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림골, 정상
택시는 점점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봉우리로 올라가고 있으니 당연하겠지만, 아득해 보이던 장엄한 경관이 무서운 속도로 눈앞으로 가까워져 온다. 택시가 빨리 달리다 보니 그것들이 가까워지는 속도가 더 극적으로 체감된다. 더 높이 올라갈수록 직경이 좁아지는 탓에 확대되는 속도도 빨라진다.
새삼스럽지만 말 그대로 ‘똑같아서’ 신기하다. 멀리서 보이던 산과 나무가 그 모습 그대로 크게 확대되어 눈앞에 있다는 것. 우습게도 그 사실이 생경하게 느껴진다. 산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나는 탐방을 시작하기도 전에 그 아름다운 모습에 마음을 한껏 사로잡힌다. 아주 몰입도가 높은 영화를 볼 때처럼 지루한 줄 모르고 빠져든다.
기사님은 내가 심심할 것 같았는지 계속해서 말을 걸어주신다. 여름에는 야생화가 많이 피니 유월엔 곰배골에 가봐라, 친구들과 함께 공룡능선은 한 번쯤 꼭 가보라 말씀하신다. 혼자 가도 좋지 않겠냐는 내 말에 기사님은 손을 휘저으며 얼굴을 찌푸리신다.
“왜 혼자 가면 안 되나요?”
“산은 혼자 가면 감감하다.”
“감감한 게 뭡니까?”
“재미가 없어.”
“아~”
이제 보니 병풍과 같은 옛 그림에서 산에 있는 나무들을 마치 꽃이 핀 듯 구름 모양으로 표현한 까닭을 알겠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렇게 생겼기 때문이다. 산에는 활짝 핀 꽃처럼 또는 부채처럼 둥글고 넓은 덩어리 모양을 한 나무들이 정말 자란다. 가을 단풍이 든다면 그림과 더 비슷해질 것 같다.
‘이거 꽤나 과학적인 그림이었잖아.’
나는 이런 자연을 보면 옛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 사람들도 나처럼 이렇게 경탄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긴 세월 동안 자리를 지키는 자연의 위대함과 그에 비교되는 인간사의 허무함에서 비롯된 것이려나. 아무리 과학 기술이 발달해도 여전히 경이로운 자연의 신비 때문이려나.
빠르게 지나가는 도로와 나무 하나하나와 달리 멀리 있는 산만큼은 유유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흘러가는 물 가운데 섬처럼. 아무리 빨리 달려도 한참을 가야 그제야 조금 멀어지는 모습은 보는 이에게 마치 속도감을 초월해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아무리 움직여도 산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은 그게 얼마나 거대한지 실감하게 해 경외감을 더해준다.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 속에서 혼자 고고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자연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눈앞에서 목격하는 듯하다.
가늠할 수 없는 세월 동안 엄청난 무게감으로 중심을 잡고 서 있었을 산은,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그 무게를 전해주며 흔들리지 않게 잡아줄 것만 같다. 그 역시도 사람들이 산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리라.
모두 다른 개성을 가진 화가가 각자 그린 그림. 설악의 산은 그런 모습이다. 도구뿐만 아니라 그의 성격과 기개에 따라 그림체가 모두 다르다. 마치 지문처럼 고유한 특징과 시선을 담고 있다. 어떤 산은 굵은 붓에 먹물을 듬뿍 묻혀 일필휘지로 완만하게 윤곽선을 그린 후, 남은 먹으로 툭툭 거침없이 찍는 도중 물감이 튄 것이 나무가 된 듯하다.
그런가 하면 그 옆의 산은 좀 더 모량이 적고 끝이 날카로운 붓으로 얇은 선을 촘촘히 반복해 직각에 가까운 능선을 만든 후, 가벼운 손놀림으로 수많은 ‘1’을 그어 좀 더 세심하게 여백을 채워 나간 것 같다. 테두리를 그리지 않고 그저 아주 작은 점을 찍어 형태를 만든 듯 테두리가 희미한 온통 하얀 산도 있다.
그 작품들 사이에는 만 가지 모습을 가진 만물상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름만큼 그 위용이 실로 대단하다. 날이 좋을 때는 하얗게 덮인 눈에 햇빛이 반사되어 맑고 푸른색을 띠는 게 마치 거대한 빙산 같기도 하다. 암석 주변으로 굽이치며 흐르는 능선은 육중한 부피의 돌을 깊은 물에 풍덩- 던져 넣어 용솟음치는 파도 같기도 하고, 반대로 거대한 어떤 것이 물속에서 나오며 무겁게 출렁이는 물보라 같기도 하다.
