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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다 Feb 13. 2020

미국인 친구 사귀는 법을 아직 모르니?

호박전 한 장으로 생긴 일

(2020년 초에 쓴 글입니다.)


지금은 휴직으로 미국에 나와있다.


얼마 전인 20년 1월 말 이웃의 미국인 할머니께서 사과소스 만들어 캔에 넣는 것을 보여주시겠다며 초대하셨다. 영어가 약해서 하시는 말씀의 1/3쯤 알아들으며 놀다가 내가 말했다.


저는 외향적이지 않고요,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해요. 미국인 가정집에 와보는 것이 이번이 두 번째예요. 수업하는 데서 공개해준 에 한 번 가봤어요. 미국인 친구 사귀는 방법도 모르고요.


할머니께서 눈을 동그랗게 뜨시며 말씀하셨다.


미국인 친구 사귀는 방법을 아직 몰라? 호박전을 구워주면 되지!


둘이서 깔깔 웃었다. 난 이미 미국인 친구 사귀는 법을 알고 있다는 걸 나만 몰랐네!




19년 여름에 미국에 왔지만 바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연말이 되었다.


늦가을이 되자 늙은 호박전이 너무 먹고 싶었다. 근방에 유일한 한인 마트로 차를 몰아 늙은 호박을 샀다. 열심히 잘라 껍질 벗기고 채 썰기가 귀찮아 야채 다지기로 다져버렸다. 설탕과 밀가루를 넣어 달달하게 반죽했다. 식용유 자작히 둘러 겉은 바삭, 속은 달콤하게 익히고 나니 우리만 먹기 아까웠다.


어릴 때 기억이 떠올랐다. 어머니께서 음식을 하시면 그릇에 담아 옆집에 드리라며 심부름을 시키시곤 했다.


종이 접시를 꺼내 바닥에 들러붙지 않게 종이 포일을 깔고, 혼자 계신 듯했으니 부담되시지 않게 한 장만 담았다. 알루미늄 포일을 덮어 무작정 옆집으로 갔다. 개별 마당이 없는 단지형 주거지라 바로 옆이 현관이다. 벨을 누르고 가슴을 두근거리며 생각했다.


안 나오시 게 나을지도 몰라. 뭐라고 설명드리지?


인기척이 들리고 현관문이 열렸다. 약간 놀란 표정이셨다. 전에 길 가다 뵈었던 금발 단발머리의 키가 크지 않은 약간 몸집이 있으신 할머니셨다.


안녕하세요? 옆집 삽니다. 이름은 "산다"입니다. 한국 전통적 호박전을 했어요. 가을 되면 한 번 정도 해 먹어요. 그냥 드시면 됩니다. 시나몬 좋아하시면 뿌려 드세요.


감사하다 하셨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 우리 현관에는 봉투에 든 예쁜 땡큐카드가 종이테이프로 붙여져 있었다.


이후 가끔 마주치면 호박전이 너무 맛있었다고 폭풍 칭찬을 해주셨다. 댁에 놀러 왔다 가는 딸을 만났었는데 딸에게 "그 호박전" 해 준 사람이라고 소개를 하셨다.


작은 유리병에 야채수프를 2병 담아주셨다. 맛있었다고 말씀드리면서 캔에 음식 보관하는 것을 집에서 하신다니 신기하다 했었다. 사과소스 먹느냐, 만들어 보았냐 물으시더니 캐닝(canning, 음식을 캔에 보관하는 것)하는 것을 보여주시겠다 하셨다.


약속을 잡은 날 미국 sweet potato보다 달고 물기가 적은 한국 고구마를 오븐에 구워 들고 옆집으로 갔다.


같이 앉아 한 박스의 사과를 깎아 자르고 시판하는 레몬즙(레몬 사우어라고 하신 듯)을 넣어 끓였다. 색이 덜 변한다고 하셨다. 시간이 지나니 물러지고 그걸 푸드밀(음식 가는 도구)에 넣어 가셨다. 큰 금속 테의 안쪽에 적당한 크기의 구멍이 있는 판을 골라 넣고 그 위에 손으로 돌리는 손잡이가 있는 날개 같은 것을 고정시켰다. 삶은 사과를 넣어 손잡이를 돌리면 날개가 돌면서 아래로 사과가 갈려 나왔다. 나도 푸드밀 손잡이를 돌려보았다. 더 끓이면서 설탕과 시나몬 가루로 입맛에 맞게 간을 했다.


그동안 오븐에 가열해두거나 끓는 물에 소독하던 유리병을 꺼내어 만든 사과소스를 담았다. 캐닝용 뚜껑판을 병 위에 덮고 뚜껑판을 잠그는 금속테를 꽉 돌려 잠갔다가 살짝 풀어 살짝 잠갔다. 뚜껑판은 1회용이라고 하셨다. 아까웠다.


끓는 물에 세워 넣고 6분을 삶았다. 병 입구에서 거품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전용 집게로 건져 식혔다. 잘 된 것은 소리가 난다고 하셨다. 식으면서 공기 부피가 줄어드니 압력이 적어져 "뽕"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뚜껑이 옴폭해졌다.


남편이 음식 도전을 잘 않아서 미국 식당을 못 가봤다고 하니 다음엔 파머스마켓에 데려다주신다고 했다. 거기 식당이 좋다고 하면서.


치킨 수프 병 2개와 함께 무려 6병의 사과소스를 받았다. 이렇게 잘 퍼주시는 분을  generous라고 한다고 영어수업에서 들은 것 같다. 너무 감사했다.


사과소스는 맛있어서 빵에 찍어먹고 숟가락으로 그냥 퍼먹기도 한다. 주스보다 진하고 쨈보다 연하다.


그 후 사과 버터도 1병 주셨는데 버터가 든 게 아니라 조금 더 졸이신 거였다. 쨈이었다.(다음에 뵀을 때 버터가 든 줄 알았었다 했더니 재밌어하셨다)


어쩐지, 미국 마트서 파는 쨈처럼 생긴 것들이 이름이 젤리에다 맛도 없더라니. 과일 소스나 과일 버터가 한국의 쨈 같은 것이었다.


아는 만큼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사람 사는 모습은 다 똑같나 보다.

음식 나눠먹고 서로 인사건네면 알고 지내게 된다.


미국에서 사는데 아직도 미국 친구 사귈 줄 모른다면?

맛있는 거 해서 드려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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