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전투력 만렙 투명 갑옷이 있다.
무더웠던 어느 여름(7월) 평소처럼 출근하는 길, 멀미증상과 현기증을 느끼며 버스정류장에 잠시 앉아야 했던 그 순간부터였나 봅니다.
이틀 정도 같은 증상이 있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산부인과를 찾았고, 첫 아이가 찾아온 걸 확인하게 되었지요.
기쁜 소식과 함께 극심한 입덧이 시작되었고, 급속도로 체중이 줄어 체력 저하와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결국 40kg이 안 되는 몸무게로 인해 영양제를 맞아가며 버텨야 했었어요.
임심 6개월쯤 조금씩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늘어나게 되었고, 뱃속 아기의 크기도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성장을 보여 주었답니다.
최강수위의 입덧을(극도의 상태를 표현할 방법이 없음)하는 6개월 동안 병원에서 링거를 맞으며 호흡곤란의 부작용과 링거바늘에 혈관이 버티지 못하고 터져버려 두 팔과 손등은 푸르고 붉은 멍으로 덮여있고, 지켜보는 남편도 엄마도 어찌할 수 없어 함께 울며 지냈던 그때를 떠올려 보면 엄마가 되기 위해 숨겨놓았던 전투복을 입고 혼자만의 전쟁을 치르고 있었던 시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를 지켜낸 것은 나 자신도 모르고 있던 강한 생명력과 몸에 변화가 일어나는 현상을 받아들이지 못해 극한 저항을 상대로 꿋꿋하게 나와 아기를 지켜내고 있었던 6개월간의 전쟁.
저는 마블영화 속 주인공들 중에서 아이언맨을 가장 좋아합니다.
그가 입는 슈트(전투복).
위험한 상황에서 전투복을 입고 상황을 해결해 나갈 수 있는 힘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친정엄마와 남편의 도움, 그리고 의료진의 도움이 있었지만, 저 스스로 투명한 전투복을 챙겨 입고 치러낸 완벽하게 승리한 전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3.2kg의 건강한 아기의 탄생, 출산 일주일 안에 원래 몸무게로 돌아와 버렸지만 빠르게 회복한 저는 분명 한 번도 꺼내 입어 볼 일이 없었지만, 아이언맨이 가진 전투복과 같은 전투복을 스스로 찾아 입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처음 투명전투복을 입고 치른 전투에서 승리하고, 이후로 몇 번의 전투에서 자연스럽게 다시 꺼내 입고 승리를 맛보았으니까요.
2001년 SBS라디오 김갑수(문화평론가)의 '책하고 놀자' 프로그램에서 전국 시낭송 대회를 열었어요.
예선통과 청취자들과 연결해 매주 1회 대결하여 1승 한 승자에게 다음 주 도전하는 방식으로 4주 연속 승리하는 우승자가 대상을 받고 진행자 김갑수 선생님과 SBS라디오 방송국 방송진행 부스에서 함께 진행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방식이었어요.
고등학교 시절 방송반에서 아나운서로 즐겁게 활동했던 저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평소 애청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이었고, 김갑수 선생님을 만나고 함께 방송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에 피가 뜨거워지는 느낌을 느꼈고, 신청했죠.
1승~ 2승으로 3승까지 찐 실력자의 도전을 받았으나 제가 찾아 입은 강력한 전투복 덕분에 마지막 결승까지 갈 수 있었던 거죠.
마지막 결승은 이미 정해져 있었던 일정이 있어 지방으로 이동하던 중 시간에 맞추어 휴게소에 주차하고 조용한 장소를 찾아 들어가 몸을 낮추어 쭈그리고 앉아 낭송을 할 수밖에 없었지요.
결승의 순간은 정말 여락 한 환경이었고 도전자 또한 강력했기에 가슴이 터질듯한 떨림을 동반한 상태였는데 낭송을 시작하는 순간 그렇게 평온할 수가 없었어요.
뭐라 표할 할 수 있는 특별한 색상이나 디자인은 없지만 스스로 감지하게 되는 위기감, 결전의 순간, 잠시 동안 나를 업그레이드시켜내는 투명한 전투복을 챙겨 입고 상황을 대면하는 저를 보았어요.
4승까지 마무리하고, SBS 방송실로 초대받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어요. 방송실 부스 안의 모습, 김갑수 선생님과의 만남, 1시간이 어쩜 그리 빠르게 흘러가버렸는지~
지금 떠올려도 그 시간의 떨림과 행복을 느낄 수 있어요. 최고 멋있었던 순간으로 간직하고 있답니다.
우리의 인생이 드라마처럼 각본이 나와있지 않아 더욱 설레고, 행복한 반전에 놀라기도 하지만, 불안과 긴장의 순간도 같이 끌어안고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대했고 간절한 바램을 가졌던 기억을 돌아보면 모두의 기억 속에 자신이 경험했던 최고의 장면, 그 순간엔 평소의 나보다 더 강한 나였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의 전투복과 무기들이 필요한 순간에 찾아낸 경험을 기억하고, 꺼내어 입어야 할 때를 알아차리고 나에게 힘을 더해 주려면, 평소 나를 관찰하고 보살피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얼마나 멋진 전투복과 전투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