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지지 않는다. 더욱 짙어지는 향
* 농장에서 직접 따온 100송이 장미를..
* 잠들지 않는다. 당신을 지키기 위해..
마음속 서랍에는 아프고 힘들었던 묵직하고 뾰족한 것들이 풍기는 고린내와 눅눅하고 숨을 턱 막히게 하는 냄새도 고스란히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반면 순간순간 일상에서 달달하고 싱그러운 향을 되새김질할 수 있도록 반짝이고 보드라운 것들과 함께 향기로 남아 시간이 갈수록 더욱 짙어져 기억을 선명하게 불러오곤 합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뭐라 꼬집어 어떠하다 말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힘들다. 힘들어 넘어가겠다 하다가도 어떤 이의 손길로, 또는 나의 버팀으로 다시 일상으로 복귀.
못살겠다. 못살아 이건 아니지~ 외치는, 결혼생활의 위기를 만나고, 서로를 향한 진심과 어여쁜 표현에 '우리 무슨 일 있었나?'로 꿀꺽 넘겨버리는 신비하고 정답 없는 이야기를 만드는 세상이 아닐까요.
할아버지, 할머니대와 큰집 작은집 모두 딸이 귀한 집에서 태어난 저는 어~쩌다 전라도 벌교, 고흥이 고향인 (대한민국의 상남자 집성촌) 버들 유 씨의 장손과 결혼하며 참 낯선 집안의 문화를 마주하며 한참을 혼란스러워하며 힘들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초반 이런저런 사건들로 냅다 도망가고 싶었던 사이사이 남편이 전해주었던 애씀과 뚜렷한 사랑의 표현들이 지금 이 시간까지 만들어 갈 수 있는 양분을 만들어 주었네요.
결혼 4년 차 되던 6월 어느 날 오전 10시경 초인종이 울렸고, 현관문을 열어내는 순간 포장지되지 않은 날것의 장미꽃 더미가 빨간 노끈에 묶여 남편의 상반신을(83kg의 몸무게) 모두 가리고 있는 모습에 놀라 장미꽃을 받아 들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지난달 모임에서 장미꽃을 아내의 회사로 보냈더니~ 하며 행복한 결혼생활을 한참 자랑했던 부부의 이야기를 듣고 돌아오는 길에 제가 무심히 '장미꽃 뭉텅이를 풍성하게 받으면 짜릿하겠군" 했었다네요.
그 말을 듣고 자신이 꽃을 선물한 적이 없었다는 것 알게 되었고, 근무 중 우연히 들여다보게 된 꽃 농장에서 사장님과의 밀담 끝에 반나절 꽃농장 아르바이트를 하고 자신이 직접 수확한 장미 100송이를 받기로 했다는 사연을 들려주네요.
촉촉하게 물기 머금은 갓수확한 싱싱한 장미 100송이 빨간 노끈으로 질끈 묶어온 남편, 장미만큼이나 땀에 흠뻑 젖은 그의 모습은 잊히지 않고 위험한 순간마다 그 향기와 촉감과 물 섞지 않은 수채화 물감의 붉은빛을 그대로 뿜어내는 장미 덩어리가 불쑥불쑥 올라와 주었답니다.
두 팔로 품어 낼 수 없을 만큼 풍성하고 싱싱하게 살아 있던 100송이 장미는 시들어 아쉬움 속에 정리했지만, 눈으로 가슴으로 촉감으로 향기로 소중하게 담았던 기억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선명해집니다.
첫 아이가 4살 된 해 오래된 아파트였지만 방 3개의 널찍한 집으로 이사해 한참 집을 가꾸는 재미에 흠뻑 빠져 있던 저에겐 고민이 있었어요.
이사 온 집이 궁금했는지 몇 차례 만나고 싶지 않은 생명체, 세상에서 두 번째로 무서워하는 바퀴벌레가 출몰하는데 도저히 제 손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어 눈으로 보고도 살려 보내게 되는 마음 불편한 상황이 있었어요.
'진짜 안 만나고 싶어. 너무 싫어.'라며 투덜 대는 저의 이야기를 듣고도 별다른 말이 없던 남편이.
어느 날 깊은 가을밤 남편은 먼저 잠들었고, 저는 화장실 다녀와서 자려고 일어나 거실을 지나 나가 화장실문을 열자마자 '허~ 헉'하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고, 절대 그 소리에 깨어나리라 생각하지 못한 남편이 아주 빠르게 '다다다 다'달려와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닫고, '달그락 턱~ 퍽~' 하더니 변기물을 내리고 나오며 '크네, 큰 놈이네. 네가 널 지켰어!' 하며 스르르 다시 방으로 들어가 자던 잠을 마저 자는 거예요.
'헐~ 어떡해. 너무 멋있어.' 그 밤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어요. 살아오면서 그날 그 시간 그 바퀴벌레만큼 저를 놀라게 했던 생명체는 아직 없었고, 그 녀석을 멋지게 해치워준 남편은 지금까지 든든한 야수의 모습으로 제 옆을 지키고 있습니다.
20여 년을 훌쩍 넘긴 결혼생활에서 철없고 어이없는 듯한 모습으로 속상했던 기억도 있지만, 달달하고 싱그럽고, 부드러운 마음을 표현하는 다듬어지지 않은 듯한 거침이 고맙고 따뜻하여 오래오래 남겨져 일상의 든든한 영양제가 되어주고 있답니다.
슬플 때, 고통스럽고 힘들 때, 너무 깊이 들어가 버리지 않도록, 달고 맛난 기억 속 향기와 추억을 자주 떠올려 균형을 맞추어 주면 우리의 일상이 더욱 안전하고, 미소 지을 수 있는 작은 행복을 많이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도 우리모두 샨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