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기획을 위한 에세이
우리 삶은 수없이 많은 이별의 사건들로 점철되어 있다. 죽음이나 시련이 남기는 가족, 연인, 친구와의 이별은 살아가며 누구나 한번쯤은 겪게 되는 일이거니와, 도시를 살아가는 우리는 길 한복판에서든,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든 사람들과 매일 이별을 한다. 때로 어떤 이들과는 눈을 마주치거나 옷깃을 스치며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잠깐의 시간을 공유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우리가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는 일은 동시에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뿐이랴, 우리는 무수한 사물들과도 매일 이별한다. 편의점에서 간단히 구입한, 음료가 담긴 페트병은 내용물만을 우리의 목구멍 속으로 쏟아 넣은 채, 홀연히 쓰레기통으로, 재활용 박스로 사라진다. 이렇듯 삶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소비라는 행동은 또 다른 이별의 과정이다. 우리의 시야에서, 우리의 관할 영역에서 떠나버린 사물에 관해 우리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저기에 누군가의 입술에 닿은 흔적이 있는 무수한 페트병들이 자신을 잠시 손에 쥐었던 사람과의 이별 후 어떤 삶을 겪어낼지 우리는 관심이 없다.
잠시 편의를 제공하는 작은 사물들을 소비하는 일로부터, 인간의 죽음과 같은 큰 사건들까지... 이별이라는 것을, 우리가 어느 한 순간을 공유했던 무엇이 ‘서로 갈리어 떨어지는’ 것이라 이해한다면, 삶은 늘 이별로 점철되어 있기에, 우리가 온전히 이별하지 않는 유일한 존재는 단지 ‘나’밖에 없다는 말을 진실로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이는 나는 내가 아닌 다른 모든 것에 대해서 결코 완전히 공감할 수 없으리라는 가정과 맞닿아 있다. 그렇다면 또한 인간과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은 고독. 이별이 삶에서 불가피한 것이라면 나의 고독을 인정함으로써 현재 진행 중인 그리고 미래에도 계속 진행될 이별에 대처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고독을 필연적인 것으로 수용하는 것은 곧 타인에 대한 무관심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우리의 이별은 동시에 훗날의 만남을 예고한다. 마치 소멸한 것이 다시 생성하는 것처럼. 죽음으로 이별한 사랑하는 이와 나는 기억 혹은 꿈을 매개로, 그것도 아니라면 다음 생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버린 페트병은 모습을 바꾸어 언젠가 나와 다시 스치는 누군가의 옷에 달린 단추로, 또는 점심시간을 함께 보낼 플라스틱 도시락의 한 귀퉁이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어쩜 모든 것에 대한 애착은 너와 내가 영원히 이별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믿음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지. 우리는 실제로 매일 사랑을 하고 그리워하며, 나 아닌 무엇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있으니 말이다.
모든 것을 떠나가지만 동시에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