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어여쁘지만 무서운 것

그래서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by 유월 토끼


'솔미레도 도시도라 레레레도 시도라솔~'

고사리 같은 손이 피아노 건반 위에서 퐁당퐁당 이쁘게도 뛰어다니더라.

손가락 뛰어 오른 건반이 어쩜 그렇게도 고운 소리를 내는지 너의 연주를 들으며 하루 몇 번씩 두 손 합장하게 하는 감동을 주었는지.


무엇을 하고 있든 신기하고, 대견스럽고, 두근두근 설렘을 주었던 너에게 엄마가 보내지 않을 편지를 쓰고 있어. 너를 만나 처음으로 엄마가 되었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던 것 같아.

(기쁨 5스푼, 떨림 2스푼, 두려움 2스푼, 어쩌나~ 1스푼이 섞여 한꺼번에)


*태명 : 포동이 *몸무게 : 3.23kg *성별 : 여

머리숱이 아주 풍성했고, 두 눈은 힘주어 꼭 감고, 빨간 볼사이에 코가 빠르게 벌름벌름, 생각보다 큰입이 오물오물 거리며 가장 얌전히 있던 아기.

어쩌면 그렇게 그 순간의 모습은 선명하게 남아 지금까지도 눈앞에 그대로 펼쳐지는 거니.

프로이트, 에릭슨, 피아제가 세상에 내어 놓은 이론을 바탕으로 순서대로 단계를 밟아가며 건강하게 자라준 너는 유치원에서도 초등학교에서도 차분했고, 선생님이 좋아하는 교과서적 모범생이었어.

청소년 시절엔 피아노와 미술에 푹 빠져 있었고 감사하게도 이곳저곳에서 너의 재능을 알아봐 주셔서 엄마가 가슴이 부풀어 잠 못 드는 날도 있었어.


너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며 말할 수 없이 즐거웠고, 흥분했고, 뿌듯했었다.

그 시간들은 진심으로 너로 인해 행복한 순간으로 가득 차 있었어.

지금 가만히 들여다보면 엄마의 인생의 꽃밭이 그때였던 것 같아 지금 생각해도 설렘이 느껴진단다.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엄마는 그 기억을 꺼내어 보면 '배가 부르다'라는 말이 툭 튀어나오거든.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갑자기 이사를 하게 되면서 환경의 변화가 많이 부담스러웠는지 낯섦이 느껴질 만큼 너는 변했고, 고등학교로 진학하고 피아노와 미술 모두 손을 떼고 쳐다보지도 않게 되었을 때, 엄마는 가장 아프고 힘들었던 것 같아. 그땐 얼마나 자주 울었는지 늘 눈이 퉁퉁 부어 다녔던 것 같아.


온몸에 가시가 잔뜩 솟아 있는 고슴도치 같은 너를 향해 어떻게 해주어야 하는지를 몰라 더 울었던 것 같아.

더 가까이 다가가 안아주어야 하는지, 적절한 훈육이 필요하니 거리를 조절하며 냉정하고 현실적인 모습으로 질서와 예의를 외치며 얼마나 단호하게 대하면 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 쩔쩔매는 날이 대부분이었을 거야.

엄마가 참 많이 부족했어.

아주 많이 답답했어 도움을 주고 싶었어.

점점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지는 너의 가시가 아프기도 했지만, 엄마인 나의 모습이 너무나 어설퍼서 바보 같아서 미워하느라 더 바쁘고 더 힘겨웠나 봐.

결국 너는 대학 원서를 한 군데도 넣지 않았고 우리 가족 모두 폭풍이 지나간 흔적 속에서 분노의 침묵으로 한동안 생활했었어.


그쯤이었나 보다 엄마가 심리상담 공부하기 시작했고, 진짜 어른, 괜찮은 어른,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나눌 수 있는 용량을 채운 어른이 되고 싶다는 목표를 꿈을 가지게 되었단다.

더 빨리 시작했더라면, 우리 딸이 많이 힘들었을 그 시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어른다운 엄마의 모습이 조금이라도 채워져 너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의논하며 바른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에 가슴 한편이 조여 온다.


지금 너는 담담하게 직장생활을 하며, 게임 음악 작곡가의 꿈을 향해 걸어 나갈 준비를 하고 있지.

힘들었던 순간을 밀어내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와 더디지만 차곡차곡 너를 위해 길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어 정말 고맙다.

너를 만나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종류의 기쁨과 설렘, 두려움과 아픔, 그리고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특별한 행복도 맛보았으니 엄마는 너에게 '효도'라 하는 걸 다 받았다 말하고 싶다.

엄마의 모습으로 지낸 시간이 없었다면 '어른'이라는 단어의 깊은 뜻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구나.

성장하는 과정을 너와 함께하게 된 것이 미안하기도 하지만, 더 늦어지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하기로 하고 앞으로 세상 속으로 나아갈 너에게 아주 적게라도 좋은 방향을 찾아가는 길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고 싶다.


우린 힘든 시간을 견뎌낸 경험과 힘이 있으니 앞으로 만나게 될 크고 작은 변수들에 주저앉지 않고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을 거야.

엄마가 너를 향해 뜨겁게 응원할게.

사랑한다 나의 포동아~


= 9월의 마지막 날 엄마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