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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다 Feb 19. 2020

네? 병원비가 9000불?

아, 집에서 버텼어야 했나?

(2020년 작성한 글입니다.)


<비자발적 미국 의료비 체험>


나: 병원비가 900불이 넘습니다. 깎아주셨으면 해서 왔습니다.


병원: 응? 저희 병원 청구서는 아직 못 받으셨나요? 주신 것은 검사비랑 의사진료비 청구서네요. 우리 것은 원래 9000불이 넘는데 보험 없다 해서 깎아서 3000불 좀 넘네요.


나: ???

      그러니까 300불로 깎아주신다는 말씀인가요?


900불(100만 원)이 넘는 청구서에 놀랐다. 우는 소릴 좀 해서 병원비를 깎아야겠다며 호기롭게 들어간 원무과에서 청구서가 왜 아직 안 갔는지 모르겠다며 낼 돈이 3500불 정도라고 했다.


영어가 약한 우리 부부는 300불로 알아듣고 '아이 좋아라'하고 있다가 "싸우전즈"를 알아듣고는 진짜로 우는 소릴 했다. 이번엔 연기가 아니었다.



얼마 전 아주 심하게 아랫배와 등이 아팠다. 평소의 생리통보다는 세고 산통보다는 약했다. 허리를 못 펴는 상황이었다. 자던 남편을 깨웠다.


구글맵에서 Urgent Care를 찾아갔다. 7시 55분. 8시 여는 곳이라 잠겨있었다. 문 흔드는 소리에 문이 열렸다. 의료진이 상황을 듣더니 말했다.


"열나거나 다친 것은 응급조치가 된다. 배 아픈 내과 증상은 영상기기가 없어 조치가 안된다. 그래도 진료해줄까? 연계해서 안내 가능하다. 하지만 여기 진료비도 내고 응급실 진료비도 내야 하니 더블이 된다. 어차피 사진 찍어야 할 테니 응급실 가야 할 것 같다."


돈을 두 배로 내긴 싫으니 우린 돌아서서 emergency를 검색해 달렸다.


이젠 걷기도 힘들었다. 허리를 숙이고 한 발씩 겨우 걷자니 간호사 한 분이 휠체어를 밀고 오셨다.


병실에 누워 옷을 갈아입었다. 한국인 있는 곳에서 근무하셨었다며 "어디가 아파요?"라고 한국말로 물어보셨다. 증상 설명 후 진통제를 투여받았다. 살 것 같았다. 매우 친절했다.


자궁외 임신이면 그럴 수 있다며 한사코 소변검사를 주장했다. 나는 그럴 가능성이 0인 상태였다. 아무리 말해도 통하지 않았다. 식염수 링거를 맞아가며 소변 검사를 하고 나자 CAT scan을 해야겠다고 했다. CT를 말하는 것이었다.


진통제가 듣기 시작하니 남편과 농을 주고받았다. 사진 찍었으니 돈 많이 나오겠네. 여행자 보험에서 커버해 주시겠지?


무려 세 시간에 걸친 두 가지 검사 끝의 진단은 알 수 없다 였다. 증상은 교과서에 나올 법한 신장결석인데 CT에 찍힌 것이 없다고 했다. 물을 많이 마시라며 고농도 진통제만 처방해 주었다. 800mg Advil. 심지어 먹어보고 안 아프면 안 먹어도 된다고 했다. 2주 뒤에 청구서가 올 거라며 100불 디파짓(미리 내는 돈) 하라 해서 내고 집으로 왔다.


심하게 아프기 며칠 전 조금 아파서 남편이 아는 한국에서 유학 오신 의사 선생님께 증상을 물어보았었다. 우리가 무신경하게 그 후 연락을 안 드렸는데 감사하게도 그분께서 안부를 물어주셨다. 아무 진단명도 없이 물 많이 마시라고 하더라고 전해드렸다.


"그거 그냥 많이가 아니에요. 한 2리터씩 드셔야 해요. 의식적으로 평소 드시던 물에 한 컵씩 더 드신다고 생각하세요."


