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부터 덩치에 안 맞게 겁이 많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특히 높을 곳을 지나치게 두려워했는데, 여섯 살 때 옥상에서 딱지치기를 하던 중 지붕 슬레이트로 날아간 딱지를 줍다 추락한 이후로 쭉 그랬고, 몇 년 전 필리핀 세부에서 오기를 부리며 절벽 다이빙을 시도하다 바닥에 발이 닿아 피범벅이 된 이후로 더욱 트라우마가 깊어졌다.
“오빠 혹시 스카이다이빙 하실래요?”
같이 여행 중이던 미모의 여대생 소정이가 혼자서는 무섭다며 함께 스카이다이빙을 하자고 제안했다. 남자의 허세는 육신을 지배했다. 가격은 사진 촬영 단계에 따라 다양한 옵션이 있었는데, 이왕 하는 거 사진과 영상을 남기고 싶어 카메라맨까지 동행해서 사진을 찍어주는 가장 비싼 옵션을 골랐다.
오전 8시, 픽업 장소에 나타난 벤을 타고 2시간을 달려 다이빙 센터에 도착했다. 비디오를 보며 주의사항과 다이빙 자세에 대한 교육을 받고 위험한 일이 있어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강화조약에 사인을 했다. 손님은 우리 셋을 포함해서 총 열 명 정도 되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작고 열악해 보였다.
경험자들에게 듣기로, 보통 안정적인 다이빙을 위해 손님과 키와 몸무게가 비슷한 다이버 마스터를 매칭 해서 짝을 지어준다던데, 이곳은 작은 경비행기 한 대에 다이빙 마스터도 두 명이 전부인 듯했기에 그런 걸 기대하기는 무리일 것 같았다. 게다가 나는 체형이 큰 관계로(191cm, 95kg) 스카이다이빙 제한사항(190cm 이하, 95kg 이하)에 아슬아슬하게 걸리는 게 아닌가! 마스터는 체중계에 표시된 내 몸무게를 보고 자기들끼리 스페인어로 뭔가를 쑥덕거리더니, “돈 워리, 잇츠 오케이” 라며 나에게 씩 잇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손님에 비해 마스터가 부족했기에 방금 하늘에서 뛰어내린 마스터가 커피 한 잔을 마시자마자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 저렇게 연속해서 뛰어내리면 나중에 집중력이 약해져 사고가 나는 건 아닐까 신경이 쓰였다. 우리 중 첫 번째로 소정이가 하늘로 올라가니 그때부터 내 심장도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그날 마침 아르헨티나 방송국에서 촬영을 나왔다. 백인 남자 리포터 한 명이 비행장 안에서 큰 소리로 떠들며 춤을 추고 과장된 액션으로 웃으며 넘어진다. 그 모습이 나의 긴장을 누그러트리기는커녕 정신을 더욱 산만하게 만들었다. 재수 없게 그 아르헨티나 노홍철과 함께 같은 비행기에서 뛰어내리게 되었다. 노홍철은 정말 한 시도 쉬지 않고 카메라맨을 향해 흥분된 목소리를 뿜어냈는데, 대체 어디서 저런 에너지가 나오는지 놀라울 정도였다.
카메라맨이 동승하지 못한 채 비행기가 이륙하여 이제 좀 잠잠하겠구나 싶었는데, 갑자기 본인의 아이폰을 꺼내 들고는 실시간 라이브 방송을 하면서 자꾸 자신의 신을 찾았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긴장되어 입이 바짝 타들어갔다. 노홍철은 긴장도 되지 않는지 나에게 카메라를 들이밀며 인사를 해달라고 강요했고, 나는 영혼 없는 표정으로 억지로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며 “아이러브 아르헨티나”를 외쳤다.
우리는 어느새 구름을 비집고 올라가 아득히 높은 곳에 멈춰 섰다. 마스터가 뭐라고 말을 걸었지만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는데, 잠시 후 덜컹 소리를 내며 비행기의 문이 열렸다.
매서운 바람이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처럼 사나운 소리를 질렀고, 하얀 구름 사이로 끝도 없이 멀어 보이는 초원이 시야에 들어왔다.
'와 시방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지?'
다리를 비행기 밖으로 빼라는 다이버 마스터의 명령에도 몸이 굳은 듯 쉽게 말을 듣지 않았다. 내 뒤에는 노홍철이 오 마이 갓을 일초에 다섯 번 외치며 그 순간에도 카메라 동영상을 촬영하고 있었다. 저 꼴을 계속 보느니 그냥 뛰어내리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긴 다리 탓에 용을 써가며 한쪽 다리를 겨우 비행기 밖으로 빼내었다. 긴 호흡을 한번 내 쉬고는, 천장을 바라보며 나머지 다리를 마저 빼냈다. 마스터의 품에 꼭 안겨있다 생각하니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다. 망설임 틈도 없이 그가 나를 안고 구름 속으로 뛰어내렸다.
