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쉼터
하늘이 푸르고 희고 깨끗한 구름이 둥실둥실 떠있는 오늘이 맘에 쏙'들어서 기분이 달달해서 '임여사님' 뭐 하시나 궁금했어요.
정말이에요. 오늘은 딱' 이유가 기분이 좋아서가 분명해요.
투덜투덜, 구시렁구시렁, 씰룩씰룩, 부르르 떨리는 순간에 가장 많이 '임여사님' 불러대며 감정 쓰레기 나누던 딸이 기분이 좋아서 편지를 쓴다 말하면 '임여사님' 어떤 표정일까요?
편안한 마음으로 안전함을 믿으며 읽어주세요.
알고 있었지.. 사실 이제는 그만해야지를 반복하면서도~
나이가 몇인데 툭하면 엄마에게 남편 흉을, 아이들이 누굴 닮아 그런지 미주알고주알 사건 사고를 보고했던 철없어도 한참 없던 나를 나도 잘 알고 있었는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칠 수 있는 대나무숲이 '임여사' 뿐이어서 그 긴 시간 나보다 더 무거운 마음으로 걱정하게 만들었어요.
생각이 나쁘고 마음이 꼬여 있는 상태보다 무서운 건 몸에 배어있는 습관이 맞는 것 같아요.
요가 수련과 명상 수업을 진행하며, 조금 더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에 상담심리학과로 편입했고, 졸업 후 상담심리 1급 자격증을 취득하며,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었고, 완벽주의적 성향으로 긴장된 상태에서 생활했는지를 알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유독 엄마를 향해 나의 짐을 고스란히 맡겨도 된다는 기준을 세워두고 있었던 나를 만나 너무나 미안하고 마음 아팠어요.
공부하는 과정에 나도 아이들의 3 춘기 4 춘기를 경험했고 다음 단계까지 넘어가면서 더 확실하게 알게 되었네요. 엄마도 아이들이 쏘아대는 화살촉이 가늘어도 굵어도 아프게 박히고, 박힌 촉을 빼내어도 상처가 남아 있고, 아물어도 흉이 진다는 걸...
도대체 나는 얼마나 많은 화살을 날렸고, 엄마 마음에 그 흉은 얼마나 많은 흔적을 남겨 쌓아 놓았는지를 어느 날 한 순간에 내가 알아버렸고, 그날 난 얼마나 오랫동안 울었는지 몰라요.
엄마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둘 편지라 마음 깊이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담아봅니다.
일상에 지쳐 어깨가 좁아지고, 키가 1cm 정도 줄어드는 기분이 들 때면 '노릇노릇 구운 두부와 크리미 한 마요네즈 물결, 파송송 달걀말이' 도시락 반찬이 불쑥불쑥 떠올라 나의 식욕을 깨워줘요.
기억하죠.
입 짧은 딸이 가장 좋아하는 반찬이라 주 3회 이상 두부 반찬과 달걀말이를 만들어 주셨어요.
학창 시절의 도시락의 반찬으로도 아침밥을 거르며 바쁘게 출근하던 사회초년생 때의 끼니를 대신하는 영양간식으로도 내 가방 안에는 늘 엄마가 싸준 도시락 통이 들어있었고, 힘에 버거운 순간에 입안에 톡' 털어 넣고 나면, 뱃속이 든든해지고 마음이 안정되어 웬만한 자극에도 덤덤하고 유연하게 대처하고 안전 귀가 하게 해 주었던 마법의 도시락.
내가 결혼하고 주부의 생활을 하는데도 매번 집에 올 때면 직접 붙인 두부부침과 달걀말이를 반찬통에 담아 왔어요.
"내가 만들면 왜 안 먹히지~ 뭐가 다른 거야. 엄마가 만든 건 10개도 먹는데.."라는 말로 여러 차례 엄마 마음을 어지럽혀 놓았겠지. 난 크고 작은 걱정거리를 많이도 만들어 선물했던 것 같아요.
헌데 엄마. 삶아오면서 나에게 힘이 되어주고, 빠르게 극복할 수 있는 '박카스'와 같은 역할을 해주었던 음식이 두부부침과 마요네즈 찍은 달걀말이였어요.
우울함에 피곤함에 가끔 좋은 엄마가 아닌 것 같아 슬펐던 때에도 더 깊이 추락하지 않고 경계선에서 탄력 있게 나의 자리로 복귀하는 최고의 명약이 되어주었어요.
