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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다 Jun 06. 2020

가정형편조사 꼭 해야 하나요?

교사에 대한 이중 잣대

(2020년 6월에 쓴 글입니다.)


오늘 다음에 뜬 뉴스를 보고 답답하고 참담하여 글을 쓴다.


뉴스: https://imnews.imbc.com/replay/2020/nwdesk/article/5799948_32524.html


뉴스에 따르면 어느 학교에서 교사들이 임의로 만들어 돌린 "학생기초자료 조사서"에서 부모 생존 여부, 직업, 경제적 형편, 부모의 이혼 여부, 집안의 문제 등을 물어보았다고 한다. 학생 인권이 침해될 수 있는 과도한 개인 정보 수집이었고, 부모 이혼이나 별거 등을 묻는 것은 해당 가정이 마치 비정상이라는 식으로 해석될 수 있어 비교육적이라는 비판이 있다고 한다.


이 뉴스에 대한 최상위 답글이 다음과 같았다.


"호구조사 이게 선생들이

학생들 색안경 끼고 보게 만드는 원인,

폐지해야 한다."


참담하다.




교사에 대한 불신은 왜 이렇게 높은가. 나도 학교를 다니면서 돈 많은 집 애만 챙겨주는 담임을 만나보았다. 당연히 억울하고 화가 난다. 하지만 세상은 바뀌었다. 심지어 옛날에도 학생들을 위해주는 교사가 더 많았다. 왜 아직도 교사들이 차별을 할 것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런 주관적인 이야기 말고 객관적인 상황을 살펴보자.


우리나라에서 학교, 담임교사에게 요구하는 일들은 무엇인가? 평소에는 학생을 교과 교육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본다. 그러나 학생에게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에는 그 잣대가 달라진다. 아동폭력이나 성관련 피해를 입었을 때 그것을 담임교사가 모르고 있었다면 엄청난 지탄의 대상이 될 것이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수학여행을 불참하는 학생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데려가지 않는다면 그것도 욕먹을 일이다. 어머니가 이혼으로 연락을 하지 않지만 그것을 모르고 위급 상황에 어머니께 전화를 하면 그것도 파악을 못했냐고 할 것이다. 가정형편이 정말 어려운데 장학금을 형편이 괜찮은 학생에게 주면 성적만으로 차별하냐고 할 것이다.


쉽게 말하면 높은 행정능력, 교과교육능력 못지않게 전통적인 어머니상을 요구하고 있다. 학생 보호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정보는 어떻게 얻게 되는가? 상담을 통해서 할 수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야기한다. 자신의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라. 친구에게도 쉽게 말하지 못한 비밀을 교사에게 쉽게 털어놓을 수 있었던가? 심지어 부모들은 학생들에게 가정의 문제를 숨기는 경우도 많다.


현실적으로 생각하자. 쉬는 시간은 겨우 10분 정도이고, 옛날처럼 아침 자습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를 활용해야 한다(점심시간에도 학생들 간 다툼 등이 일어나고 급식 지도해야 한다는 것, 방과 후 학원 가기 바쁜 학생들의 일상은 일단 무시하자). 처음 보는 교사와 레포를 형성하고 깊이 있는 상담을 하려면 학생 한 명당 적어도 30분에서 1시간이 걸린다. 학급에 30명이 있으면 한 달 반을 상담에 써야 한다. 


학생 지도에 대한 어려움은 할 말이 너무 많으니 업무 한 가지만 고려해보자.


