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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스 Nov 12. 2020

에필로그, 마무리도 우리 답게!

마지막 관광지 '보카'
그러고 보니 우리는 같이 찍은 사진이 거의 없다.

탱고의 발상지라는 ‘보카’지구에 들려, 보카 주니어스 축구장 구경과 기념품 따위를 사며 시간을 보냈다. 별다른 생각 없이 들어간 식당에서 바가지에 가까운 비싼 금액으로 점심을 먹고 싸구려 기념품 따위를 흥정도 못 하고 사다 보니, 택시비가 모자라 땡볕에 40분을 걸어 땀에 절은 채 숙소로 돌아와야 했다.  작별의 섭섭함을 졸여낼 새도 없이 시간에 쫓긴 종직이가 먼저 공항으로 떠났다. "잘 가라" 단답형의 쿨한 인사로 그를 보냈는데, ‘마지막으로 사진이라도 같이 한 장 남겼어야 했나?’ 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비행기 시간이 꽤 여유가 있어 느긋하게 샤워를 마친 뒤 교통카드와 남은 반찬 등을 민박집 기증함에 넣고 한가히 만화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출발해야 되는 시간이 가까워져 휴대폰 어플로 우버를 부르려고 하는데 휴대폰 인증이 되지 않았다.      


당황하여 민박집 알바생의 휴대폰을 빌려서 인증을 시도하였으나 뭐가 문제인지 계속 실패했다. 시간이 너무 촉박하여 어쩔 수 없이 지하철을 타기로 하고 기증함에 올려두었던 교통카드를 찾으러 갔는데 그 사이 누군가가 가져갔는지 카드가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교통카드를 새로 샀다. 5 페소면 1회 편도권을 충전할 수 있는데 잘못 알아듣고 50페소를 충전했다. 지하철역에 내려 공항 가는 리무진 버스를 찾기 위해 뛰어다녔다. 기사에게 요금이 얼마냐고 물어보니 260페소라고 했다. 주머니에는 딱 265페소가 남아있었다. 


"끝나는 순간까지 시트콤을 찍는구나"         


혼자 앉은 좌석에서 어이없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지으며 차창 밖을 바라봤다. 무심한 도시의 풍경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처럼 촤라락 흘러 지나갔다. 이제 정말 다 끝났다고 생각하니 홀가분함보다 아쉬운 마음이 더욱 컸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영화의 주인공은 내가 아닌 종직이었다. 캐나다 유학생인 종직이는 파라과이를 경유하여 밴쿠버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파라과이 항공사에서 종직이에게 캐나다 학생비자를 요구했을 때 종직이는 그제야 캐나다 비자를 집에 두고 온 것을 떠올렸다. 결국 체크인을 하지 못해 캐나다행 비행기표를 허공에 날려버린 종직이는 강제로 파라과이에서 1박을 하고 나서야 겨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내 일이 아니라서 별로 열 안 받음.




진짜 에필로그


해외 파견근무를 지원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던 남미 배낭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남미 어땠어?”          


그곳으로 6주간 배낭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면 으레 사람들이 묻는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너무나 거대하고 정리되지 않은 많은 사건과 감정들이 머릿속에서 서로 부딪히며 엉키고 설킨다. 


 “진짜 힘들더라. 근데 좋았어”          


결국 그 모든 걸 뭉뚱그린 뻔한 대답만이 내 입 밖으로 나올 수 있는 표현의 전부였다. 사실 그것만으로는 너무 아쉬웠기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고 바깥세상으로의 출구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각자의 삶은 그 자체로 하나의 완전한 ‘장편 드라마’이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 시작이 언제인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또한 그 끝이 죽음이라면 완성에 이르러 함께 감상할 친구도, 충분한 시간도 부족할 것이다.      

그렇다면 여행은 이미 종결된 하나의 ‘미니 시리즈’라고 말할 수 있지는 않을까? 길을 떠나기 전 설렘과 낯섦에 대한 두려움, 처음 보는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할 때마다 느끼는 그 두근거림. 그것은 지금 막 세상과 마주하여 모든 것을 신비롭게 바라보던 어린아이의 시간으로 우리를 되돌려 놓는다.      


그 설렘의 터널을 지나, 환희와 절정을 맞이한 청춘의 어느 무렵 슬며시, 피할 수 없이 받아든 입영 통지서 같은 과제와 난관이 찾아온다. 변수로 인해 계획은 틀어지고,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짜증이 나고 지쳐간다. 여행이 더 이상 새롭지 않아 권태가 찾아오고, 심지어 여행 중이라는 사실 조차 잊은 채 또 다른 여행지를 꿈꾸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삶이 그렇듯 종국엔 깨닫게 된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에 다시는 못 올 수도 있구나.”     


“지금 내 눈에 담긴 이 풍경을 다시는 못 볼 수도 있구나.”     


“지금 내 앞에서 웃고 있는 당신과 다시는 못 만날 수도 있구나.”    


우리는 적응이란 선물을 안고서 살아간다. 하지만 그것은 모든 새로운 것을 삶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더 이상 아무런 감동을 느끼지 못하게 하고 때로는 볼 수 조차 없게 만든다. 매일 같은 자리에 멈춰있어 보이는 해와 달, 존재한다는 것조차 잊어버린 밤하늘의 별,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동네 공원의 수많은 꽃과 나무뿐만 아니라, 어느새 나이 들어 깊게 팬 부모님의 주름까지...     


여행은 인생의 축소판을 보여주며 삶이 너무도 짧고 아쉽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래서 더 보고 싶게 만든다. 더 많이 느끼고, 더 많이 사랑해서 ‘잘’ 한번 살아보고 싶게 만든다. 늘 그래 왔듯, 다시 익숙해질 것이고 또다시 잊을 것이다. 금방 또 싫증을 내고 권태를 느끼겠지만, 그렇다고 본분을 잊지는 않겠다.     

     

나는 광활한 우주에 떠도는 먼지보다 작은 행성 지구에서 찰나의 순간을 머물다 사라질 방황하는 여행자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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