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 속 방향제&벌레퇴치제.

성장에 따라 대응하는 방법 업그레이드.

by 유월 토끼


들장미 소녀 캔디!

추억 속에 너를 떠올리면 넌 언제나 들장미 소녀 캔디의 모습으로 떠올라 그래서 사진이 없어도 너의 얼굴은 기억할 수 있어. 나의 소꼽친구야.

여러 날 내리던 가을비를 따라 경주마가 달리기라도 하는지 순식간에 찾아든 깊은 가을 찬바람에 놀랐는지 감기몸살이 심하게 앓고 있어.

며칠 쉬어가는 여유를 만들고, 책꽂이에 이쁘게 진열되어 있는 책들과 애정을 나누던 중 딸아이가 보고 꽂아 둔 빨간 머리 앤의 얼굴이 크게 나온 책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뽑아 들고 앉아 무릎사이에 새우깡봉지를 끼워두고 새우깡도 빨간 머리 앤도 단숨에 해치우고 일어나니 초딩, 중딩, 고딩 시절의 추억이 저녁노을처럼 선명하게 밀려오는 거야.

기억 속에 너는 빨간 머리 앤의 성격으로 들장미소녀 캔디의 얼굴을 하고 있었어, 크고 동그란 눈, 곱슬기 있는 밝은 갈색 머리카락.

어린 그 시절 나의 마음에도 넌 참 특별하게 예쁜 아이라 생각했던 것 같아.

조용히 앉아 그림을 그렸어 특히 예쁜 만화 속 여주인공의 모습을 똑같이 그려냈어.

만화 작가가 되어 있으려나~.


초등학교시절부터 우린 단짝으로 늘 붙어 다니며, 나랑 함께 등교하느라 자주 지각을 했었어고, 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 집 앞에서 날 기다리지 말고 먼저 학교로 갔었으면, 넌 지각하지 않고 벌청소도 하지 않았을 텐데 매번 나와 함께 지각을 하고 선생님께 꾸지람을 듣고, 청소를 따로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을 한 걸까? 그때 그 시절 우리의 우정이고, 의리였을까?


6학년 여름 네가 운동장에서 넘어져 앞니 두 개가 부러지고 입술에 피가 터져 나왔을 때 담임선생님께선 너에게 조퇴하라 하셨는데 나는 선생님께 말씀드리지 않은 채 너를 집에 데려다주러 나가는 바람에 선생님께선 나를 찾느라 놀라셨고 반장도 부반장도 모르는 일이어서 우리 집으로 전화까지 하시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담임선생님께 혼쭐이 나고 집에 가서 부모님께 혼이나 서러운 마음에 울고불고했었어.

생각해 보면 우리 함께 만들어둔 사건사고들이 참 많아 눈물 나게 웃고 떠들고 싶은 이야깃거리들이 그리 먼 일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너의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었고 네 방에 가득했던 책들도 눈에 선해.

책 읽는 즐거움을 너에게서 배웠고(물론 대부분이 순정만화였지), 요란스럽지 않게 재잘거리며 책 속이야기를 재미나게 들려주었던 너의 목소리와 너의 표정이 나를 행복하게 했었던 것 같아.

너와 함께 하며 책이 주는 즐거움과 책 속의 담긴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관찰하며 간접 경험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우리 각자의 길을 먼 곳으로 찾아가게 되면서 함께 할 수 없었고, 중년이 된 지금 나의 모습에서 가끔 너의 향기를 느끼고 너를 그리워한다.


중년의 나는 혼자 놀기의 달인이 되어 여전히 끄적끄적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충전하고, 꼰대의 향이 아닌 로즈마리향이 나에게 스며들기를 바라며 생활하고 있어.

물론 위에서 말한 것처럼 혼자 놀기에 수준으로 하고 있지... 남편의 진심과 농담이 섞인 말처럼 '돈'이 안 되는 일을 부지런히 도 잘하며 산다는 것이 나를 의기소침하게 만들긴 해.

수입이 발생하는 직업으로는 요가강사로 수업을 진하고 있어, 나의 운동, 회원님들의 운동을 함께 할 수 있고 건강에 도움을 주고 있는 일이라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거든.

할머니가 되어서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강사료를 받지 못하더라도 자원봉사는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오래전부터 나는 일 년에 두어 번 옷장을 정리할 땐 꼭 로즈메리향이 담긴 방향제를 준비해 교체해 주고 있어.

심신안정과 잡냄새를 제거해 주는데 도움이 되는 로즈메리의 향은 어린 시절 네가 나에게 주었던 추억의 향이거든, 옷장에서 막 꺼낸 옷을 입고 나서면 만나는 사람들이 은은하게 옷에 베인 향이 좋다며 물어보곤 해.

생각해 보면 옷장 속 옷에 스며든 로즈메리향을 내가 입고 있는 것처럼, 어린 시절 우리들이 함께한 건강하고 아름다운 추억이 만들어준 향이 그대로 나의 삶에서 점점 더 짙어졌고, 지금의 나에게서 가끔 너의 향을 느끼고, 옷이 상하지 말라고 넣어 두는 벌레퇴치제처럼 험한 세상에서 나를 벌레에게 내어주지 않고 지켜내며, 단단한 기준과 나다운 힘으로 지켜낸 거지 향기 나게 ~


다행이지 뭐야.

나의 마음속 서랍에는 로즈메리향이 나는 방향제와 벌레퇴치제가 있어. 너와 내가 만든 추억으로 큼큼한 냄새나는 곰팡이가 생기지않도록 건강한 인생의 기준이 만들어지고 혼자 즐길 수있는 놀이를 가지게 되었으니까.

어린 시절부터 사춘기, 청소년시절까지 함께 하며 너에게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어.

생각해 보면 고마웠던 기억이 가득해.

분식집에서 떡볶이도 네가 더 많이 사주고, 최강 어묵 꼬치도 있어 '하' 지금 그 맛을 내는 분식집은 어디에도 없어. 맛깔스럽게 재미난 이야기도 많이 만들어주고, 네 방에서 라면 끓여 먹으며 늦은 시간까지 책을 읽다 마주 보고 낄낄거리다 잠들고, 덕분에 지금도 책과 놀며 지내는 시간이 가장 평안한 쉼이 되어주거든.


보고 싶다. 나의 소꿉친구야.

너의 삶 속에서도 나와의 기억이 좋은 향이 나는 방향제가 되어 주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너무 긴 시간의 텀이 생겼지만 캔디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을 것 같은 나의 친구야 내가 널 찾을게.

다시 만나자. 해운대 바닷가에서...


-2025년 깊은 가을밤 하얀 토끼가 친구 캔디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