정신없는 아침시간 등뒤에서 도시락 들고 서있던 엄마의 따뜻함이 든든했던 기억이 나의 삶의 '박카스' '비타 500' '쌍화차'의 효능으로 나타났어요.
나의 아이들의 삶 속에서 나도 나의 엄마가 만들어 주었던 영양 가득한 기억을 만들어주어, 위기의 순간에 회복력을 끌어내는 힘을 심어 주고 싶어요.
엄마, 크기를 확인할 수 없을 만큼 넓은 하늘과 풍성한 구름을 몽땅 담아낸 만큼 감사하고 사랑해요.
우리 아이들에게도 외할머니의 사랑 듬뿍 나누어 주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몰라요.
며칠 전 " 임여사님~ 선물이 들어왔는데 나눠 줄게요."라고 전화했더니 녹내장 치료 중인 눈의 통증이 심해져 힘들어하고 계셨어요. 오른쪽 시력이 이제 거의 보이질 않아 일상생활까지 힘들어져 많이 우울해한다고 아빠가 걱정하시며 전해주셨어요.
엄마가 좋아하는 고추장 닭발 무침을 드시면 좀 기분이 나아질 것 같아 얼른 챙겨간 닭발.
파주농부 아저씨가 손수 손질하고, 양념한 닭발을 작은 김치통으로 가득 보내주신 걸 전했을 때, 엄마는 정말 환하게 웃으며 두 팔 벌려 품에 안고 들어가셨어요.
생각해 보니 오랜만에 입이 귀에 걸릴 듯 웃는 엄마의 모습을 본 것 같아 집으로 돌아오며 흐뭇해하며 웃다가도 눈물이 찔끔찔끔 나오는 걸 어떡해.
어릴 땐 엄마 식성이 이상하다 생각했어.
돼지는 살이 많아 돼지인데 살보다 각종 역할을 달리하는 장기와 피부, 그리고 특수 부위라 칭하는 별난 살점들을 유난히 좋아했던 것 같아.
헌데 그때 난 정말 그 모양새며 식감이 좋지 않았서 나에게 권하는 엄마의 손을 쌀쌀맞게 밀어내고 돌아섰던 기억이 선명해요. 같이 맛있게 먹어줄걸.. 그걸 함께 못 먹어주고 섭섭했겠다 싶었네요.
결혼해 보니 남편과 시댁식구 모두 돼지의 살, 소의 살 보다 각종 장기와 피부, 두 개밖에 없는 닭의 발에 열광하는 걸 보고... 특별히 살점을 좋아하는 내가 미각 부분이 둔감하여 그럴 수 있다 생각을 바꾸게 되더라고요.
매번 그랬어요.
엄마에게만 마음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면 나는 엄마가 이상해~ 왜 그러는 거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참 다양한 버전으로 뾰족한 말을 만들었어요.
그러다 타인의 말속에서 엄마의 생각과 마음을 만나면 그때서야 이해하게 되고, 마지못해 인정하게 되는 순간을 만나곤 했어요. 지금 와 생각해 보면 민망해서 꺼낼 수 없는 미안하고 죄스러운 상황이 많았어요.
어쩌다 셀 수가 없지만...
내 가슴에도 깊고 아프게 새겨졌던 모습, 엄마가 서럽게 서럽게 울었던 그 밤을 잊을 수가 없어요.
너무나 미안해서 미안하다 말하지 못하고 세월이 한참 지나버렸네요.
나의 삶의 햇살의 밝은 긍정과 신선함을 만들어주었고, 무겁고 불편한 짐들을 아무 말 없이 나누어 들어준 엄마에게 진심을 전하는 감사와 사랑 그리고 부끄럽고 미안함을 담은 사과의 마음을 편지에 담아 먼저 정리해 보았습니다.
오늘처럼 날이 좋은 어느 날 꼭 엄마 얼굴 보며 이 마음 전할게요.
건강하게 지내 주세요. 더는 엄마에게 짐을 나누지 않고, 딸을 키워 흐뭇한 기쁨만 만나게 해드리고 싶어요.
건강한 대나무 숲을 이제 나의 마음에 가꾸어 놓았거든요.
엄마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담주 만나러 갈게요~
= 엄마가 제일 사랑하는 유월의 하얀 토끼 올림 =
[매년 대봉을 선물해 주는 엄마,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딸의 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