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살다 Mar 27. 2020

개를 어디에 눕히시려고요?

눈치는 타고 나는 듯하다.

(2020년 작성한 글입니다.)


"안녕하세요?"

이웃 미국인 할머니께서 안부인사차 오셔서 한국말로 인사하셨다.


요즘 나에게 한국 인사말을 배우셨다. 언젠가 한국 여행을 가면 예의 바른 여행객이 되고 싶다 하셔서 "안녕하세요, 안녕히 계세요, 안녕히 가세요, 감사합니다"를 가르쳐 드렸다. 연세가 있으셔서인지, 내가 요령이 없는지 천천히 익히고 계신다. 


안부 인사가 오간 뒤 약간 어두운 표정으로 할머니 아들이 기르던(가끔 이웃집에 와있던) 반려견 스모키에 대해 말씀하셨다.


"(We need to) Take him down."


'? 개를 어디다 눕히신단 말씀이지?'

내 표정을 살피시더니 다시 말씀하셨다.


"(We need to) Let him sleep."


'당뇨 있다더니 병원에서 좀 재워야 하나?'

할머니 얼굴에 낭패의 표정이 스쳐갔다.
옆에 서있던 아들이 옆구리를 찔렀다.


 "안락사라고요."

'아, 어쩌나. 이럴 땐 뭐라 위로하더라?'

할머니께 아들은 어머니 적적하실까 봐 늘 가족사진을 보내곤 했었다. 여행을 가거나 하면 할머니께 이 개를 맡겼고 할머니는 개와 재밌는 사진을 찍어 아들에게 보내곤 하셨다.

요리하는 스모키, 책 읽어주는 스모키, 소꿉장난하는 스모키...


"I'm so sorry" 했더니 눈시울이 붉어지셨다. 저번에 보니 에너지가 낮아 보였어요. 손자들이 많이 울겠네요.

내 영어실력의 한계였다.


아들이 집으로 들어가며 한 마디 했다.


"엄마는 국어책 많이 읽어서 어휘가 좋다고 저보고 책 읽으라 하시더니, 어째 안락사를 못 알아들으세요?"


"영어잖니. 나야 죽는다는 거에 대해 die, pass away 두 개만 아니까 그렇지. 개가 어디 입원하는 줄 알았어. 넌 어떻게 알았어? 안락사라는 단어를 말씀하셨어?"


"쉬운 단어만 쓰시던데요? 그리고 개를 안락사시킨다는데 죽이러 간다 해요? 한국말로도 눕힌다, 재운다 하겠죠."


눈치도 없는 게 사람이냐더니 참 큰일이다. 어릴 때부터 눈치가 없는 편이었다. 농담도 잘 못 알아듣는 편이었다. 나이 먹으면 눈치는 자연스레 느는 줄 알았는데 나이를 먹어도 안 느는구나.


다행히 아들은 눈치가 빠르다. 날 닮지 않아 너무 다행스럽다. 다른 사람들에게 의도치 않은 당황스러움을 선사하지 않겠구나.


눈치는 타고나는가 보다.

작가의 이전글 과학 교사라면 실험이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