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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다 Mar 24. 2020

과학 교사라면 실험이지.

실험 실력은 할수록 는다.

과학 교사(중학교 과학, 고등학교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라면 첫 발령 약 3년간은 실험 수업과 과학 동아리 활동을 의도적으로 열심히 하는 것을 추천한다. 실험 실력은 할수록 늘기 때문이다. 화학 교사라면 추천이 아니라 필수라고 말하고 싶다. 타 교과에 비해 안전 문제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발령받으면 학교 적응만으로도 정신이 없는데 실험 수업을 많이 해보아야 하는 이유


첫째, 써본 실험 기구와 시약, 실험 재료는 확실히 두려움이 적다. 실험을 많이 할수록 실력이 는다. 학부 실험 시간에 실험을 주도적으로 한 교사와 실험 보고서만 열심히 써냈던 교사는 실험에 대한 경험이 다르다. 실험 논문으로 석박사를 하신 과학 교사를 보면 실험에 대한 부담을 확실히 적게 느낀다. 학부 실험에 비하면 실험 기구, 시약, 실험 재료를 훨씬 다양하게 자주 다루었기 때문에 익숙해진다. 황산을 이론으로 알고 있는 교사와 실험실에서 여러 번 다루어 본 교사는 황산을 다루는 실력이 다를 수밖에 없다. 네이버 웹툰 베스트 도전의 "대학원 탈출일지-12화 실험"편을 보면 더욱 와닿을 것이다. 물론 모두 석박사를, 그것도 실험으로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둘째, 같은 실험 수업을 여러 번 하면 돌발 상황 대처 능력이 높아진다. 혼자 하는 실험과 실험 수업은 다르다. 실험 기구와 재료 준비, 실험 후 뒤처리까지 모두 8~10배로 늘어난다. 학생들의 미숙함으로 인한 실수를 가만하면 거의 13배로 늘어난다. 특히 실험 후 뒤처리 시간을 가만하지 않으면 실험실을 연달아 쓰게 될 때 뒷반 실험을 진행할 수 없게 된다. 혼자 할 때는 상상하지 않았던 일들이 수시로 생기는데 이 또한 여러 번 해보면 웬만한 상황은 예측 및 대처 가능하다. 대표적인 사례를 들자면 금속 나트륨 실험에서 아무리 신경 써도 첫 실험 수업 후 쓰레기통에서 불이 난다. 실험 후 남은 작은 조각을 화장지 등으로 닦아서 쓰레기통에 버리면 공기 중의 수분과 반응하여 결국 불이 나기 때문이다. 실제 해보지 않으면 예측하기 힘든 일이다.


셋째, 정규 수업 외 실험 지도 경험은 역량을 더 높일 수 있다. 학생들은 실험을 통해 과학에 대한 흥미를 강하게 느끼기 마련이다. 교과서의 실험은 되도록 체험할 수 있게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위험을 이유로 많은 실험이 점점 교과서에서 사라지고 있다(물론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과학을 좋아하는 학생들은 동아리를 만들어 실험하고 싶어 한다. 교과서에서 다루지 않는 실험이나 심화 실험을 교사가 같이 준비하다 보면 실험 지도 역량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자료를 찾는 일부터 안전 점검과 직접적인 실험 역량이 향상된다.


넷째, 과학 교사가 실험 지도를 평생 피하기는 어렵다. 사립학교 교사라면 행정 능력이나 학생 지도 능력이 뛰어나 각종 과학 교사 특유의 업무에서 지속적으로 빠지는 운 좋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공립학교 교사는 학교를 옮기기 때문에 업무가 계속 바뀌게 마련이다. 과학의 달 행사 준비, 과학 동아리 지도, 영재학급 과학수업, 과학 대회 지도 등 타 교과 교사에겐 없는 일을 맡게 된다. 학교에 따라 업무 분장에 적혀있지 않은 경우도 있는 순전 과 외의 업무이다. 특히 실험을 해야 하는 경우 그 부담은 현저히 높아진다. 실험에 대해 자신이 없다면 이는 재앙 수준으로 느껴질 것이다. 타 교과에서는 그 어려움을 전혀 알아주지 않는다.


다섯째, 체력이 될 때 실력을 쌓아야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체력은 떨어진다.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실험 수업은 실험 재구성, 예비 실험, 실험 재료 및 도구 수량 확인, 실험 재료 구입, 추가 예비실험, 실험 준비 및 보고서 출력, 수업, 뒷마무리, 평가 및 기록까지 해야 하므로 많은 시간과 체력이 요구된다. 교사로서의 역량이 늘어남에 따라 학교에서 맡는 업무도 점점 늘어날 확률이 높고, 결혼하면 시간과 체력은 더 부족하다. 그러니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실험 수업 능력을 키워 놓아야 한다.


여섯째, 과학 교사로서 실험 관련 활동을 실력이 되지 않아 못하는 것과 업무 과중으로 못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다. 과학 교사는 일반 수업 능력과 행정 능력만으로는 부족함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갑자기 진로가 과학고(혹은 과학기술원)라며 동아리나 다양한 과학 활동에 대한 요구를 하는 경우도 있다. 외부에서 컨설팅을 받아 자기소개서를 작성해 왔는데 이상한 실험과 결과가 적혀 있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학생이 그 실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과학 관련 학과 진학을 해야 하니 과학 자율동아리 지도를 해달라고 하기도 한다. 과학 관련 대회에 나간다며 논문 수준의 실험을 찾아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실험 실력이 있는 교사는 이에 대처하기가 한결 수월하다. 과학 교사로서 "난 그 활동은 모르겠으니 돕지 못하겠다"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으며 공교육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일이 될 것이다.




과연 이런 글을 쓸 만큼 실험 수업 능력이 뛰어나냐고 물으면 당연히 부끄럽다. 전국에 많은 능력 있고 실천하는 과학 교사들이 활동하고 계신다. 이 분들의 실험 노하우를 블로그 등을 통해 검색하여 따라 할 수 있는 것만 따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신과람(신나는 과학을 하는 사람들) 및 소속 교사들의 블로그나 유튜브, 다음 포털 카페의 "재미있는 과학수업 만들기"만 보아도 엄청난 노하우들을 찾을 수 있다.


글을 쓴 이유는 열심히 실험 수업을 하시는 과학 교사도 계신 반면, 늘 이론 수업만으로 넘기는 과학 교사도 계시기 때문이다. 주변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당연히 실험실에 가 봤지요"하는 경우도 있지만, "실험실 어디 있는지도 몰라요. 실험 않으시던데요"하는 경우도 있다. 실험 수업은 안 해보면 점점 더 어렵고 하기 싫기 마련이다. 신규 과학 교사들이 미리 실력을 쌓아 실험 지도를 도저히 피하기 어려울 때 안전사고 없이 잘 수행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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