3월에서 5월은 장학금 공문이 쏟아지는 달이다. 뉴스 답글을 보니 장학금은 성적순으로 주는 거 아니냐며 왜 가정형편을 알아야 하느냐고 일갈했다. 장학금의 종류를 모르니 할 수 있는 말이다. 장학금 대상은 지금 얼핏 생각나는 것만 다음과 같다. 가족 중 교통사고를 당한 가정의 학생, 성적과 관계없이 형편이 어려운 학생, 독립유공자 가정의 학생, 공부 외 재능이 있는 학생, 성적이 중상 정도지만 앞으로 어떻게 공부하겠다는 구체적 계획이 있고 그를 지도할 교사와 매칭 되어 있는 학생, 다문화 가정의 학생, 탈북 가정의 학생, 가정이 어렵지만 성적이 좋은 학생, 형편과 관계없이 성적이 높은 학생 등.


대부분의 장학금에는 조건이 있다. 다른 장학금을 받은 적이 있는 학생은 제외. 한 학년에 00명. 혹은 한 학교에 00명. 복잡하기 때문에 모든 학교에는 장학금을 정규 업무로 교사에게 배정한다.


답글을 단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업무 담당교사라면 이 모든 장학금을 어떻게 추천할 것인가?


그냥 성적순으로 주라고? 장학금마다 기준이 다른데 어떻게 그게 가능하겠는가. 이혼 가정임에도 여유로운 가정에는 연락을 하면 장학금을 사양한다. 더 어려운 가정에 주라고 한다. 학생은 자신의 가정이 여유롭다고 생각하지만 부모는 간절히 지원을 받고 싶어 하는 가정도 있다. 어떤 장학금은 그 가정의 어려움을 구구절절이 쓴 교사 추천서를 요구한다.


장학금이 내려올 때마다 누가 조건에 맞는지 알기 위해 모든 학생을 개별적으로 불러서 상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교사가 되어서 그걸 다 파악을 못하고 있냐고? 내가 묻고 싶다. 답글을 단 사람들은 학생 30명의 그런 정보를 어떻게 3월 초에 다 파악할 수 있나?


담임 입장에서는 A학생이 너무 형편이 어렵지만 모범생인데 성적이 낮다. 거기 맞는 장학금이 올 때 추천하고 싶다. B학생은 형편이 어렵지만 이번 장학금은 1회성 30만 원인데 다음번 장학금은 2회 50만 원씩이다. 다음번 장학금을 추천하기로 결정한다. 한 학교에 정해진 인원이 있으므로 업무 담당자가 장학금 추천 위원회를 소집하여 정말 지원해야 할 학생을 선택해야 하고, 중복되지 않게 조율해야 한다.


교사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은 지금쯤 "그런 개인 정보를 공유하다니! 너무 한 것 아니오!" 할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교사라는 직업은 공무원들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높은 도덕성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직업군에 속한다. 학생들의 그런 가정사를 여기저기 떠벌리거나 학생들에게 노출할 정도로 한심하지 않다. 되도록 정말 도움이 필요한 학생에게 도움을 주고자 할 뿐이다.


가정형편조사서 양식은 교사들이 만들어 쓰다가 더 좋은 것을 발견하면 공유한다. 학생들에 대해 파악하라는 공문은 갈수록 종류가 많아지고 가정형편조사서 양식은 갈수록 꼼꼼해지고 있다. 개인정보에 대한 접근성과 정보 취득에 대한 비난과 함께 교사의 학생에 대한 책임도 같이 커지고 있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까? 아마 이런 비난의 글을 볼 때마다 많은 교사들이 속으로 외칠 것이다.


"우리도 그런 정보 하나도 모르고 딱 수업만 하라고 하면 업무는 줄어들 것이다. 대신 학생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비난과 책임도 같이 없애달라. 학생들을 사랑으로 키워내는 것이 좋아 이 직업을 선택했지만 그렇게 믿지 못한다면 우리도 어쩔 수 없다."