멍청하게 벌린 입을 벌리고 있어 엄청난 밀도의 바람이 들이닥쳤다. 양 볼이 순식간에 복어처럼 부풀러 올랐고 당황하여 코로 호흡할 생각조차 못 한 채, 물에 빠진 사람처럼 바람을 연거푸 들이마셨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숨을 못 쉬어 죽으면 어떡하나 불안감에 사로잡혔지만 그러기에는 낙하산이 너무 빨리 펼쳐졌다. 그제야 끝도 없이 펼쳐진 광활한 평야와 손톱만 한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살았다는 안도감은 잠시뿐, 몸무게가 많이 나가서 그런지 사타구니와 어깨를 연결하고 있는 연결 장비가 엄청난 압력으로 몸을 짓눌렀다. 떨어지면 어떡하지?라는 망상이 그 틈을 파고들어 파리처럼 웽웽거렸다.
종직이는 다이빙 직전에 배가 고프다며 밥을 먹었다가 다이빙을 마친 후 어지러움과 메슥거림을 호소했지만 다행히 세 명 모두 안전하게 생애 처음으로(나는 아마도 마지막일) 스카이다이빙을 무사히 마쳤다. 지난 40일간의 남미 여행을 마무리하는 기념적인 피날레였다고 생각하니 뭔가 의미가 있는 것 같아 스스로 만족스러웠다.
우리를 끝으로 모두의 다이빙을 마치고 퇴근하는 스태프들과 함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갔다. 트립어드바이저 상위에 랭크 된 피자집에서 화덕에 갓 구운 피자와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니 소정이가 슈렉에 나오는 고양이의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그럼 저희 이제 못 보는 거네요...”라며 아쉬워했다.
소정이는 마치 순정만화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 같이 예쁜 외모에범접할 수 없는 순수함을 가진 친구였다. 취업 전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어 오랫동안 알바를 해 돈을 모아 혼자 시작한 여행이었기에 적은 예산으로 앞으로 몇 달 동안의 긴 여행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저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함께 하고 싶어 식당에 함께 가자고 제안했지만 그녀는 돈을 아껴야 해서 호스텔에서 혼자 만들어 먹겠다고 사양했다.
"마지막 저녁인데 같이 먹자. 우리가 살게."
"어제도 사주셨는데 이틀 연속 얻어먹기는 너무 미안해요."
칙칙한 아재들이랑 함께 있기 싫어 빨리 자리를 뜨려는 의례적 변명이란 걸 알면서도 나는 계속 졸라댔다.
"여행 오래 하려면 먼저 뻔뻔해지는 법을 배워야 해. 나중에 취업하고 힘들게 여행하는 친구들을 만나면 그때 되갚아줘 “
남미여행 처음을 함께 했던 경호 형님이 나에게 밥을 사주며 했던 말을 이렇게 빨리 써먹을 줄은 몰랐다. 40일간의 남미여행, 마지막 저녁 식사를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거리는 어느덧 어둠에 깊게 잠겨 있었다.
짧은 여행 동안 스쳐 지나갔던 많은 인연들이 떠올랐다. 갈라파고스에서의 꿈같던 휴가를 함께 보냈던 경호, 송희, 경민, 현아, 소정, 정글 트레킹 ‘하우 올드 아유’ 사건의 진리 씨, 지프차를 타고 우유니 사막을 횡단했던 유쾌한 홍콩 친구들, 미국에서 칠레까지 혼자 씩씩하게 날아왔던 여전사 세나, 토레스 델파이네에서 함께 고생한 경상도 사나이 상균이, 카메라 메모리까지 빌려주며 은혜를 베풀어줬던 마음씨 착한 해인씨와 종직 바라기 경래, 국경 검문소에서 함께 낙오되었다가 밤늦게까지 바비큐 파티를 벌였던 크리스티안과 친구들...
누군가 나에게 여행을 통해 느끼고 경험했던 모든 것 중에 무엇이 가장 좋았냐고 묻는다면, 그 어떤 장관이나 스펙터클한 체험보다도 그저 좋은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다고 느꼈을 때 얻었던 저릿함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내성적인 사람, 외향적인 사람, 긍정적인 사람, 그리고 부정적인 사람도, 심지어 혼자가 편하다며 떠나온 사람조차도 여행 중에는 사람을 찾았고, 기꺼이 친구가 되었다. 알고 보니 나를 떠나게 만든 원동력도 결국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연히 만난 동등한 사람들과 아무런 이해관계에 얽히지 않고 순수히 사람으로서 가지는 호의를 주고받았다. 그렇기에 그들과 언제 또 재회할 수 있을지 기약할 수가 없다는 것이 내심 너무나 섭섭했다.
나만의 긴 여행을 마무리하던 남미에서의 마지막 밤, 숙소로 돌아와 종직이와 맥주를 마시며 서로의 스카이다이빙 굴욕 사진을 보고 배가 아프게 웃어대다 불을 끄고 침대에 몸을 뉘었지만, 왠지 모를 서운함에 가슴이 먹먹해져 한동안 잠을 이룰 수 없었다.