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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다 Mar 22. 2020

생명엔 관심과 무관심이 다 필요한 법

놀란 어미새

(2020년 작성한 글입니다.)


파다다닥 파다다닥 파다다닥

뼉! 뼉! 뼉! 뼉!

엄마야!


지금 사는 곳의 베란다는 개방형이라 외부벽이 없다. 베란다에서 남편과 이불을 털려고 한 번 탁 치는 순간, 웬 새가 정신없이 울면서 푸드덕거렸다. 지붕 밑을 나가지 않고 한참을 그러다 내 등 뒤쪽을 지나 베란다를 나갔다.


여보! 내 등 좀 봐줘요. 새똥 있어요? 무슨 느낌이 있었는데?

어, 진짜 쌌네. 이게 무슨 일이죠? 깜짝 놀랐어요.




다음날 아들이 우연히 창밖으로 베란다를 내다보다가 외쳤다.


엄마, 새가 둥지에 앉아있어요! 우리 베란다에 둥지를 틀었네?


전날 의도치 않게 우리가 놀라게 한 어미새


깜짝 놀랐다. 어제 그 새는 알을 품고 있던 어미새였던 모양이었다. 얼마나 놀랬을까? 게다가 이 덩치 큰 동물 둘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버티고 있었으니. 둥지를 벗어나기가 망설여져서 그렇게나 계속 퍼덕이다가 도망갔던 모양이었다. 어찌나 미안하던지. 베란다 구석 기둥 위에 둥지가 있었고 그 위에 작은 비둘기만 한 새가 앉아있었다.


너무 신기해서 아들이 베란다에 나가서 사진을 찍겠다고 했다. 아무래도 놀랄까 봐 가까이 가는 것을 극구 말렸다. 멀리서나마 새를 찍었는데 매우 아름다웠다. 혹시나 먹이를 먹으러 간다면 알이 있나 사진 한 번 찍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둥지 주변이 너무 위협적이면 알을 버리고 가기도 한다기에 걱정이 많이 되었지만 해가 질 때까지 둥지에 잘 앉아있었다.


저녁이 되어 갑자기 아들이 창 밖으로 새 한 마리가 날아갔다며 그 새가 날아간 것 같다고 했다. 우리는 베란다에서 빈 둥지를 찍어보려고 재빨리 의자를 가져와서 사진을 한 장 찍고 다시 들어왔다. 더 이상은 가까이 가지도 말고 베란다에 자주 나가지도 말자고 했다. 위협을 느껴 알을 포기하고 가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이 지역의 유난히 긴 소나무 잎으로 만든 아늑한 둥지 안에 작고 푸르스름한 예쁜 알 2개가 있었다.



오후 12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둥지는 비어있다. 벌써 4시간은 넘게 비어있는 것 같다. 비도 와서 날씨도 차가워졌다. 우리 집 주변에는 매(잘은 몰라도 맹금류)도 살도 있는 것 같았는데 걱정이다. 만일 우리가 놀라게 해서 가버린 것이면 미안해서 어쩌나? 혹시 무슨 일이 생겨서 못 온다면 알은 어떻게 해야 하나? 평소 베란다를 쳐다도 보지 않던 우리는 저녁 내내 창문 밖을 확인하곤 했다.


새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 만일 정말 어미새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 작은 알 2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호기심을 못 이겨 뭔가 잘못을 저지른 것 같아 미안한 저녁이다. 한참 예민할 어미새를 무관심으로 놀라게 하고, 관심으로 쫓아낸 것 같다. 생명을 살피는 데는 관심과 무관심이 다 필요하다는 것을 배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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