그 생동감은 가히 보는 이가 시청각적 상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이러한 연유로 관찰자는 단순히 눈이 덮여 있다는 촉각적 요소가 제공하는 것보다 더욱 증폭된 시원함과 웅장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흙의 유무에 따른 식생의 정도도 경관에 차이를 준다. 보통은 가장 완만한 산이 풍부한 흙을 가져 나무가 많고, 그래서 짙고 굵은 윤곽선을 가지며 여백도 거의 없다. 모서리의 날카로움이 눈을 뚫고 드러나는 바위산의 경우는 바위 틈새에 드문드문 자라나는 소나무 외에는 나무가 거의 없어. 다소 삭막하면서도 또 그 호락호락하지 않음이 주는 위압감도 있다.
서로 다른 그림체의 산들은 겹겹이 겹치고 또 부드럽게 이어지기도 하며 설악이라는 한 폭의 장관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촘촘한 능선 사이에는 수많은 골짜기와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이다.
그 각기 다른 산들을 한데 모아두고 보니 처음부터 한 몸이었던 것처럼, 조화를 이뤄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산은 유려함을, 저 산은 강직함을, 이 골짜기는 매끄러움을, 저 봉우리는 거침없는 날것의 모습을 담당해 지루할 틈이 없다.
택시 안에서의 7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 7분이 내겐 근 몇 년간 들었던 것 중 가장 유익했던 수업이었다. 그 안에 배운 것이 너무 많았다.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잘 아는 이의 설명을 들으며 완전히 몰입할 수 있었다. 옛 화가의 산수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면 좀 설명이 될까.
어느덧 미르와 흔들바위에 대한 걱정과 고민은 사라지고 내 안에는 관찰과 발견, 깨달음과 향유로 인한 순수한 호기심과 기쁨만이 남아 있었다. 세상을 처음 만난 어린아이의 그것과 같이.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고도가 높아지면서 회전 반경이 좁아지기 시작한다. 고깔을 칼로 자르면 위로 올라갈수록 그 단면의 넓이가 작아지듯이. 길이 더 많은 곡선을 그리며 코너를 도는 횟수가 늘어나자 놀이기구를 타는 듯 어지럽고 멀미가 난다. 감속 따윈 없는 기사님의 자신감 있는 운전실력 덕에 더욱 그렇다.
언제 도착하냐는 말에 다 왔으니 여기 화장실에 들렀다가 올라가면 된다 하신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말 약간 평평한 중턱에 화장실이 나타난다. 택시가 정차하고, 산에선 휴대폰이 떨어지지 않게 꼭 지퍼를 잠그라는 당부에 감사하다고 인사하며 내린다.
화장실에 간다. ‘포세식 화장실’이라는 말은 처음 들어봤다. ‘변기 안에 있는 거품은 특수 약품으로 처리되었기에 냄새가 나지 않으니, 볼일을 본 후 물을 내리지 않고 나오면 된다’고 한다. 근데 들어가자마자 용변 냄새가 너무 나서 어이가 없으면서도 웃기다. 이게 뭐야. 산에는 물이 귀하니까 그런가 보다. 당연히 세면대도 없다. 신기하다.
시간은 9시 55분. 아슬아슬하게 세이프. 얼른 들어가자. 입구에 들어서니 먼저 온 사람이 있다. 사진기를 목에 건 아저씨가 이제 막 올라갈 모양이다. 입장 바코드가 알림 메시지로 왔긴 한데 그걸 어디에 찍는 건지 모르겠어 쭈뼛쭈뼛 말을 건다.
“저.. 혹시 이거 예약했으면 그냥 들어가면 되는 겁니까?”
“어, 안에 사람 있는데..”
아 그렇구나. 불투명한 비닐로 싸여 아무도 없을 것 같이 생긴 천막 안에 직원이 있었다. 괜히 멋쩍어진 나는 얼른 들어가 확인 절차를 밟는다. 결빙이 많이 되었으니 무리하게 산행하지 말라는 안내 사항을 듣고 나온다.
끝이 없어 보이는, 게다가 눈으로 덮여 시작이 어딘지 알아보기도 어려운 계단 앞에 선다. 분명 쉬엄쉬엄 산책하는 느낌으로 갈 수 있다고 했던 거 같은데, 저 잔뜩 얼어붙은 초입을 보아하니 이거 어쩐지 꽤 힘든 산행이 될 것 같다.
