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고 안타까운 인연을 위해

귀하고 다정하게 나눠주신 마음 기억합니다.

by 유월 토끼



무서울 정도로 무덥고 습했던 여름이었습니다.

무사히 보내셨나요.

저는 조금 더 뜨겁고 불편한 상황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 극한 체험을 하듯 이 악물고 보낸 여름인 것 같습니다.

삶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를 만큼 당황스럽고, 힘들어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멈추고 세상 속에서 버티며 평안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알려 주신 덕에 건강하지 못한 생각에 잡아먹히지 않도록 통제하고 극복해 가며 일상을 지켜가는 힘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 지리산 구례에서의 10월 풍경은 어떤가요? 무척 궁금합니다. 제가 선생님을 찾아갔던 지리산 구례는 8년 전 깊은 가을이었네요.

소식을 전하지 못한 지 시간이 벌써 그렇게나 흘렀습니다.

조용히 애정표현하는 법과 품위 있는 어른의 모습을 선명하게 가르쳐주신 선생님의 온기를 기억합니다.


제가 국립암센터 여성암 처방용품 센터에서 일한 지 1년이 조금 넘긴 겨울, 선생님께서 유방암 진단을 받고 센터를 방문하셨고, 치료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일주일에 1~2번 얼굴을 마주하며 꽃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20년이 넘는 나이차이를 극복하고 친구가 되었지요.


꽃차를 가지고 방문해 저에게 직접 우려 주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너무나 곱고 우아해 보여서 단번에 꽃차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지요.

항암 치료가 시작되고 머리카락이 빠져나가 두상 전체의 두피가 드러나도록 머리를 밀고 비니를 쓰고 오셨는데도 차를 우려내는 모습은 우아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진심으로 그 말을 전하고 싶었지만, 그땐 차마 말씀드릴 수가 없었어요. 조심스러워서... 혹시라도 저의 말이 상처가 되거나 슬픔이 더해지는 말이 될까 두려웠습니다.


처음 우려주신 꽃차가 '목련꽃'차(감기예방, 알레르기성 비염에 좋음)입니다. 기억나시죠.

마싹 말라있던 목련꽃이 따뜻한 물속에서 활짝 피어올라 투명하고 커다란 잔을 가득 채웠어요.

얼마나 예쁘던지 꽃이 물속에서 피어오른걸 처음 보았던 저는 싱싱하게 피어오른 목련꽃처럼 선생님의 모습도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그날은 분명 항암 치료 중인 환자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답니다.

저의 사무실 가득 목련꽃차의 향이 가득했고, 차는 향기만큼 달콤하지 않았고, 가볍게 매운맛을 가지고 있었어요. 사실 다른 건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주 예쁘고 큰 잔에 꽃이 피어 가득 채워지는 그 장면만은 아주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다른 환자분들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어 하소연하며, 울기도 하고 다른 환자들의 사례에 대해 궁금해 많은 질문을 많이 하셨는데, 선생님은 첫날부터 덤덤하셨어요.

그리고 처방제품에 대한 내용만 확인하시고, 스케줄 예약만 하고 돌아가셨었어요.

4번째 방문하 신날부터 꽃차를 준비해 오셔서 향기로운 꽃이야기와 따뜻한 차를 내려 저에게 나누어 주시는 남다른 애정을 보여 주셨습니다.

항암치료과정이 2~3개월 되기 때문에 몇 번 방문하신 분들은 가끔 간식을 사 오시기도 했지만 선생님처럼 치료 중에 힘도 없고 입맛도 없는 상황에서 다기와 꽃차를 챙겨 와 직접 내려주시는 특별한 일은 없었습니다.

목련꽃차에 이어 국화차, 장미차, 메리골드차등 다양한 차를 맛 보여 주시며, 힘들어도 항암 치료를 이겨내려면 꽃차를 준비해 누군가에게 정성껏 차를 우려내주어야 가능할 것 같았다~ 다행히 저를 만나는 장소와 그 시간대를 쓸 수 있어 고마웠다 말씀해 주셨습니다.

행복하고 즐거웠던 자신의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항암치료 중의 통증과 슬픔에 빠져들어 자신을 흠뻑 적셔 버리지 않았고, 자신이 아끼던 일을 멈추지 않고 누군가에게 전하며 고통의 무게를 줄이려 애쓰셨던 선생님과의 시간에서 저는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습니다.

그때의 시간으로 인해 제가 삶을 대하는 마음과 태도가 한층 성숙하게 되었고, 좋은 영향력을 듬뿍 받아 어떤 상황 속에서도 꽃차의 향기를... 아름다움을... 평안함을... 따뜻한 온기를... 잃어버리지 않고 꼭 찾아내는 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치료를 마치고 지리산 구례로 내려가 살게 되었다며 국화꽃 한통을 선물로 주고 가셨지요.

국화차를 마시며 저와 생각하는 시간을 6개월간 가지고 퇴사를 결정했고, 요가수련생에서 자연치유요가 강사의 길로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퇴사를 앞두고 지리산 구례 선생님 댁에 방문했을 때 건강한 모습의 선생님을 뵙고 참 좋았습니다. 지리산이 내어주는 힘이 선생님을 지켜주는구나. 숲의 신비함과 흙의 냄새가 선생님의 몸을 치유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으니까요.


선생님, 저는 지금 항암치료 후 일상생활로 돌아가기 위한 환우들의 재활을 돕고, 일반 회원들의 건강한 자세와 몸과 마음의 균형을 찾아가는 길을 안내하는 자연치유요가 강사로 행복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비니를 쓴 작고 마른 몸으로 꽃차를 정성껏 내려주시던 선생님 다정한 모습이 지금 저에게도 비춰져 저와 함께 수련하는 회원분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전하고 있다 믿고 있습니다.


고통 없는 아름다운 곳에서 평안하게 지내실 선생님을 생각하며 감사의 마음, 존경의 마음을 담아 편지를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