론 대회, 산출물 대회 등 다양한 대회를 지도할 기회가 생겼다. 어떤 대회든 지도 과정에서 학생과 트러블은 거의 없었으며 모든 학생들이 적극적이었다.


과학과에서 대회 지도를 하다 보면 무늬만 지도교사인 경우가 있다(학생들이 학원 등에서 대회 준비를 다 해오는 경우 등). 하지만 이 기간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 교사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의견을 내고 토론하고 적용하는 과정에서 행정적으로 해줘야 하는 일을 챙기고 실천 가능하게 밀어주는 역할을 배웠다. 즐겁게 대회 지도를 했으며, 지도할 때 학생들이 단합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선배 교사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나는 해보지 않으면 배우지 못하는 스타일이다. 그렇기에 복직 후 4년간 학교에서의 고생은 소중한 배움의 기회였다. 당시 주말이나 방학 때 아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다양한 대회 지도 및 체험활동 인솔 경험, 연수 이수 등은 나에게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지도를 잘하는 편도 아니고, 실적이 좋지는 않아도 적어도 학생들이 “지도교사해주실 수 있나요”하면 몰라서 못한다는 소리는 않게 되었다.


그 시기 나는 방학이 없었다. 방학 때 2~3일을 쉬면 많이 쉰 것이었고, 양가 부모님과 남편은 학교 일은 내가 다 하냐고 하셨다. 그래도 내가 신나서 하는 활동에 늘 힘을 실어주고 지원해주셨다.


아들이 초등 5학년을 앞둔 봄방학, 학생들의 대회 지도에 정신없이 뛰어다니다 결국 발목에 탈이 났다. 이후 산을 타지 못했다. 조금만 경사진 곳을 걸으면 바로 발목이 아팠다. 8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힘들지 않은 산은 탈 수 있다.


40 중반이 넘어가니 날만 흐려도 정말 온몸을 누가 때리는 것 같아 일어나기가 힘들다. 지금 그렇게 학교 생활하라고 하면 절대 못하겠다. 체력이 되는 30대에 열정을 다해 배우길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교사 업무 중 수업 시수의 특성>


교사들의 업무를 잘 모르는 다른 직종의 사람들은 수업 시수가 20시간이라고 하면 일주일에 일을 20시간만 하냐고 부러워한다.


고등학교의 경우 한 교시가 50분이다. 한 교시 수업 준비를 하려면 짧게는 1시간, 길게는 하루 종일 걸린다. 과학 교과처럼 실험이라도 있으면 사전 준비물 구입을 위한 재료 알아보기, 품의(사달라는 요청) 올리기, 물품 오면 사전 실험하기, 전체 반 실험 준비하기, 전체 반 수업이 끝나면 정리하기, 실험 보고서 체크가 추가된다.


과학 교사 업무 특성은 다음에 따로 다뤄보고자 한다.


수업 시간 1시간을 준비하고 마무리하는 것을 빼고 수업하는 시간만 업무 시간으로 보면 안 된다.


10개 반 20 시수라면 일주일에 2 시수 분량의 수업 준비를 하는 것이다. 시수가 14~16시간이라도 학급수가 적은 학교의 경우 2~3개 교과에 걸치거나 한 반에 수업을 일주일에 3~4번씩 들어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일주일에 수업 준비를 적어도 2~4 시수 분량 해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행정업무, 담임업무, 상담업무, 학생 지도, 평가업무, 동아리 및 대회 지도 등을 넣으면 시간은 더 늘어난다. 물론 짧은 시간에 집중도를 높여 잘 처리하시는 분도 많지만 업무 특성이나 학급 특성에 따라 퇴근 후 업무에 오랜 시간 시달리시는 분도 많다.


교사가 칼퇴근하는 것으로 보인다면 꼭 알아주시길 바란다. 그들 중 적게는 1/5, 많게는 1/2이 업무를 싸들고 퇴근 중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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