평소 물을 거의 안 마시는 나에게 청천벽력이었다. 한 이틀 물통을 들고 다니며 물을 억지로 마셨다.


아픔은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2주가 지났다. 병원비가 궁금해서 수시로 우편함을 확인했다.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드디어 왔네. 어? 임상 검사비랑 진료비가 따로네? 검사비야 24불. 낼 만 하네. 진료비가 900불이 넘어. 이미 100불이나 냈는데."


임상 검사비 청구서(소변, 피 등 검사비)
의사 진료비 청구서


우리는 진단명도 없이 3시간 누워있다 진통제만 처방받았으니 보험 청구가 힘들겠다 판단했다. 미국은 병원비를 깎을 수 있다던 말을 들은 기억이 나 청구서를 챙겼다.


영어 수업하시는 선생님께 혹시나 싶어 여쭤봤다. 현재 상황을 설명하고 900불을 500불로 깎을 거면 300불 있다고 해보라는 팁을 들었다.


그래, 현지인에게 물어야지!

아, 우리 똑똑하다!

배고프니 빨리 해치우고 밥 먹자!


의기양양하게 병원으로 갔다. 응급실에 가니 오피스(병원 본관 원무과 같은 곳)로 가라고 했다. 친절히 맞아주셨다.


진단명이 없어 보험청구가 안될 것 같다는 설명에 담당자는 의사에게 컴플레인하는 것은 본인 소관이 아니라고 했다. 우리는 컴플레인하려는 것이 아니라 병원비가 많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청구서를 꺼내보라 해서 앞서의 종이 두 장을 내미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 병원 청구서는 안 받았나요?"


'무슨 청구서? 900불이 넘는 이거, 100만 원도 넘는 이게 응급실 의료비 아닌가?' 하던 찰나 컴퓨터 자판 소리가 들렸다.


"음. You need to pay three thousands ~~~."


남편과 바쁘게 눈빛 교환을 했다.


'3은 확실하고 300불이란 소리겠지? 깎아준다는 말인가 봐?'


담당자는 종이를 출력해주며 말했다.


"당신들이 들고 있는 것은 검사비와 의사의 청구서입니다. 병원 청구서는 왜 도착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출력했으니 보세요."


출력해준 병원 응급실 청구서

억!

'정 안 깎아주면 할 수 없으니 100만 원은 내야지, 뭐' 하던 우리는 사색이 되었다.


원래 가격이 9393불. 5000 넘게 깎아줘서 3470불 정도 내야 한다고 되어있었다. 앞서의 임상 검사비, 의사진료비까지 합치면 거의 430만 원이었다. 너무 큰 금액이었다.


이젠 정말 심각하게 돈이 없다고 설명을 시작했다. 담당자도 1000불이 많다고 온 사람들이 3500불 가까이 내야 한다는 말을 듣고 혼란에 빠진 것을 이해했다. 어떤 서류를 보여주며 편지로 청구서와 이 서류를 보낼 테니 증빙서류가 준비되면 자기에게 다시 오라고 했다.


이것저것 물어보며  서류에 체크를 하더니 나중에 실제 서류 작성할 때 쓰도록 그 서류를 복사하여 명함과 함께 주었다. 매우 친절했지만 실제 얼마나 깎일지는 모르는 노릇이었다. 의사진료비를 깎으려면 청구서에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해야 할 거라며 병원에서 처리할 수 없다고 했다.


어쩌다 끼니를 거른 상태였지만 병원을 나온 우리 부부는 입맛이 통 없었다. 심각하게 아프면 비행기 값 들여 한국 가는 것이 낫다던 말이 실감 났다. 아는 지인은 비용이 무서워 한국 들어가서 출산하기도 했는데 청구서를 보니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미국 응급실 경험 후 느낀 점>


병원비 깎기는 이제 시작이라 결과는 알 수 없으나 세 가지는 확실했다.