후, 한번 심호흡을 하고 올라가기 시작한다. ‘그래, 힘들어 봤자지.’ 일주일에 세 번 이상 꾸준히 운동을 해 왔으니, 스쿼트로 단련된 엉덩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 자신만만하다. 더욱이 보통 사람이 산책하듯 다녀올 수 있는 코스라니 그쯤이야 가볍게 완등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이 생각은 십여 분 만에 무자비하게 깨지고 만다.
초반에는 웅장한 경치에 감탄하며 세 걸음 갈 때마다 사진을 찍은 탓에 속도가 나지 않는다. 파노라마처럼 주변에 펼쳐진 설산에 한 번, 아까 택시를 타고 오며 보았던 조각 같은 돌들이 더 가까워진 것에 감탄하며 한 번, 조금 올라갈 때마다 낮아져 한눈에 들어오는 발아래 풍경을 담으려 한 번 걸음을 멈춘다. 이대로 지나치면 지금 이 풍경은 다시 보지 못한다는 게 아쉬워 눈에 담고 또 담는다.
십 분이 지났는데 겨우 열 계단을 오른 걸 보고 이러다 완주를 못하겠다 싶다. 아쉬움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리며 단단히 마음먹고 오르기 시작하자 금세 다리가 아파온다. 어제도 산행을 한 탓인가. 오늘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돌계단이었던 것이 눈으로 쌓여 그저 아찔한 경사가 되어 버린 것을 보고, 오르고 올라도 얼음 덮인 철계단이 계속 나와 호흡이 가빠지니 그 생각은 더욱 강해진다.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뛴다. 내가 천국의 계단을 타고 있는 건가. 제일 싫어하는 운동 기구인데.
계속 오른다. 혼자 오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의 동료로 삼았던 아저씨는 이미 나를 추월해 저 위에 가고 있다. ‘아저씨 같이 가요..’ 속으로 여러 번 말하며 열심히 올라간다.
계단 중턱, ‘여심 폭포 안전 쉼터’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근데 폭포가 어디 있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내 뒤편에 얼어붙어 있던 폭포를 발견한다. 길고 우아하게 늘어진 불투명한 폭포 기둥이 마치 뜨겁게 달궈진 유리를 엿처럼 늘여놓은 장면 같다.
와- 감탄이 나온다. 진짜 멋있다. 내가 내는 소리에 아저씨가 이쪽을 본다. ‘아이쿠, 내가 폭포를 놓쳤군.’ 하는 표정으로. 포토그래퍼인 것처럼 보이는 아저씨는 내가 올라오길 기다렸다가, 폭포 사진을 찍기 위해 가파른 눈 경사를 다시 기꺼이 내려간다. ‘제 덕분이죠. 감사 인사는 됐습니다.’ 장난스러운 얼굴을 하고 마음속으로 말한다.
더 올라가니 세네 덩이의 바위가 보인다. ‘저게 장군바위구나.’ 조사를 미리 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장군님께는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모아이 석상과 조금 비슷하게 생긴 듯한 얼굴을 한 바위가 마치 보초를 서듯 줄지어 저 멀리 오른편을 바라보고 있다. 물론 장군님이 직접 보초를 서진 않겠지만 말이다. 심지어 맨 왼쪽에 있는 장군은 어깨 갑옷까지 차고 있다.
“진짜 장군이네.”
사진으로만 보던 광경을 정말 눈으로 보게 되다니. 왠지 모르게 들뜨고 신이 난다. 네 명의 장군들이 든든하게 이곳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여 괜히 내가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래, 역시 흘림골에 오길 잘했어.’ 장군바위를 가득 눈에 담고 다시 경사를 오르기 시작한다.
사실 흘림골 ‘탐방’이라고 하기에 이렇게까지 본격적인 등산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쉬엄쉬엄 갈 수 있다던 코스가 생각보다 너무 오르막이다. 찬찬히 ‘산책’하는 느낌인 줄 알았건만, 사전 조사를 더 철저히 하지 않은 내 탓이다.
바위는 어느 하나 같은 것 없이 정말 모두 다르게 생겼다. 살면서 바위를 이렇게 자세히 본 적이 있었던가? 수많은 길이와 각으로 직선과 곡선으로 갈라져 있으며, 모양 역시 페이스트리같이 겹겹이 쌓여 있기도 하고 직각으로 반복되며 지층을 이루고 있기도 하다. 그 모습이 마치 바위가 밀리고 깨지고 솟아오르고 갈라지며 치열하게 살아온 세월의 흔적인 것 같아 경외심이 든다.
