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모습을 한 꼿꼿한 사랑에 관하여
이 영화가 좋았다고 평가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유를 물었고, 모두가 다른 관점에서 영화에 대해 호평을 했다. 플롯의 짜임새, 섬세한 인물 묘사, 정교한 언어 사용, 영화 속 스마트폰으로 집약된 동시대성, 그리고 산과 바다와 안개가 지닌 회화성.
그중 내게 이 영화를 깊이 각인시킨 것은 다름 아닌 여주인공 서래가 취하는 사랑에 대한 태도였는데, 오늘날 (주변인들에 대한 관찰을 통해서든, 미디어에서 본 양상들을 통해서든) 내가 접한 '보통의' 사랑들과는 다른 희소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벌써 20~30년 전부터 한국의 대중매체를 점령했던 할리우드 원작의 수많은 영화, TV시리즈에서 묘사된 연인 관계의 양상들에 관해 '문화적 차이'로 간주하며 이해 또는 판단을 보류했던 적이 꽤나 잦았다. 90년대의 "프렌즈"부터 2000년대의 "그레이 아나토미"에 이르기까지... 일찍이 미국에서 생산되어 전 세계를 휩쓴 TV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미국인 특유의 ‘리버럴’한 남녀 관계의 모습들을 바라보며 나는 저들이 정의하는 '사랑'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가졌던 것이다. 서로를 갈망하고, 그리워하며, 마음을 쓰면서도, 때론 성적 교감을 나눈 이후에도, 심지어 상대방과 교제하는(seeing each other) 관계라고 설명하면서도, 그 또는 그녀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에는 확답을 하지 못하는 미국인(으로 대표되는 서양인)들의 관념을 이해하는 데는 노력이 필요했다. 아마도 '사랑'이라는 관념/역할/태도에 부여된 무거움 때문일 것이라고, 서양인들은 그것에 수반되는 책임감과 영속성에 대한 확신을 중시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결론을 내려 보지만 그러한 ’서구식‘ 사랑에 나는 여전히 흔쾌히 공감할 수는 없었다. 지구상의 어느 문화권보다도 이혼율이 높은 미국인들이 '사랑'이라는 단어에 저렇게 큰 무게를 부여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꽤나 모순적이라고도 생각된다.
하지만 이렇게 이미 익숙해진 서구적 관점이 체화된 오늘날 한국인들의 사랑은 어떠한가.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관념 자체가 근대 서양의 발명품이라는 것을 굳이 따지고 들지 않더라도, '결혼'과 '사랑'을 결부시키지 않는다 하더라도, 다각도로 기회비용을 따지는 다수의 젊은 한국인들의 사랑을 목격해 온 내겐 <헤어질 결심>의 서래가 예시하는 사랑은 너무나 명확하고 분명해서, 조금은 낯설고 그래서 참신했다.
"당신이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라는 서래의 말을 반박하는 해준의 모습에서 나는 '가장', '책임감', '직책' 따위로 수식되는 전형적인 한국 남성의 맨 얼굴을 보았고, "헤어질 결심을 하기 위해"라고 말하는 서래에게서 국적 불명의 '자유로운', '주체적인' 그리고 분명히 ‘여성’의 얼굴을 한, “꼿꼿한" 사랑의 실체를 보았다.
결론적으로, 내가 본 이 영화는, 지금은 꽤나 희소한, 품위를 잃지 않는 정직한 사랑의 모습이 아름다운 여배우의 명료한 음성과 절제된 몸가짐으로 구현된, 내용과 형식이 탁월하게 조화를 이룬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