1. 한국 응급실 근무하시는 모든 분들의 근무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 미국 응급실은 모든 침대가 방마다 따로 있었다. 간호사 수도 많고 안락하니 좋았다. 친절한 이유도 여유가 있기 때문 아니겠는가.


2. 근무 여건 개선은 돈과 빼고서 생각할 수 없는 문제다. 따라서 한국 병원비가 현실적인가 생각해보아야 한다. 대부분 의료보험이 적용되어 환자 부담금이 적고 그게 확실히 병원 문턱을 낮추게 된다. 굳이 병원을 가지 않아도 때가 되면 낫게 되는 감기 같은 증상으로 쉽게 병원을 가게 되니 의사도 하루에 진료할 환자가 넘쳐나고 진료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병원비가 모두 무료인 것이 삶의 질을 높이겠지만 조금만 아파도 병원을 가는 문화는 어떤 면에서 의료질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될 것 같다. 응급실에서조차 환자의 말을 인내심 있게 들어주던 진료 경험은 매우 감동적이었다. 


3. 미국에서 아프면 안 된다. 미국인들이 운동을 열심히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은 날이었다. 많은 미국인들이 "의료보험 적용받으려고 내가 이 나이에도 일하잖아."라고 말했던 것도 이해가 되었다. 병원 간호사도, 마트 캐셔도 그렇게 말했었다. 가족 병원비 때문에 홈리스 되는 사람들이 많다더니. 아들 말마따나 이제 아프면 한국 들어가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미국 병원비가 두려워졌다.


남은 기간에 병원 갈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한국 의료비에 대한 의견>


위 2번 의견에 대해 조금 더 써보고 싶다.


의료비를 올려 사소한 증상으로 병원 쇼핑을 다니는 사람을 줄이고 병원 환경 개선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은 하지만 이는 의료 사각지대를 키울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의료비를 공짜로 하면 국민은 치료를 잘 받겠지만, 의료보험비와 세금을 많이 내는 것에 모든 국민이 동의해야 할 것이다. 그런 돈은 아깝고 병원서비스를 비롯한 모든 복지를 무상으로 받고자 하는 것은 모순된 태도이다. 그 누구도 무료봉사로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이니까.


저소득층과 차상위계층의 의료비만 지원하면 법의 구멍을 이용해 충분히 경제적 능력이 되는 사람들도 지원을 받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는 이제까지 각종 복지혜택이 주변 부자들에게 가는 것을 본 많은 국민들이 인정할 것이다.


따라서 지금처럼 의료비를 국가가 많이 지원하는 것이 제일 좋아 보인다. 대신 건강보험료에 대한 투명한 지원과 경영을 통해 병원 환경과 의료인 대우 향상에 힘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요하다면 건강보험료와 세금을 올려야 할 것이다.


의료비 먹튀 논란이 있는 여러 가지 사안의 경우 일정 기간 이상 혹은 일정 금액 이상의 건강의료보험 납부를 선제 조건으로 의료비 지원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국민들의 의료보험비 부담이 너무 커질 것이다.


또한 의료비 지원은 감기 등의 상대적으로 가벼운 질병 대신 의료비가 많이 들고 심각한 질병에 더 지원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검사는 의사의 의견에 더 비중을 두어 진행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사소한 증상에도 과다한 진료를 원하는 환자를 줄여 국가가 감당하는 의료비를 줄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쓰다 보니 국가 정책을 결정하시는 분들의 노고를 짐작도 못하겠다. 고작 의료비 한 가지 사안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하나를 생각하면 다른 문제가 떠오르고, 그걸 고쳐보려니 또 다른 문제가 생각난다. 대체 이 어려운 일을 어떻게들 처리하시나.


공무원, 국회의원 욕들 많이 하지만 우리나라가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 사명감과 전문성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시는 분들이 더 많을 것임을 믿을 수밖에 없다.




제가 의료에 대해 무지하다 보니 이상한 의견이 적혀 있기도 합니다.

댓글에 다른 분들의 고견이 적혀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고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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