매년 2월 말이 되면 교무실의 문서 분쇄기가 하루가 멀다 하고 쓰레기를 비우라는 알람이 울린다. 담임교사들이 맡았던 반의 가정형편조사서(혹은 "저를 소개합니다")와 검수를 위해 뽑았던 학생생활기록부를 파쇄하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매년 비슷한 양식의 가정형편조사서가 가정에 가는 이유이다. 대부분이 학생들의 개인 정보를 다음 학년 교사에게 계하지 않는다. 정말 도움이 필요한 학생은 전 담임교사가 새 담임교사에게 구두로 알려주기도 한다. 매년 학생들의 상황은 달라지기에 가정형편조사서는 3월 초마다 각 가정에 도착한다. 이때가 가장 가정통신문이 잘 전달되고 회수되는 기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정형편조사서는 조금만 생각이 있는 교사라면 교사가 직접 걷는다. 회수 과정에서 다른 학생들이 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제발 색안경을 끼지 마시라. "요즘 세상에 이혼이 무슨 대수인가"라고 말하면서 왜 교사가 학생 부모의 이혼 여부를 알면 학생을 차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가정 형편을 왜 교사가 알아야 하느냐"라고 날 선 말을 하는가. 차별이 아니라 오히려 수업 중, 혹은 상담할 때 상처를 주지 않을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사가 학생 부모의 이혼 여부를, 학생 가정의 형편을 아는 것이 대수다. 가정형편과 관계없이 고민이 많은 학생도 있다. 조사서에는 그런 것을 쓰는 난도 있다. 번호 순이 아니라 상담이 시급한 학생을 발견하는데 쓰기도 한다. 그 종이를 받고 이런 정보까지 필요한가 싶거나, 담임교사가 종이를 걷을 때 실수하여 정보를 누설할 것 같으면 전화나 메시지를 보내 교사의 주의를 상기시켜주는 것이 좋겠다.


물론 그런 배경지식 전혀 없이 새로 만나서 1년 동안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 교사들도 가장 좋다. 나도 그 방법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매일 아침 지각하는 학생을 지속적으로 지도한 끝에 한 달쯤 뒤에야 이 학생이 위가 좋지 않고, 부모님 출근 뒤에 혼자 챙겨 나오기에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늘 생글거리고 친구 좋아하던 학생이 수학여행을 가지 않는 이유가 경제적 상황 때문임을 수학여행비 지원 추천 기간이 끝난 뒤에야 파악하게 될 것이다. 늘 강하게 보이던 학생이 부모님이 계시지 않아 아르바이트하는 오빠와 단칸방 월세에서 고생하는 줄 연말 즈음에야 알고 놀라게 될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한다. 교사들은 그런 정보를 아무렇게나 취급하지 않는다. 사리사욕을 위해 쓰지도 않는다. 단지 학생들과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사람으로서 상처 주지 않고 도움을 주기 위해 개인 정보를 필요로 할 뿐이다. 이런 개인 정보를 필요로 하는 일 자체가 줄어들기를 간절히 원한다.



"내가 꿈꾸는 그곳" 작가님의 댓글을 읽다보니 생각이 많이 부족했었다 싶다.


개인정보보호법으로 인하여 "저를 소개합니다" 같은 양식에는 간단한 정보만 쓰게 되어있다. 자세한 사항은 상담으로 알아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뉴스에 나온 양식은 과도한 정보를 요구한 것이 사실이다.


교사에게 과도한 정보를 알아야 할 수 있는 일까지 책임지우는 것을 금지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정보보호를 외치면서 그 정보를 몰랐다고 교사 자질이 없다고 하면 안된다. 상담만으로 모든 것을 알기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부분이 있다(학생의 특성, 발달과정 특성 등).


모든 학생의 특성이 다르므로 다르게 지도해야 한다는 것은 자녀가 둘 이상인 대부분의 부모들이 알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게 지도하면 차별했다는 비판을 듣는다.


교사들도 바뀐 시대에 맞게 대처해야할 필요가 있다. 지나친 관심은 독이 되는 경우가 있다. 적당히 현실과 타협할 줄 알아야 하는데 내가 너무 이상적으로 살고있었나 보다.


외국처럼 상담교사와 담임교사의 업무를 분리시킬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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