다시 산을 오른다. 이젠 정상이 언제 나오나 싶다. 많이 온 것 같은데 이정표를 보면 막상 얼마 오지 않았다는 데 너털웃음이 난다. 아니 이제야 절반인 게 말이 되나. 이제 와서 다시 내려갈 수는 없고, 그냥 전진하는 수밖에.
앞사람의 앞사람의 앞사람이 만들어 놓은 발자국에 내 발을 꼭 맞게 겹치며, 이미 다녀간 사람들이 확보해 놓은 안전에 단단하게 발을 디딘다. 누군지 모를 동료들과 시간의 격차를 두고 호흡을 맞춘다. 혼자이지만 마치 같이 오르는 것 같아 든든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계단을 오르면 오를수록 내가 있는 지점의 해발고도가 점점 높아지는 게 느껴진다. 마치 아주 느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있는 기분이다. 그게 참 신기하다. 게다가 아까 멀리서 봤을 때 한 봉우리 끝이 다람쥐와 새 모양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가까이서 보니까 실제로도 그런 것이다. 이 역시 당연하지만 그렇게 작게만 보였던 것이 손에 잡힐 정도로 눈앞에 가까이 있다는 게 또 새롭고 재밌다.
마지막 경사는 정말 쉽지 않다. 마치 네 발로 눈밭을 헤치는 고독한 늑대가 된 기분이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발이 미끄러져 넘어질 게 뻔하다. 바로 옆은 그저 날 것 그대로의 낭떠러지다. 아찔할 정도로 까마득해 끝이 어딜까 눈으로 짐작하는 것만으로도 그야말로 식은땀이 흐른다. 안전을 위한 울타리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떨어지면 생명이 위험할 것 같아 사뭇 비장해진다.
발끝에 힘을 주고 아이젠으로 눈을 찍어 내린다는 생각으로 오른다. 발만으로는 균형을 잡기 어려워 손까지 짚어가며 정신없이 경사를 지난다. 호흡이 너무 가빠 복식 호흡으로는 숨이 모자란다. 가슴을 열고 숨을 폐에 가득 들이마신다. 심장이 머리에 뛰는 듯하다. 무릎이 삐그덕 대고 아려 최대한 엉덩이 근육을 쓰며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한다.
후-
후-
후-
후-
호흡하는 속도에 맞춰 발을 딛는다. 너무 힘들어 정말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고통스러워서 머리가 비워지는 경험은 정말 오랜만이다. 평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어 항상 머릿속이 복잡한 나에게는 더없이 귀하고도 생경한 일이다. 육체의 고통으로 잡생각을 버리자는게 본래의 목적은 아니었으나, 덕분에 머리를 비우고 싶었던 목표는 넘치고 흐를 정도로 충분히 달성했다.
지옥의 경사를 오르고 나니 보이는 ‘등선대 안전 휴식 전망대’.
ㅣ드디어 정상이구나. 사실 올라오면서 본 경치들이 더 아름다웠고, 충분히 눈에 담아두었기에 정상만의 특별함이랄 건 딱히 없어 보인다. 사진을 몇 장 찍어보지만 그다지 예쁘지 않다. 다소 실망스럽다. 정상에 올랐다는 기쁨보다 몸이 너무 고되기에 빨리 숨을 고르고 내려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그러다 거친 숨이 잦아들자,
세상이 고요해진다.
휘이익
간간이 들리는 바람 소리.
타다닥, 똑.
눈 떨어지는 소리.
쿵쿵
귀에서 울리는 심장 박동 소리.
비로소 들리는 부드러운 적막.
‘산이 넓은 품으로 나를 안아준다.’
이젠 그 말이 뭔지 알겠다. 이 거대한 존재는 언제나 변하지 않을 것만 같다. 항상 너그럽고 또 자애롭게 품어줄 것 같다.
나는 그제야 정상이 달리 보인다.
정상의 가치는 바로 이런 거구나. 계속 전진해야 한다는 마음과 언제 미끄러져 떨어질지 모르는 불안감, 서라운드로 들리는 내 거친 호흡에 지친 귀, 차갑고 건조한 공기에 매운 콧속이 없다면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성취감과 고된 노동 후의 느슨해진 긴장감, 안도감과 희열, 발갛게 상기된 두 볼과 피맛이 나는 목구멍, 땀으로 젖은 내의를 경험하고 나서야 비로소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산이 침묵으로 건네는 위로. 그 포근하고 달콤한 걸 담뿍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